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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naine Jul 26. 2022

마실 줄만 알았던 커피를 배우고 있습니다.

카페에서 가장 중요한 원두 이야기

카페 창업 이야기를 쓰면서 어떤 주제로 풀어가야 할지 고민이 됐다.

사업자등록부터 서류 발급이나 세금 관련 문제들은 워낙 전문가들이 많으시니 초보 사장인 나의 얘기는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시간을 내어 나의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 어떤 게 있을까 생각해보다가 지금 카페에서 사용하고 있는 원두 얘기가 하고 싶어 졌다.


정말 다행인 건 나는 카페인에 강하다. 출근 후 매일 아침마다 커피 한잔 하는 것이 업무의 시작이었다. 배가 고픈날의 아침에는 카페라테를 마시고 점심을 먹고 오후 근무를 하며 또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특히나 추운 겨울날 밀크폼이 촘촘하게 올라간 라테 한 모금 마시며 회사 컴퓨터의 전원을 켜고 잠깐 포털사이트의 뉴스를 보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고 추운 겨울날의 유난히 빡치는(?) 어느 날은 스타벅스의 캐러멜 마끼아또 엑스트라 핫으로 한 모금 마시면 스트레스가 훅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선후배들이 커피 한잔 하자고 하면 중간에 또 한잔, 갑자기 나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 하루에 대여섯 잔은 마셨던 적도 셀 수 없이 많다. 금요일은 불금이니까 커피 위에 크림이 잔뜩 들어간 음료도 찾는다.


한 달 지출내역의 상당 부분이 커피값이었다. 커피값 4~5천 원이 아까워 줄인적도 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니 사오천원에 행복을 살 수 있다면 커피만큼 가성비 좋은 것도 없다는 말을 듣고 그 뒤로 커피를 마시는 비용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커피라는 생명수를 한 모금 마시면 잠깐이라도 행복해진다니까! 라며 4천 원주고 행복을 산거라 생각했고 업무의 효율도 올라간다. 점심을 거르는 경우가 생겨도 커피는 항상 들고 있었다.

여행을 가도 맛집보다는 유명 카페부터 체크해 놓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스페셜티를 찾거나 커피의 맛을 좌우한다는 산미가 강한 커피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고소한 라테를 찾는 정도였다. 정말 많이 마셨지만 깊게 알지는 못한다.


처음 폴바셋이 광화문에 들어오고 오픈 초창기에 아이스라테를 마셨는데 정말 눈이 똥그래지는 맛이었다. 아니 어떻게 이런 라테가 있을 수 있지? 하면서 커피만 마시러 광화문 폴바셋을 갈 정도였다. 그리고 지점도 많아지고 폴바셋은 여전히 맛있다. 그렇지만 상향평준화가 된 것인지 폴바셋보다 더 맛있는 커피를 찾고 싶어 한다.


카페 오픈 소식이 지인들에게 알려지면서 아는 사람이 원두 납품하는데 한번 샘플 받아볼래? 하는 연락을 많이 받았다. 가게에 들여놓은 머신에는 어떤 원두를 써야 하는지 그라인더 분쇄도와 그람수의 설정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왜 필요한지조차 전혀 알 수 없는 노릇이었고 그런 게 중요한 건지도 몰랐다. 커피는 마실 줄만 알았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그래도 그동안 쓴 커피값이 얼만데! 라며 나를 믿었다.


카페 인테리어를 진행하던 중 인테리어 실장님의 친구분이 카페도 하고 로스팅도 하는데 거기 한번 가보라며 가볍게 말씀하셨고 바쁘다는 핑계로 가지 않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근처에도 많은데 뭘 굳이 거기까지 가냐는 생각도 했고 귀찮기도 했다. 인터넷으로 샘플요청만 해도 보내주는 게 원두였다. 그 뒤로 실장님이 나를 볼 때마다 카페 가봤냐는 질문에 아 이건 한번 가봐야겠다 싶어 친구분의 카페에 따로 약속을 잡지 않은 채 온전히 손님으로 방문을 하게 됐다.

그날이 가게 오픈 준비하면서 내가 팔아야 할 커피의 맛을 처음 본 것이었다. 요 근래 몇 년 동안 커피가 맛있다는 카페를 가봐도 딱히 임팩트 있게 맛있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물론 커피는 다 맛있다. 그렇지만 한 모금 마시자마자 아! 맛있다! 소리가 나오게 하는 커피들은 없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산미가 강한 스페셜티 아니면 크림 커피, 에스프레소 쪽으로 유행 중인 느낌이고 세 가지 모두 쌩 초보인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유명한 카페의 시그니처 메뉴는 대부분 단맛이 많이 들어가거나 생크림을 올려서 달달하게 만든 것들이었으며 강한 단맛은 첫 모금에 맛없다고 느끼기 힘들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욕심만 많은 나는 기본 중의 기본인 아메리카노와 카페라테가 맛있기를 바랐다. 근데 그곳의 커피가 딱 그랬다. 요 근래 마신 라테 중에 가장 고소하고 진하고 이런커피 정말 오랜만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첫 모금에 들어오는 상쾌한 시원함이 너무 좋았다.

그 길로 실장님께 전화를 드려 카페 대표님과 바로 미팅을 잡게 되고 친구의 지인이라 특별히 더 신경 써 주신다며 카페의 동선 체크, 필요한 물품 구매부터 컵의 사이즈 등등 생각도 하지 못한 부분까지 다 신경을 써주셨다. 몇 번이고 원하는 맛이 나올 때까지 기계 세팅을 잡아주셨고 세팅 잡는 날은 거의 6시간 동안 커피만 마셨다. 다들 원두 샘플은 많이 받아보라고 조언해줬지만 대표님을 만나고 다른 원두 샘플을 한 번도 받아보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왕 초보인 나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나타난 느낌이었다.

대표님 본인이 취급하는 원두에 대한 프라이드가 높아서 나의 원두에 흠을 내지 말라는 깊은 뜻도 있을테고 아직까지도 초보 사장인 나는 매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특별관리대상인 듯하다.

그리고 대표님이 신경 써주신 덕분에 커피가 맛있는 카페로 소소하게 알려지고 있고 고객님들이 커피 맛있다는 말을 해주고 가실 때 그날의 피로가 풀리는 걸 보니 어느새 나도 점점 카페 주인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요렇게 가~끔 손님이 메모를 남겨주시면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다. 이 메모는 내가 잘 볼 수 있는 주방 어딘가에 붙어있다.

이런 메모들을 보면서 커피가 생각보다 많이 까다롭고 예민해서 더 열심히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모두의 입맛에 맞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저희 카페 커피 진짜 맛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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