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좋아졌네’
퇴사 후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얼굴빛이 달라졌단다. 어떻게 얼마나 좋아졌는지는 나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신기하게도 보는 사람마다 얼굴이 좋아졌다고 한다. 얼굴살이 포동포동하게 찐 걸까 싶다가 다행히도 체중은 회사 다닐 때보다는 쬐금 줄어있다. 연륜인가 싶기도 하다가 그것도 아닌것같다. 그렇다고 자본에서 나오는 근자감은 더욱 아니다.
전 회사 후배를 만났다. 나의 번아웃과 우울증 그리고 회사에서 겪었던 모든 안 좋은 일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실시간으로 본 친구다. 우리 둘 다 그 회사는 퇴사를 했지만 고맙게도 자주 연락하고 카페로 놀러 와 준다. 지난주에도 봤는데 오늘 또 얼굴이 좋아졌다고 말을 했다. 대체 뭐가 바뀐 걸까.
회사에서는 지금 생각하면 적지 않은 연봉을 받았었다. 지금은 회사 다닐 때의 반도 안될 것이다. 어쩌면 내가 지금 돈을 벌고있는게 맞나 싶을정도다. 카페 오픈 준비하면서도 그렇고 오픈 초기에는 돈을 많이 벌겠다는 마음 뿐이었다. 다들 말리는 안 좋은 시국에 오픈해놓고 나의 능력보다 더 큰 욕심을 부렸었다. 매출이 안 나오면 매출에 대한 걱정만 하고 있느라 부족함을 채우려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매출이 안 나오는 것에 대한 인정을 하고 어느정도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오늘 안 좋으면 내일 괜찮겠지. 내일도 안 좋으면 모레가 괜찮으려나. 하면서 피 터지는 자영업 시장에 뛰어들어놓고 주변인들의 걱정속에 나 혼자만 느긋하다.
지난주에 오셨던 손님이 주문을 하시며 ‘사장님 건물주 아니세요?’라고 물어보셨다. 올 때마다 문이 닫혀있더란다. 일주일에 딱 하루 월요일 휴무인데 그때 오셨던 것 아니냐고 여쭤보니 다행히도 그런것같다고 하셨다. 휴무인것은 둘째치고 그분이 나를 봤을 때 과하게 여유로워 보였던 건가 싶다. 그 대화를 하고 나니 카페를 운영해서 건물주가 되려면 커피를 얼마나 팔아야 할까 궁금해져 계산을 하다가 말았다. 이건 답이 안나오는 문제다.
인정할 건 인정하는 모습이 표정의 변화와 편안함을 가져온건지 퇴사와 함께 우울증의 증상이 나아지고 있어서 그런건지 아니면 온전히 퇴사가 나를 그렇게 변화시킨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장사가 잘 안되고 있는 카페를 운영중이라 그런건 아닐거다.
어김없이 회사 그만둔 거 후회하지 않냐 물어보길래 ‘절대 그럴일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열심히 하는 것 같지도 않다. 월세 걱정을 하고 재료비 원가 계산을 하면서 한숨을 쉬지만 어디서 이런 자신감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며 욕심부리지 않고 적당하게 유지하며 평범하게 살고 싶다. 아무튼 보는사람마다 얼굴이 좋아졌다니까 나빠졌다는 소리보단 듣기 좋은 말이다. 그리고 퇴사는 백번을 생각해도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좀더 일찍 그만둘껄 그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