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역사소설
10. 초혼
“예경아!”
나는 목소리 높여 예경이를 불렀다.
“예, 마마.”
문 밖에 있던 예경이가 쪼르르 달려들어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예경이 몰래 쿡 웃었다. 예경이가 든든한 나의 동반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기뻤다.
“외출할 테니, 채비하거라.”
예경이가 대답 대신 토끼눈을 떴다.
“왜 멀뚱거리고 있느냐?”
그제야 예경이가 입을 열었다.
“혹시 또 ‘감골’에 가시려고요?”
“그래.”
“마마, 사흘 전에도 다녀오셨는데, 너무 자주 가시면…….”
“당분간 매일 갈 예정이니, 그리 알거라.”
예경이의 눈이 또 토끼눈이 되었다.
“마마, 위험합니다. 변고라도 당하면 어쩌시려구요?”
“죽기밖에 더하겠느냐. 어서 채비하거라.”
“마마…….”
나는 예경이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다. 예경이가 흑 울음을 터뜨렸다. 가엾은 아가 같은 예경이를 나는 살포시 안아 주었다.
감골의 ‘감(㙳)’은 ‘구덩이’, ‘물웅덩이’를 가리킨다. 감골은 조선인 포로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룬 마을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여서 지형적으로 구덩이인 셈이다. 커다란 구덩이에 사는 아이들은 땅에 작은 구덩이를 파며 놀았다. 비가 오면 그곳에 물이 괴어 물웅덩이가 생겨났다. 그러면서 ‘감골’이란 이름이 자연스레 붙었다.
본디 조선인 포로들은 자체적으로 마을을 만들 수 없었다. 정해진 지역에만 모여 살아야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그 규제가 느슨해졌다. 황실에서는 농사나 노역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조건으로 포로들의 마을을 허가해 주기 시작했다. 그것이 국고를 절약하는 데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포로들 세계에서도 그냥 주저앉아서 입에 풀칠이나 하며 사는 쪽을 선택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귀향은 언감생심이고, 국경을 넘으려 도망간 자는 주검으로 변하기 일쑤니 무력감에 젖어든 것이다. 그 무력감은 체념과 포기를 불러왔다,
대개 분지는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 감골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느 분지와 달리 개천은 더러웠고, 먹을 것은 부족했다. 여러 모로 살기 팍팍한 땅이었다. 때문에 조선인 포로들이 이 땅에 모여 둥지를 트는 것에 청의 조정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감골의 사람들은 농사보다는 줄팔매질로 사냥을 해 고기를 먹는 쪽을 택했다. 주변엔 감골과 처지가 비슷한 포로들의 마을, 다복촌과 족제비골이 있었다. 세 마을 장정들은 대부분 줄팔매질에 능숙했다.
나는 감골과 다복촌과 족제비골을 종종 드나들었다. 처음 발을 들인 때는 이여중으로부터 화살에 매인 서찰을 받고 얼마 뒤다. 역적 도르곤의 왕후라는 신분을 숨긴 채, 그저 어느 하급 벼슬아치의 부인 행세를 하며 마을 사람들과 연을 맺었다. 허드렛일을 도와주고, 아픈 사람들을 돌봐주고, 아이들과 놀아주었다. 보로와 혼인한 뒤에도 역시 신분을 숨긴 채 조용히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
솔직히 그 도움은 순수한 것만은 아니었다. 내겐 숨겨진 속셈이 있었다. 도르곤의 죽음을 밝히는 것. 줄팔매질로 말의 다리를 맞힌 사람을 나는 찾고 싶었다.
백마야 백마야, 누가 네 다리를 맞혔니?
고꾸라진 너와
너의 주인이 애처롭구나
나는 아이들과 놀아 주면서 틈틈이 이 노래를 가르쳤다. 백제 제30대 왕 무왕(武王)이 선화 공주를 아내로 삼기 위해 동네 아이들에게 <서동요(薯童謠)>를 가르쳤던 것처럼.
처음 아이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즐겨 부르는 아이들이 드물었다. 그러나 신나고 재미있는 놀이가 부족했던 탓일까. 노래는 가랑비처럼 가늘면서도 여름 땡볕처럼 길게 이어져 동네 구석구석 파고들었다. 감골, 다복촌, 족제비골 모두 엇비슷하게 상황이 진행됐다. 노래를 퍼뜨린 지 여섯 달쯤 지났을 무렵 내가 지은 노래는 유행가가 되었다. 제목 없는 유행가에 사람들은 ‘백마(白馬)요’, ‘복마(伏馬)요’ 같은 제목을 붙이기도 했다.
다복촌과 족제비골에서는 내가 예상하던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 변화는 감골에서만 일어났다. 줄팔매질로는 감골에서 으뜸인 장정이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진 것이다. 수창이라는 이름의 그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고, 멀리서 나의 행동거지를 엿보곤 했다. 나는 심복을 붙여 수창을 감시하도록 시켰다.
감시를 붙인 지 보름쯤 지났을 때 심복이 충격적인 소식을 들고 왔다.
“수창이란 놈이 정명수의 집에 찾아갔습니다. 두 식경쯤 머문 걸 보면 예삿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심복의 말을 듣자마자 난생처음 어지럼증이 일었다.
‘정명수의 짓이었던 건가?’
정명수의 사주로 수창이 도르곤의 말에 팔맷돌을 던졌다, 이것이 사건의 진상에 가장 가까웠다. 진실이 보이자 눈물이 앞을 가렸다. 해코지라고 하기엔 너무나 잔인했다. 정명수는 도르곤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었다,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정명수처럼 영악한 인간이 낙마가 죽음에 이를 만큼 위험한 사고라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나를 죽일 것이지 왜 전하를…….’
개성에서의 일로 정명수는 이를 갈았을 게 틀림없다. 재물 축적의 기회를 잃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럴 법하다. 때문에 나는 정명수의 복수를 늘 염두에 두고 지냈다. 그러나 복수의 칼날이 내가 아닌 주변 사람에게 향하리라고는 미처 예상 못했다. 역시 정명수는 치졸하고 사악한 소인배였다.
도르곤의 죽음의 비밀을 알고 나서 나는 감골을 더 자주 찾았다. 수창에게 일부러 접근하기도 하고 은근한 시선을 던지기도 했다. 그 행동들은 ‘네가 정명수와 벌인 짓을 다 알고 있다’라는 신호였다. 수창은 아둔한 편은 아니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거나 얼굴이 벌게지거나 걸음이 꼬이거나 하는 반응을 종종 보였다. 내 신호를 알아챘다는 반응이었다.
그 후 갑자기 해괴한 일들이 일어났다. 감골을 오가는 길에 난데없이 독사가 나타나거나 낙석이 떨어지기도 했다. 감골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아이가 조약돌로 내게 줄팔매질을 하고 도망치는 일도, 또 어떤 아이가 돈을 달라며 내 치맛자락을 가위로 자른 일도 있었다. 모두 전에는 없던 일이었다.
그렇게 석 달이 지났다. 석 달 동안 고민의 고민을 거듭한 나는 오늘 수창과 결판을 낼 작정으로 집을 나선 것이다.
“마마, 제가 곁에 조금만 더 가까이 가도 될까요?”
나는 걸음을 멈추고 예경이를 돌아보았다. 예경이의 뺨이 파랗게 얼어 있었다.
“추워서 그러는구나. 이리 와 나란히 걷자. 서로 온기를 나누면 나도 좋지.”
예경이가 펄쩍 뛰며 대답했다.
“마마, 어찌 감히 제가 마마와 나란히 걷습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추위를 못 참고서 그만…….”
“괜찮다니까. 가까이 오너라. 내가 너와 같이 걷고 싶어서 그래.”
예경이는 잠시 안절부절못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마마의 안위를 위해서 그렇게 하겠습니다. 뱀이라도 나타나면 제가 질끈 밟아버릴게요.”
“훗후, 둘러대지 않아도 된다. 너도 좋으면서 뭘 그러느냐. 어서 와라. 춥다.”
“마마…….”
예경이는 민망한 듯 살짝 얼굴을 붉혔다. 발간 얼굴을 한 채 잰걸음으로 내 옆에 와서 섰다. 한결 따뜻해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든든하기까지 했다.
나는 예경이에게 미소를 보인 채 발걸음을 뗐다. 예경이도 주뼛대다가 나와 보폭을 맞췄다.
“오늘 정말 춥지?”
“춥다마다요. 동장군이 저를 잡아가는 줄 알았습니다.”
“농을 하는 걸 보니 입은 안 얼었구나.”
“마마도 참! 정말 짓궂으세요.”
문득 예경이가 안쓰러웠다.
‘그래, 너도 외롭겠지. 그냥 아무 때고 수다 떨 수 있는 말벗이 그립겠지. 내가 아무리 너와 친하다한들 상전인 내가 편할 리 있겠느냐.’
나는 진심을 담아 예경이에게 말했다.
“예경아, 내가 신랑감을 한번 알아봐야겠다. 내 시중드는 일은 충분히 했으니, 이제 혼인을 해서 나가거라.”
“예? 마마. 어찌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시나요?”
“섭섭하기는! 다 널 위해 하는 소리인데.”
“그건 저를 위한 말씀이 아닙니다.”
“괜찮다. 솔직히 말하거라.”
“하늘에 맹세코 아닙니다. 전 마마 곁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예경이의 얼굴이 고추처럼 빨개졌다. 화가 잔뜩 난 어린아이 같아서 푹 웃음이 나왔다.
“마마, 웃으실 일이 아니에요.”
“호호호, 알았다. 너 오늘 한 말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
웃으면서 말했지만 내 가슴은 울고 있었다. 내 곁을 지켜주겠다는 예경이가 너무나 고마웠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예경이도 샐쭉 웃었다. 예경이가 웃으니까 나는 더 웃고 싶어졌다.
“감골에 닿으려면 아직 멀었는데, 우리 실컷 수다나 떨자꾸나.”
“좋지요!”
예경이가 대번에 맞장구쳤다. 우리는 마주 보며 웃었다. 얼굴을 가까이 한 채 깔깔깔 웃었다. 마음껏 웃은 건 정말 오랜만이었고, 예경이와 함께 웃은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행복했다.
“수창이를 불러주십시오. 긴히 나눌 이야기가 있으니 따로 자리를 마련해 주셨으면 합니다. 촌장님께 자리를 비워달라고 하는 건 결례이니까요.”
나는 나직하지만 강직한 말투로 말했다. 촌장은 낯선 나의 행동과 뜻밖의 요구에 흰수염을 쓸어내리기만 했다. 당황했다기보다는 더 세세한 이유를 알고 싶어하는 몸짓으로 여겨졌다.
“별일은 아닙니다만, 궁금하시면 촌장님도 함께 자리하셔도 괜찮습니다.”
촌장이 가느다란 미소를 입에 물었다. 그와 나는 잠시 눈싸움을 벌였다. 이윽고 그가 눈길을 굽히더니 천천히 말했다.
“마님께서 뭔가 뜻하신 바가 있으신 듯한데, 제가 곁에 있으면 안 될 것 같군요. 누추하지만 이 움막을 쓰십시오. 제가 비워드리겠습니다.”
“헤아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신경 쓰지 마시고 편하게 이야기 나누십시오. 바로 수창이를 들이겠습니다.”
촌장은 꾸벅 인사하고는 자신의 움막을 나갔다. 나는 곧바로 촌장의 미소와 눈빛을 곱씹었다.
‘촌장으로서 다소 체면을 구겼다는 걸 드러내는 느낌? 다른 감정은 읽지 못했어.’
나는 촌장이 수창과 한 패일 거라고 예상했었다. 수창이 정명수의 사주를 받았다 해도 독단적으로 행했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자칫 실패할 경우 마을이 멸절될 만큼 어마어마한 후폭풍이 닥칠 수 있는 일이었다.
일단 그 예상은 빗나간 느낌이었다. 촌장은 수창이 도르곤을 해한 일을 모르는 눈치였다.
이윽고 거적이 들리며 수창이 움막 안으로 들어섰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마님.”
“이렇게 와줘서 고맙네.”
“송구합니다. 근데 제게 하실 말씀이라도…….”
나는 조그맣게 폭 한숨을 쉬고는 물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네. 솔직히 답해줄 수 있는가?”
한순간 수창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는 곧바로 태연한 체 애쓰며 답했다.
“제가 답변해 드릴 수 있는 것이라면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눈을 한 번 지그시 감았다 떴다.
“거두절미하고 묻겠네. 자네, 도르곤 전하의 말에 줄팔매질을 했는가?”
수창은 내 질문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거침없이 답했다.
“없습니다. 제가 왜 그런 무엄한 짓을 하겠습니까?”
나 역시 틈을 주지 않고 내처 물었다.
“나는 자네가 역관 정명수의 사주를 받았다고 생각하네. 맞는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정명수라는 분을 알지도 못합니다.”
수창의 눈빛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눈빛이 흔들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듯했다. 수창이 타고난 악한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의 사람은 거짓말을 할 때 눈빛이 흔들리게 마련이다. 수창은 일말의 양심은 있는 자이기에 눈빛을 고정시키려 연습했는지도 모른다.
“정명수가 자기를 모른다 말하라고 시켰는가?”
수창이 입을 곧게 다물었다.
“대답도 정명수가 일러준 것인가?”
수창이 침을 꿀꺽 삼켰다.
나는 수창 앞에 풀썩 무릎 꿇고 앉았다.
“마님, 왜 이러십니까?”
수창이 당황하며 어정쩡하게 제자리걸음을 걸었다. 나는 고개까지 푹 숙였다.
“도르곤 전하는 나의 부군이었네. 부디 진실을 알려주게나.”
“마님, 저, 저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자네를 해하려는 마음은 없네. 내가 진실을 알려는 건, 초혼(招魂)을 하여 전하의 혼령이라도 만나보고 싶어 그러네. 그러려면…….”
나는 말을 멈추고 반짝 고개를 들었다. 수창이 슬그머니 내 눈길을 피했다.
“그러려면 전하를 해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야만 하네. 간곡히 부탁하네. 사실대로 고해 줄 수 없겠는가? 전하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라네.”
울컥 눈물이 솟았다. 참으려 혀끝을 깨물었지만 소용없었다. 참아왔던 말 속에 눈물이 그득 담겨 있는지 미처 몰랐었다.
“마님…….”
“난 자네를 해칠 힘도 없는 사람이네. 나를 가엾게 여겨 주게나.”
볼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옷고름을 적셨다. 내 눈물이 수창의 마음에 가 닿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마, 마님, 아니, 마마.”
“말하게.”
“초혼, 정말 그것뿐입니까?”
또 터져나오려는 울음을 가까스로 삼키고 말했다.
“그렇다네. 내 진의가 의심스럽다면, 큰절이라도 올리겠네.”
나는 자세를 갖추기 위해 벌떡 일어섰다. 그러자 수창이 손사래를 치며 말렸다.
“마마, 그만하십시오!”
정명수는 감탄을 자아낼 만큼 치밀한 사람이었다. 예상대로 그는 수창을 사주했다. 은 삼백 냥과 수창을 자신의 수하로 들이는 조건으로. 그런데 그 조건 이행 시점이 3년 뒤였다. 도르곤의 죽음이 잠잠해지고 존재마저 희미해질 시간, 정명수 자신의 범행이 가려질 시간으로 3년을 설정했던 것이다. 수창은 이 3년이란 시간 때문에 처음에는 정명수의 제안에 대해 몹시 망설였다고 했다. 그러나 어차피 희망도 없고 그저 입에 풀칠만 하는 인생, 그래서 결국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했다.
“초혼 외에 다른 일은 벌이지 않으시겠다는 약조, 꼭 지켜주십시오. 저뿐만 아니라 감골 사람들 모두 송장이 될 수 있습니다.”
수창은 진실을 털어놓으면서 당부도 덧붙였다. 그 당부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었다. 나는 약조를 어기는 일은 없다며 수창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수창에게 사주를 하며 으름장을 놓았을 정명수를 향해 마음속으로 저주를 퍼부었다.
“마마, 무슨 근심거리라도 있으십니까?”
감골 어귀를 막 벗어났을 때 예경이가 조심스레 물었다. 예경이에게 미안했다. 나는 촌장의 움막을 나서고부터 한마디도 안 꺼냈던 것이다.
“미안하구나. 답답했지?”
“별말씀을요! 제가 채신머리없이 굴었네요. 용서하세요.”
“용서라니, 네가 뭘 잘못했다구. 날이 추우니 어서 가자. 따뜻한 차 한잔하며 담소나 나누자.”
“예, 마마.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모진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는 채찍질 같았다. 나는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이를 악물었다.
경대에서 가죽 모자를 꺼냈다. 도르곤이 사냥할 때 어김없이 쓰던, 지금은 보라매의 깃털 장식이 망가진 모자. 도르곤은 세상을 뜨던 날에도 이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날 말에서 떨어질 때 깃털 장식이 부러졌다.
이제 깃털마저 얼마 남지 않은 장식을 나는 정성스레 쓰다듬었다. 도르곤이 그리웠다. 그와 함께했던 일곱 달, 그 짧았던 행복도 그리웠다.
“마마, 만신(무녀, 巫女)께서 오셨습니다. 안으로 들라 할까요?”
방문 밖에서 예경이가 만신의 당도를 알렸다.
“아니다. 내가 나가마. 잠시만 기다리시라 일러라.”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초혼굿 채비를 일찌감치 마친 마당에 굳이 만신의 힘을 소모시킬 필요는 없었다. 그대로 나가려던 나는 다시 돌아서서 가죽 모자를 챙겼다. 왠지 도르곤의 혼령이 가죽 모자를 찾을 것만 같았다.
뜰 안을 감도는 겨울바람은 잔잔했다. 굿청을 화려하게 꾸민 형형색색 종이들이 은밀하게 나부꼈다. 부채와 방울을 흔들며 춤추는 만신의 몸짓이 가냘픈 햇살에도 찬란하게 반짝였다. 삼현육각의 격렬한 소리가 오히려 정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무릎을 꿇은 채 온 맘을 다해서 빌고 또 빌었다. 손바닥의 지문과 손금이 다 닳아 없어져도 좋으니, 무릎이 바스라져도 좋으니 제발 도르곤의 혼령이 찾아와 달라고.
만신이 춤사위를 멈추더니 부채를 내리고 방울만 들었다. 이윽고 신내림을 바라며 흔드는 방울소리가 삼현육각과 어우러지며 뜰 안을 울렸다. 만신이 그 소리를 뚫고 목놓아 외쳤다.
“연경의 도르곤, 복(復), 복, 복!”*
만신이 방울을 내려놓고 도르곤이 생전에 입었던 두정갑을 집어들었다. 다시 한 번 ‘복, 복, 복’을 외친 뒤 두정갑을 내전 지붕 위로 힘껏 던졌다. 다행히 지붕 위에 착 내려앉았다. 미리 지붕에 올라가 있던 예경이가 두정갑을 수습했다.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는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다. 예경이도 겁을 집어먹은 듯했지만 굳은 마음으로 차근차근 사다리를 내려왔다. 용기를 보여준 예경이가 고마웠다.
두정갑은 다시 만신에게 전해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자밥이 올려진 소반을 들었다. 만신이 두정갑을 든 채 내전 대문 쪽으로 향했고, 나는 소반을 든 채 만신을 뒤따랐다. 만신이 대문 밖을 나서자 내게 말했다.
“사자밥을 대문 앞에 내려놓으시게.”
만신의 지시에 따라 다소곳이 소반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만신이 두정갑을 소반 옆에 가지런히 놓았다. 그러고는 다시 굿청으로 돌아갔다. 나도 굿청으로 돌아가 처음처럼 무릎꿇고 앉았다. 그리고 처음보다 더 간절하게 초혼을 빌었다.
“복, 복, 복!”
만신이 다시 춤을 추며 방울을 흔들었다. 삼현육각이 방울 소리를 뒷받침했다. 방울의 흔들림과 소리가 점차 격렬해졌다. 삼현육각도 그 열기를 따라갔다. 바람이 숨을 죽이고, 겨울햇살이 쨍 빛났다. 만신의 춤사위가 크고 뜨거워졌다. 소용돌이에라도 휘말린 듯 만신의 몸이 빠르게 돌았다. 한순간 만신이 억 소리를 토하더니 그대로 푹 쓰러졌다.
*복: 초혼 의식 때 혼을 부르는 소리. 보통 세 번 부른다.
삼현육각이 뚝 끊겼다. 새끼 무당이 사색이 되어 만신에게 달려갔다.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었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만신에게 다가갔다. 새끼 무당이 몸을 흔들었지만 만신은 죽은 사람처럼 가만히 있었다.
나는 만신 옆에 무릎 꿇고 앉아 코에 손을 대고 호흡을 확인했다. 다행히 숨은 붙어 있었다. 서둘러 만신의 팔다리를 주물렀다. 새끼 무당도 나를 따라 했다. 한참을 주무르다 간절함을 담아 크게 외쳤다.
“일어나세요, 제발!”
간절함이 하늘에 닿은 걸까? 만신이 갑자기 쿨럭, 기침을 뱉으며 눈을 떴다.
“괜찮으십니까? 정신이 드세요?”
만신이 벌떡 윗몸을 일으켜 앉았다. 새끼 무당이 눈물을 글썽이며 만신의 손을 잡았다. 만신이 하늘에 눈길을 둔 채 혼잣말하듯 말했다.
“왔다 갔어.”
만신이 눈길을 내게 돌리더니 슬픈 표정을 지었다. 나는 갑자기 궁금증이 폭발했다.
“왔다 갔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도르곤 전하의 혼이 몸에 들어오자마자 튕겨나갔습니다. 그 충격에 제가 혼절한 거구요.”
“세상에 그런 일도 있습니까?”
“난생처음 겪는 일이라 저도 어리둥절합니다. 아예 신 내림이 안 되는 경우는 있어도 이런 경우는…….”
만신은 어쩔 바를 모르며 망연자실했다. 그 순간 우연히 두정갑이 떠올랐다. 내가 기도를 하던 자리에 두었던 가죽 모자도 눈에 띄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내전 대문을 향해 달려갔다. 대문 밖에 있는 두정갑*을 급히 집어들었다.
‘갑옷을 잘 갖춰 입으면 전하가 찾아올지도 몰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떠올린 생각이었다. 다시 굿청으로 달려들어간 나는 가죽 모자도 챙겼다. 그리고 만신에게 다가가 가죽 모자와 두정갑을 척 내밀었다.
“이걸 차려입고 다시 한 번만 혼을 불러주십시오.”
만신의 눈동자에 의문이 어렸다. 나는 그 눈을 보며 내처 말했다.
“전하는 천생 장군이었으며 타고난 사냥꾼이었습니다. 생전의 위엄을 보이고 싶어 할지도 모릅니다.”
“일리 있는 소견이긴 합니다만…….”
“부디 제 청을 들어주십시오. 굿에는 문외한이나, 그저 간절한 마음을 담고 싶을 따름입니다.”
만신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두정갑과 가죽 모자를 한 손에 들고 남은 한 손을 만신에게 내밀었다. 만신은 빙긋 웃더니 내 손을 잡고 일어섰다.
두정갑을 입고 가죽 모자를 쓴 만신이 다시 부채와 방울을 흔들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삼현육각이 만신을 도왔다. 바람이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이윽고 갑작스레 몰아치기 시작했다. 만신이 격정적으로 춤을 추었다. 먹구름이 진군하듯 밀려와 창창한 하늘을 가렸다. 한순간 만신이 춤을 멈추더니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만신이 몸을 휙 돌려 눈을 부릅뜨고 나를 노려보았다. 그런데 다음 순간 눈빛이 평온해졌다.
“고맙소, 부인. 나를 불러줘서.”
도르곤의 혼령이 만신의 몸을 입은 것이다. 정말 뛸 듯이, 아니 날 듯이 기뻤다.
“전하?”
“그렇소. 나요.”
“전하,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고생은 부인이 하고 있잖소. 홀몸으로 세찬 풍파를 견디고 있으니…….”
갑자기 주체 없이 눈물이 흘렀다. 나는 눈물을 뿌리며 달려가 만신을, 아니 전하를 안았다. 따스했다. 그 어느 봄날보다도 더 훈훈했다.
*두정갑: 명나라 대부터 보편화된 북방 민족의 갑옷
밤하늘엔 여느 때보다 더 별들이 총총했다. 뭇별들 하나하나에 전하의 얼굴이 새겨졌다. 온화한 얼굴, 애정 어린 얼굴, 화가 난 얼굴, 결기에 찬 얼굴, 생을 다하며 눈 감은 얼굴…….
“복수하고 싶지만, 제겐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더구나 복수하지 않겠다고 수창과 약조까지 했습니다. 하오나 몹시 후회스럽습니다. 이 원통함을 어찌해야 할지…….”
“다 잊으시오. 부인은 복수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오.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지 말고 평온하게 살길 바라오.”
“전하의 역적 누명만은 벗겨 드리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그저 눈앞이 캄캄합니다.”
“그것도 잊으시오. 누명을 씌운 작자들이 한둘도 아니고, 부인은 감당할 수 없어요. 아무것도 하지 말고, 부인의 안위만 생각하오.”
“억울해요. 너무나 억울해요.”
“부인, 억울함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하늘의 별처럼 많다오. 내가 괜찮으니, 일을 도모할 생각 버려요. 이렇게 부인을 만났으니, 나는 편하게 저세상으로 갈 수 있습니다.”
“도저히…… 용서가 안 됩니다. 아무도, 특히 정명수는! 그 자가 전하를 해쳤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졍명수가 아니더라도, 역적으로 몰린 나는 천수를 누리지 못할 운명이었소. 정명수도, 그 누구도, 용서하지 않아도 되오. 그저 연기처럼 하늘로 날려버리시오. 부인의 분노와 증오를.”
남편의 혼령과 나눈 이야기를 한 줄 한 줄 되새겨 보았다.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아팠다.
‘원통함을 잊을 수 있을까? 하늘에 연기처럼 날려보낼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수창에게까지도, 약조를 깨고 복수하고 싶었다. 본디 나는 아량이 넓은 여자가 아니었다.
“마마, 바람이 찹니다. 그만 안으로 드시는 게 어떨지요?”
예경이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귀에 와 닿았다. 나 스스로가 한심스러웠다. 예경이가 곁을 지키고 있는 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미안하다. 조금만 더 이대로 있고 싶구나.”
“고뿔 드실까 염려됩니다.”
“난 네가 걱정이구나. 먼저 들어가려무나.”
그러자 예경이가 펄쩍 뛰었다.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을! 소인이 어찌 마마를 두고 먼저 갈 수 있습니까?”
“괜찮대두. 어서 들어가라. 너야말로 고뿔 들겠다.”
예경이가 잠시 머뭇대다가 답했다.
“마마, 제가 마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제 걱정은 마시고, 마음껏 이 시간을 누리십시오.”
내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예경이가 있다는 게 새삼 큰 힘이라 느껴졌다.
“예경아.”
“예, 마마.”
“미안한데, 방에서 목검 좀 갖다주려무나.”
“이 시간에요? 아아, 토 달지 않고, 바로 갖다드리겠습니다.”
풋, 웃음이 나왔다. 연유를 궁금해하는 예경이의 마음이 얼굴에 또렷이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예경이는 황급히 돌아서서 잰걸음으로 나아갔다. 나는 예경이의 등 뒤에 대고 소리쳤다.
“넘어질라! 급할 거 없으니 천천히 다녀오거라.”
내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예경이는 금세 시야에서 멀어졌다.
예경이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정중하고 엄숙한 태도로 내게 목검을 내밀었다. 나는 그 까닭을 묻지 않았다. 나도 한껏 예를 갖추고 목검을 받아들기만 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목검을 두 손으로 꼭 쥔 채 높이 쳐들었다. 가장 밝게 빛나는 별에 칼끝을 맞췄다.
“부인의 안위만 생각하시오. 다 잊고, 평온하게 사시오.”
전하의 목소리가 되살아났다. 나는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전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허나 제 방식대로 하겠으니, 윤허해 주십시오. 제 방식대로 안위를 지키고, 잊고, 평온하게 살겠습니다.’
바람이 불었다. 별이 깜박였다. 전하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전하의 윤허가 떨어진 것이라 믿었다.
‘전하, 언제까지나 저와 함께하겠다고 약조해 주십시오.’
어디선가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도 모르게 목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바람도 베어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