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타이완의 추억
메이드 인 타이완, 단순히 대만에서 만든 물품으로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안에는 제작자들의 노고가 그대로 들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특히 소자본 창업이 많은 대만의 특성상, 이런 메이드 인 타이완 문구를 보는 건 그리 어려운 편이 아니다. 단순히 주말만 되어도 쓰쓰난춘이나 시먼역 인근에서는 플리마켓이 활발하게 열리고 있으며, 화산1914, 송산문화창구 같은 곳만 가더라도 공방이 넘쳐나는 까닭이다. 이런 소소한 부분들은 그들의 생활을 반영하며, 관광객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일상을 공유받을 수 있는 중요한 매개이기 때문이다.
처음 대만에 갔을 때는 알지 못했다. 이 많은 기념품샵들이 대부분 공산품이라는 걸. 지금도 우리집 냉장고에는 그때 산 마그넷들이 한가득 붙어 있다. 물론 냉장고를 열 때마다 대만을 추억할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인상적으로 남았던 기념품들은 모두 대만 예술가들이 만든 소품들이었다는 것.
내가 맨 처음으로 샀던 소품은 작은 향수였다. 원형의 50ml 용기에 담긴 시트러스 계열의 향수. 당시 쓰쓰난춘에서 열렸던 주말 플리마켓에서 구매한 작은 향수였고, 판매자는 아주 친절한 대만 여성분이셨다. 내가 이런 저런 향을 시향하고 있으니 그녀가 먼저 내게 "좋아하는 향이 있냐"고 말을 걸어왔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시트러스와 플로럴향이 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그렇게 대답했고, 그녀는 3가지 정도 되는 향을 추천해줬다. 시트러스 향이 강한 것, 플로럴향이 강한 것, 그 두 개가 적절히 섞여 있는 향. 나는 제일 마지막에 시향했던 제품을 구매했다. 그리고 그녀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이 향은 나중에 대만 공원에서 나는 나무향이 나요!" 라고. 그리고 정말 한 시간 정도가 지나 손목의 향을 맡아보니 정말 대만의 공원에서나 날 법한 싱그러운 나무 향이 났다. 당시 나는 린장지에 야시장으로 가는 초입이었고, 주변에서는 오토바이가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매캐한 매연의 거리 한 가운데에서, 내 손목에서 만큼은 오후의 싱그러운 나무향이 번져가고 있었다.
이후, 몇 달 뒤 다시 쓰쓰난춘을 방문했을 때는 그 향수 매대가 없었다. 빠르게 사라지는 플리마켓 특성상 같은 가게를 찾기 쉽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플리마켓에 갈 때마다 그 향수가 있었나? 하고 들여다보곤 했다. 이미 몇 년도 더 시간 추억이지만, 난 여전히 그 향이 코끝에 맴도는 것 같다. 향기가 사람을 다른 장소로 데려다 놓는 것 같은 경험은, 이 때가 처음이었으니까. 나는 아쉬움에 이 향수를 아끼고 아껴 썼지만, 50ml는 정말 작은 사이즈였다.
두 번째로 기억나는 소품은 휴대폰 케이스였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휴대폰 케이스는 너무 흔한 거 아니야? 물론 맞는 말이다. 길거리에 널리고 지하상가만 가도 휴대폰케이스를 파는 상점은 널리고 널렸으니까. 하지만 내가 샀던 것 대만 국기가 그려진 휴대폰 케이스였다. 그저 흔한 국기 모양 아니야? 라고 할 순 있지만, 휴대폰 케이스의 생산지가 중국이 많다는 걸 아는 사람이라면 이게 평범하지 않을 것이다. 양안관계로 인해 중국에서는 대만 국기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이니까.
나는 야시장을 6군데, 매장을 20곳을 방문하여 겨우겨우 대만국기가 그려진 케이스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땐 정말 뭐가 씌었던 건지 그 케이스를 너무 가지고 싶었다. 단순히 젤리케이스에 국기 하나 프린팅 된 것인데도 뭐가 그리 뿌듯했을까. 나는 며칠 동안 그 케이스를 잘 착용하고 다녔다. 대만에서는 사람들이 내 케이스를 볼 때마다 하나 같이 신기해 했다. 이런저런 질문도 많이 받았다. 그들의 웃음이 나는 참 좋았다.
한국에서는 반응이 조금 달랐다. 특히 한국에 있는 중국인들에게 항의를 듣거나, 괜한 시비가 걸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한 번은 어떤 중국인이 갑자기 "왜 양안관계를 존중하지 않냐"라고 내게 물은 적 있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걸 착용한 건데 무슨 문제가 있냐. 나에겐 자유가 있다. 여기는 한국이다." 라고 말했다. 덧붙여 "그렇게 이게 싫으면 당신이 안 보면 그만이다."라고 말하자 그는 대답을 하지 않고 갈 길을 갔다. 나는 중국인 친구, 대만인 친구들이 있는 자리에서는 함부로 양안관계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굳이 정치적인 이야기를 꺼내 좋을 게 없는 건 만국 공통이니까. 사실 내가 중국 국기 케이스를 달고 대만을 다녀도 별반 차이는 없을 것이다. 옛날에는 대만인 친구가 넌 너무 중국 본토사람처럼 말한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으니까. 당시에는 얼화를 많이 써서 그 친구는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물론 이 케이스는 나에게 기쁨과 당혹감을 동시에 주었으나, 지금은 이 케이스는 내 곁에 없다. 케이스를 통째로 휴대폰 자체를 도둑맞았기 때문이다. 당시 아이폰 6S PLUS 모델을 이용중이었는데, 나는 눈물을 머금고 휴대폰을 새로 사야 했다. CCTV도 모두 사각인 상황이어서 잡을 수 없다고 했다. 당시에는 서울에 살 때였고, 나는 사당역에 있는 매장에서 근무중이었다. 휴대폰의 마지막 신호는 안산이었다. 지금와서는 경찰에 신고부터 했을 때지만,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려서 그런 방법들을 전혀 몰랐다.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다. 이날 이후 나신고하는 법을 새롭게 배운 것이다.
나는 대만에 갈 때마다 플리마켓을 종종 들린다. 어떤 MADE IN TAIWAN을 만나게 될까 하는 설렘, 어떤 새로운 경험들을 느낄 수 있을 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종이에 스며드는 수채화 물감처럼 어떤 색이 입혀질까 하는 기대감이 나에게는 항상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