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아직 생리해?"
"... 응?"
한적한 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 조수석에서 갑작스러운 질문이 튀어나왔다. 사랑이는 물끄러미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달리던 속도는 살짝 느려지고, 느슨하게 잡고 있던 핸들에 힘이 들어갔다.
"당연하지."
속에서 뭔가 울컥하고 올라와 목소리가 살짝 튀었다.
"난 초등학교 4학년 때 시작했는데, 빠른 것 같아서 5학년이라고 해."
내게 남자친구 있냐고 묻고, 자신은 모쏠이라고 고백하더니 이젠 내게 생리 아직 하냐고 묻더니 자신은 4학년에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아빠에겐 할 수 없었던 말들이 순순 툭툭 튀어나오는 걸까. 더 이상 삼켜지지 않던 말들이 종이 위로 튀어나온 그때의 나처럼.
"오... 우리 사랑이, 역시 엄마 딸이네. 엄마도 4학년 때 시작했는데. 이런 것까지 똑같네?"
내 목소리에 담긴 웃음이 좁은 공간을 울렸다.
사랑이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엄마도 초등학교 4학년 때 시작했어?"
"응. 사랑이도 그때 시작하는 게 빠르다고 했잖아. 엄마 때는 더했어. 대부분의 친구들이 중학교 때 했거든. 엄마만 다른 것 같아서, 누구한테 말도 못 하고 속상했었어."
사랑이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아무 말도 없었다.
신호에 걸리자 방향지시등이 메트로놈처럼 닥닥, 우리 대화의 박자를 잡아줬다. 나는 에어컨을 우측으로 살짝 돌리며 살갗에 닿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사랑이를 힐끗 봤다.
"사랑이는 생리통 있어?"
"시작할 때만 잠깐."
"와... 그건 엄마 안 닮아서 너무 다행이다. 엄마는 내내 아팠어. 배를 부여잡고 등을 굽혀서 다니니까 다들 배가 아프냐고 묻는데, 그땐 '생리통'이라고 말도 못 했어."
말이 끝나자 방향지시등 소리가 멎었다.
"아플 때마다 양호실 갔어?"
"글쎄, 양호실이 있었는지도 기억이 안 나는 걸 보니까 안 간 것 같은데?"
"없었어?"
"그게... 기억이 안 나. 어제 일도 기억 못 하는데 30년도 지난 일을 기억하긴 바라는 거야?"
"하긴."
사랑이의 웃음소리가 차 안을 가볍게 흔들었다. 나도 따라 웃었지만 웃음이 끝나는 자리엔 허전함이 남았다
"근데, 참 이상한 게 있어. 사랑이 낳고 나서 생리통이 완전히 사라졌어."
"왜?"
"이유는 모르겠어. 그저 안 아파서 좋다고만 생각했거든."
스스로 '호기심 천국 어른이'라고 부를 만큼 질문이 많은 사람이라고 믿었는데, 그 시절에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살아온 순간들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사랑이 덕분에 시간 여행을 하는 이 순간이 참 좋다.
"사랑이는 엄마 약인가 봐."
"내가 약이라고?"
"응. 한 때는 소화제였는데, 그때는 진통제였네."
내가 웃자, 사랑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나를 바라봤다. 이럴 때 보면 내가 더 중2스러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조용한 웃음 속에서, 어두워지는 길을 우리는 한참을 달렸다.
집에 도착하자, 사랑이는 내 짧은 바지로 갈아입고 패드를 들고 엎드렸다. 나는 두 다리를 쭉 당겨 오일을 바르고 살살 마사지를 했다. 키 작은 중2가 신경 쓰이는 키 작은 엄마의 '조금이라도 크길 바라는 소망'이 내 손끝에 담겨 있었다.
그런데 바지 사이로 살짝 보이는 팬티가 '나는 생리 중'이라는 메시지를 내게 보냈다.
"지금 생리 중이야?"
"응."
"생리팬티를 입었네. 불편하진 않아?"
"응. 자다가 샐까 봐."
사랑이의 대답이 그 시절의 나에게 데려갔다.
어린 시절, 잠에서 깨면 빨갛게 물들어 있는 이불을 볼 때마다 어쩔 줄 몰라했다. 왠지 부끄러워서 들키면 안 될 것 같았다.
이불을 최대한 작게 돌돌 말아 조용히 방문을 열고, 화장실까지 발소리를 줄이며 걸어갔다. 얼룩진 부분을 빨고 또 빤 후에야 마음이 놓였다.
한 번은 돌돌 만 이불을 화장실에서 들고 나오는데, 이를 본 남동생이 큰 소리로 외쳤다.
"엄마, 누나 오줌 쌌어!"
"야, 아니야."
나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이불이 다 젖었잖아."
"아닌데..."
세 살 어린 남동생에게 생리혈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게 뭐냐고 꼬치꼬치 캐물을 테고, 대답하는 게 더 피곤할 게 뻔했으니까. 억울했지만 오줌싸개라고 불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혼자 살게 되었을 때에야, 아침에 도둑고양이처럼 살금 거리며 돌돌 만 이불을 들고 화장실로 향하는 신세를 면할 수 있었다.
그 기억이 문득, 지금의 사랑이를 바라보는 내 마음을 울렸다. 사랑이의 마음도 그때의 내 마음과 같을까. 나는 사랑이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토닥, 두드렸다.
"어? 근데 그거 왜 짧아?"
사랑이의 생리대가 너무 짧았다.
"짧아?"
"샐 거 걱정하면서 오버나이트 안 했어?"
"그게 뭐야?"
"몰라?"
"응. 난 이것만 써."
"......"
할머니와 함께 살아서 평소에 사용하는 것과 잠들 때 사용하는 게 다르고, 양이 많을 때와 적을 때 사용하는 생리대가 모두 다르다는 걸 당연히 알 줄 알았다.
너무 미안했다. 나의 빈자리가 이렇게 하나씩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내 마음에 비수가 되어 날아들었다.
"사랑아, 이게 잠들 때 쓰는 거야. 지금 하고 있는 것보다 길지?"
나는 욕실로 달려가 오버나이트 하나를 들고 와 보여줬다. 사랑이는 나와 생리대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새는 거 걱정이면 이거 써볼래?"
"굳이?"
또 '굳이'가 나왔다. 휴...
"안 써도 돼. 나중에 궁금하면 써 봐."
"응."
나는 한 발 물러섰고, 사랑이는 고개를 돌려 다시 유튜브에 시선을 맞췄다.
갈 곳을 잃은 아이를 제자리에 돌려놓으면서 욕실 수납장 한 칸을 전부 차지하고 있는 생리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밤에 쓰는 울트라 오버나이트에서 팬티라이너, 탐폰까지. 종류별로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어차피 쓸 거라는 생각에 인터넷에서 묶음으로 산 것들이었다.
그런데 문득, '이걸 다 내가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8일 생리 주기였는데, 갑자기 40일 동안 없어서 병원에 갔던 적이 있었다. 담당 여의사는 자연스러운 거라며, 몇 달 동안 하지 않으면 그때 다시 오라고 했었다. 자연스럽다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점점 생리양이 줄었다. 아직은 주기가 불규칙하고, 1주일을 꼬박 채우던 날이 3일 정도로 변했지만, 병원에 가야 할 시기는 오지 않았다.
잊고 있었는데... 아니, 기억하고 싶지 않았는데. 사랑이의 질문이 나를 그곳으로 데려다 놓고 말았다.
갑자기 엄마가 그리워졌다. 엄마도 그 어떤 날엔가 지금 내가 하는 생각을 했었을까? 엄마가 걸어간 그 자리를 향해 나는 걸어가고 있다.
사랑이는 엄마가 걸었고, 내가 아직 걷고 있는 이 길의 처음을 걷기 시작했다. 그때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불편하고 짜증이 많아지는 생리가 불편하겠지. 그렇게 싫었던 일의 끝이 보이며 아쉽고 속상하다는 걸 상상이나 할까?
엄마, 나, 그리고 사랑이. 우리는 모두 한 길을 걷는다. 시기만 다를 뿐.
나는 '아직 생리 중'이라는 마음의 꼬리표가... 위안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공감이란, 다른 사람 안에서 나 자신의 메아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 모신 하미드 (Mohsin Ham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