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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헤어샵 vs 강북 이발소

여자들의 앞머리만큼 남자의 구렛나루는 자존심이었다.

by 애셋요한

“아빠, 머리가 너무 길어 헤어샵 예약해줘.”

유독 외모에 관심이 많은 막내가 머리 긴 엎머리를 몇가닥

집어 올리며 이야기 했다.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인터넷

예약을 하려고 했고 나는 괜히 헛기침을 하면서 생각했다.

헤어샵이라고? 이발소 가면 안되나?'

아내는 강남에서 자라 이미 고등학교때 '헤어샾'을 다녔다.

초등학교 때부터 ‘어린이 머리 잘하는’ 미용실을 찾았고,

분홍색 로브를 입고, 거울 앞에서 “앞머리는 기를거예요."

라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가장 두드러지게 미용실에서 헤어샾으로 용어와 문화가

바뀌던 것은, 90년대 후반 부터 청담동이 뷰티상권으로

명성을 쌓기 시작하면서였다. 1990년대 ‘오렌지족’을

탄생시킨 로데오거리를 중심으로 카페와 패션, 미용실이

성행하고 가격이 치솟기 시작하면서 강남 토박이 아내

미용실보다 헤어샾을 선호했지만, '마음먹고' 가야하는

곳이었다.


아내가 미용실에 가는 건 단순한 머리를 다듬는 것이

아니라 스타일 연출과 스트레스 해소이다. 특히나 극악한

미국의 미용실 물가와 서비스 질을 버티고 한국에 돌아와

헤어샾에서 펌과 두피 스케일링에 영양 앰플까지 받는

아내를 보며 얼마나 한국이 그리웠을까 미안하고 고맙기도

했었다.

요즘 '헤어샾'은 예약없이는 갈 수 없다.


나는 강북에서 자라 동네 이발소를 다녔다.

집 앞에 ‘이발소’ 간판이 달린 곳. 하얀 가운을 두르고

철제 발판 위에 앉으면, 이발소 아저씨는, “똑같이?”라고

했고, 어쩔땐 묻지도 않았다. 옆자리엔 신문 읽는 아저씨,

머리 자르며 꾸벅꾸벅 졸던 동네 할아버지가 있었다.

가끔 아버지와 이발소를 가면 차례를 기다리며 거울 뒤에서

나를 지켜보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각난다. 본인은 면도까지

하셨는데 아버지를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해보리라 했지만

결국 아직도 그 '면도'는 나에게는 어색하다.


언젠가, 블루클럽도 잘 안보이고 아내가 다니는 헤어샾은

왠지 쑥스러워 동네에서 바버샾을 검색해 찾아 갔는데,

그곳은 외형은 영국에서 본듯한 이발소인데 가격은 거의

헤어샾 수준이라 나에겐 다가가기 어려운 문화였다.

'아.. 그냥 다니던 회사근처 이발소나 다시 가야겠다..'

(내가 유난히 낯을 가리는 성격이고 편의점 봉투 값 같이

이상한데서 가격에 발끈하는 상황이 있다.)


이발소가 영어로 바버샾 아닌가?


아내의 강남 ‘헤어샵’은 스타일의 완성,

남편의 강북 ‘이발소’는 단정함의 시작이었다.

아내를 따라 헤어샾에 가서 아이들이 단골 실장님과 이야기

하는 것을 들으면 벌써부터 성격이 보인다.

큰 아이는 날 닮아서 그냥 단정하게요 하고 입을 닫고

둘째 딸아이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엄마가 하는 것 따라서

일단 예쁘게 해달라고 수줍게 말한다.

막내는 아주 당돌하게 추구미가 확실하다.

오히려 아이가 호불호가 확실하다는게 신기하기도 기특

하기도 하다.


또 하나, 신기한것은 , 외식이던 공연이던 아내가 예약하고

같이가도 계산은 내 몫이었는데, 아내는 헤어샾 계산만은

나모르게 슥 자기가 결제를 한다는 것이다. 알면서도

모르는척 넘어가지만, 아마도 내 눈치가 보이는 것이 있는가

보다. 머리를 다듬고 나오는 막내에게 물었다.

“넌 어떤 머리가 제일 좋아?”

“음… 엄마가 말해주는 스타일이 제일 좋고, 아빠가

웃으면서 ‘멋지다’ 해주는 게 제일 좋아. 그리고 엄마,

아빠가 뒤에서 보고 있는거 거울로 비춰볼때가 재밌어.”

맞다. 누가 머리를 잘랐든, 어느 가게였든, 결국 기억에

남는 건 거울 너머로 비친 가족의 표정을 아이가 기억하는

순간이다.



얼마 전, 커뮤니티에서 요즘 '헤어샾 문화'라며 웃지 못할

글을 본 적이 있다. 아마 우리나라 특유의 결혼 '스드메'

문화와 맞물려 헤어샾 디자이너에게 조공을 하는 문화에

대한 헤프닝을 다룬 글이었다.


조공 문화도 인기척도라고 과열되다보니
'주작'을 하는 웃지못할 헤프닝도 생긴다


어떤 직업이 전문성이 강조되고, 인건비가 오르는 사회

문화적 현상에 사회적인 지위를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이해가 되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질타를 받으니 조심해야

된다는 경종을 울렸다. 어차피 미용업종은 AI로 대체되기

어렵다는 분석이 있으니 굳이 불안해하지 않아도 인기가

오를 것이다. (인간의 심리가 칼이나 가위를 기계가 인체에

접촉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는 의견..)



■ TMI - 우리나라 최초의 이발소 / 미용실은 ?


1902년 동흥 이발소우리나라 최초 이발소이지만

단발령이라는 역사적 배경과 함께 등장하게 되었다.

1920년 창덕궁앞 운니동 경성 미용원은 공식적으로

신문광고를 통해 역사에 등장한 최초의 미용실이지만

여성전용 커트와 스타일링 위주로 펌 기술은 없었다.

1931년 화신 백화점에 생긴 화신 미장원의 오엽주

선생은 배우 출신으로 일본에서 퍼머넌트 기술을 배워

한국에서 시행한 최초의 정식 미용실이다.




■ AI 시대 육아 메시지


단정한 머리가 아이의 표준이던 시대에서, 이제는 원하는

머리 모양을 이야기 하는 아이의 자기 표현이 중요시되는

시대다. 부모는 아이가 머리를 자르거나 정돈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아이가 어떤 모습을 원하는지(메타인지)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발소든 헤어샵이든, 가위를 든 손보다 중요한 건,

그 순간 아이의 창의력을 존중해주고 자존감을 다듬어주는

부모의 말 한마디다.


여러분의 공감(♥)은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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