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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립 Jul 05. 2022

놓지 마 집중력을 시작하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직접 경험하고 쓴 성인 ADHD 이야기

저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입니다.
ADHD가 있는 가족을 보면서 자라왔고 제 자녀 중 한 명이 같은 길을 가고 있어서 ADHD에 관한 진단과 치료에 더 각별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치료제를 복용 중인 ADHD 환자로서

제 진단 과정이 성인 ADHD에 대한 평가를 주저하는 분들께 많은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 이야기로부터 첫 문을 열어봅니다.


제 동생은 전형적인 소아기 ADHD 였습니다. 동생이 지나가는 곳마다 무언가가 떨어지고 깨져서 부모님께 같이 혼났던 기억이 부지기수입니다. 동생은 선한 아이였지만 학교에서 의도치 않은 싸움에 자주 휘말렸습니다. 물건을 관리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던 것은 물론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도 없어 보였습니다. 아침마다 어머니와 전쟁을 치르는 것을 보면서 한심한 듯 혀를 찼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동생이 고등학생이 되어 저희 집은 학교에서 3분 이내 거리의 빌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렇지만 대지각이 소지각으로 바뀌었을뿐 지각은 지속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행동이 ADHD일 것이라고 아무도 생각을 못 한 이유로 동생은 늘 "매가 약이다"라는 아버지의 해결법을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제가 정신건강의학과 수련을 하던 어느 날, 무릎을 탁 치며 동생의 일련의 문제들이 ADHD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 자신도 ADHD일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습니다. 저는 가능한 한 목표를 이루는 사람이었고 늘 약속 시간을 미리 지키려고 했고 제 물건은 소중하게 챙겼기 때문에요. 주기적으로 몇일씩 우울과 무력감에 빠질 때가 반복적으로 있었습니다. 강박적 걱정에 장기간 휩쓸려 우울감에 빠질 때가 가장 많았습니다. 그 밖에 무언가에 에너지를 몰아서 쓴 후 탈진할 때, 똑같은 일상이 장기간 무료하게 반복되던 어느 때, 혹은 가까운 사람에게서 크게 거절감을 느낄 때, 여러 가지 일들을 벌이다가 피로감이 극심해질 때 등이었습니다.  


늘 머릿속에는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새로운 아이디어나 계획, 이전에 실수했던 기억,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일이 나중에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에 대한 걱정 등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런 생각들을 그냥 잊어버리려 해도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는데, 생각을 글로 적어 놓으니 생각이 잘 놓아지는 경험을 한 후에는 여러 개의 메모장과 수첩에 떠오르는 생각을 난해하게 중복해서 적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생각을 메모해 두어야 한다는 습관이 생기면서 펜을 모으거나 메모장을 사들이는 습관도 생겼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로 진로를 정하고 나서는 과학고와 의대라는 궤적에서 오는 인문 지식 결핍에 대한 보상으로 책을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쓰지 않은 펜들과 보다 만 책들이 70프로는 넘는다는 겁니다.

현재, 흩어져있는 책들과 전자책까지 포함하면 10권 정도의 책이 동시에 아주 천천히 진도를 나가고 있습니다. 당장 보지 않는 책들과 잡다한 물건들을 가방에 가득 채워 다니는 습관은 물론이구요.


개업의가 되고 나서 진료뿐 아니라 의원 운영과 외부 자문 일, 그리고 세 자녀의 부모 역할을 맡게 되자 제 자신이 우선 순서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여실히 깨달았습니다. 또한 안 해 본 일에 대한 호기심에 이끌려 거절을 하지 못하고 할 일을 확장해갔고 나중에 고생하거나 가족의 원망을 듣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전문과 수련 시절부터 상담 시간 조절을 못해서 늘 퇴근 시간이 늦었고 개업 날엔 전 직장 동료들로부터 숫자가 크게 보이는 탁상용 전자시계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제 자신은 환자와 진료에 충실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고 착각을 했었지요. 그런데 전문의로서의 경험이 수년이 쌓여도 상황과 필요에 따라 시간을 조절하는 능력은 제자리걸음이었습니다. 상담을 하면서 말이 헛나오거나 군더더기 부연 설명이 많아서 내담자분들이 "네?" 하고 되묻는 경우가 정말 많았습니다. 특히  말을 잘 요약해서 다시 전달하고 그날의 주제에서 크게 이탈하지 않게 되돌아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현재 콘서타에서 가장 도움받는 부분)


젊은 내담자분들께 초등학교 생활기록부를 자주 요청하면서 느낀 것이, 자신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 어떤 아이였는지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같이 내용을 확인하면서 자신이 어떤 아이였는지 어렴풋이 상기하는 것을 지켜보던 어느 날, 제10살 무렵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올랐습니다. 수업시간 중인데 선생님의 말에 일일이 대꾸를 하거나 질문을 하는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지인과 대화 중에 기다리는 것이 지루해서 두 분 주위를 수십 분이 넘도록 빙글빙글 돌았던 기업이 납니다. 지금도 아무것도 안 하고 쉬거나 기다리는 것처럼 가만히 있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LPG 가스통이 여러 개 놓인 마당이나 심지어 방 안에서 동생과 함께 성냥과 화장지로 불장난을 자주 했고 전기 콘센트에 젓가락을 꼽는 등 짓궂은 장난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늘 동생이 다치거나 무언가를 부수는 종결자 역할을 하다 보니 저의 소행은 비교적 숨겨졌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동생과 달리 이런 ADHD와 관련된 행동을 숨기는 적응 패턴을 만들어갔습니다. 학습에 일정 시간의 인내가 필요한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저는 공부를 할 때 돌아다니지 않으려고 넥타이나 끈으로 의자에 결박을 하는 습관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심과 아버지에 대한 무서움은 학업을 위한 연료가 되었습니다.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 된 저는  일견 ADHD와는 동떨어진 듯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중학교에 진학하여 공부만 하던 저는 이상한 고집쟁이였습니다. 미술이 싫다고 그림 숙제를 끝까지 제출하지 않아 미술 선생님의 미움을 사고 벼락치기로 쉽게 점수를 얻을 수 있는 사회 시험을 앞두고 깜빡 잠이 들어 시험 범위를 다 공부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회 시험지를 제출하지 않아 담임 선생님을 난처하게 했습니다. 수업 내용이 지루하거나 알고 있던 내용이면 설명이 도무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런 이유로 수업 시간의 반 이상은 혼자 책을 보며 공부했습니다. 모범생인 듯 모범생이 아닌 얄미운 학생이었지요.


그런데 체육 선생님은 그런 제가 그렇게 웃겼는지 좋아해 주셨습니다. 공부하지 않을 때 얼핏 보이는 제 엉뚱하고 어리버리한 행동을 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빈장인 저는 매 체육시간에 구령을 외쳐야 했는데 늘 틀렸습니다. 서로 다른 지시의 구령을 섞어서 외치거나 혼자 다른 방향으로 가는 식으로 말이죠. 멀리 던지기 실기 수업 때는 던지기 각도 조절이 안 되어서 공을 냅다 바닥에 꽂아서 반에서 최단거리 기록을 세웠습니다.  오래 달리기에서는 1등으로 들어오면서 구겨진 자존심을 만회했다는 생각에 만세 세리머니를 하며 털썩 주저앉았는데 선생님이 눈이 휘둥그레지며 한 바퀴 더 남았다며 껄껄 웃었던 해프닝도 생각납니다. 이런 어리버리한 실수들의 행진은 상대방의 말을 잘 못 이해해서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웃픈 실언을 하는 식으로 고등학교에 이어 의과대학까지 이어지면서 '얼' '바보' '바 선생' 등의 동종의 별명을 쭉 얻게 되었습니다.


3년의 연애 끝에 결혼하여 생활을 함께 한 아내는 제 생활 습관에 대해 꼬리가 길다며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불을 끄지 않거나 문을 끝까지 안 닫고 애매하게 열어두거나 물을 흘리거나 물기 있는 손으로 여기저기 만지는 등 사소한 행동을 일일이 지적했습니다. 신혼 초에 이런 문제로 지적받는 것이 자존심이 상한 저는 불만을 터뜨리며 화도 자주 냈습니다. 저는 결코 한 기억이 없는 말이나 행동을 아내는 제가 했다면서 거짓말쟁이로 몰아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결혼 생활을 통해 저는 미리 계획하거나 관심으로 집중하는 일이 아닌 경우에는 곧 잘 잊어버리거나 놓치는 일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이런 문제들이 소소한 불편만 주고 넘어간 때도 많았지만 그렇지 않고 큰 좌절과 고통을 남겼던 경우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 차이는 당시 지냈던 환경이 얼마나 단순하고 구조화된 상황이었는지주변에서 격려해주는 사람이 있었는지에 따라 갈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공부만 했던 중학교 때나 시험에 쫓겨 생활이 단순했던 의과대학 본과(3학년~6학년)시절에는 복합적인 상황에 처해 고민에 빠질 일이 비교적 적었습니다.  힘든 상황에서 지지적인 선생님과 친구가 있을 땐 잘 고비를 넘겼던 기억이 납니다. 미술 숙제를 내지 않아 점수를 받지 못했을 중학교 때 상황은 담임 선생님께서 도화지를 놓고 한 시간을 설득한 결과 대충이라도 마무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겠다고 며칠을 결석한 적이 있고 의과대학을 휴학하겠다고 며칠을 고민한 적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다행히 멘토나 친구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성인 ADHD는 다양한 형태의 부주의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경향은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스스로 적응하는 보상 행동을 통해 가려지거나 다른 문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처한 환경에 따라  문제가 숨겨지기도 하고 완연하게 드러나기도 합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어린 시절부터 성장 과정 내내 문제가 축적되면서 우울증, 불안장애, 충동조절장애, 인격장애, 중독 문제와 같은 다양한 공존 질환이 겹쳐지면서 평가를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아니었다면 인생의 위기 때마다 다양한 이유로 몇 번이고 정신건강의학과의 문을 두드리고 치료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오래 전부터  갑자기 떨어지는 기분 문제와 강박 장애로 항우울제를 스스로 복용해왔구요. 그래서 수 년 전 동료 선생님의 자문과 협의를 통해 adhd로 결론을 내리고 콘서타를 투약 하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콘서타를 투약 중인 어린 제 딸이 훗날 성인이 되었을 때  증상으로 인해 위축되거나 자책하지 않고 제 경험담을 통해 용기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재를 이어봅니다.


                    



p.s 위 내용만으로 진단이 충족되는것은 아닙니다

제 흑역사를 다 밝히는게 창피해서 공개를 안한 다른 문제들도 있어서 진단하게 되었음을 참고해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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