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는 침대가 없었기 때문에 안개를 무서워했다. 무언가가 튀어나온다면 아마 거기서 나올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가평 산골짜기의 안개는 꽤 대단했다. 코앞을 간신히 구분할 수 있을 만큼 자욱했기 때문이다.
당시에 다녔던 곳이 유치원이었는지 초등학교였는지 잘 모르겠다. 부모님이 바빠서 항상 혼자 등교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안개가 낀 날이면 도저히 길을 나설 수가 없었다. 엄마가 동생을 붙여 보내지 않았다면 아마 결국 한 걸음도 떼지 못했을 것이다. 동생은 산 아래 교회까지 나를 데리다 준 후 다시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는 했다. 발간 볼 코흘리개가 어떻게 혼자 그 무시무시한 길을 되짚어 돌아갔을까.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는 안개 대신 어둠을 두려워했다. 서울에 상경한 아버지는 싱크대 공장을 차렸는데, 상가 건물 지하를 세 들어 쓰고 있었다. 거기에는 창문이 없어서 불을 끄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지하 특유의 습하고 퀴퀴한 공기 때문에 마치 다른 세계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공장 전원 스위치는 내 키보다 높은 곳에 있었다. 그래서 심부름 갈 때마다 필사적으로 어둠 속을 뒤적여야 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무언가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게 뒤에서 덥석 어깨를 붙잡을까 봐 항상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성인이 된 후에는 그런 일들을 모두 잊고 있었다. 소안도에서 다시 마주치지 않았다면 영영 잊고 살았을 것 같다. 안개도 그렇지만 밤이 그렇게 어두울 줄 미처 알지 못했다. 그 어둠 속에서 꽤 많은 일들이 있었다.
시골에는 광원이 많지 않았다. 덕분에 맑은 날이면 밤하늘의 별이 쏟아져 내릴 것처럼 반짝거렸다. 석양이 타들어 가고 남은 재와 깜부기불이 그대로 밤하늘이 된 것처럼 보였다. 온 세상이 달빛을 머금어 부드럽게 빛나던 날도 있었다.
그러나 안개 낀 여름 어느 날 밤은 조금 달랐다. 그날은 아침부터 온통 짙은 운무가 끼어 수평선이 보이지 않았다. 물 건너 완도에서도 이런 안개를 본 일이 있다. 바닷가에서는 종종 하얀 해일이 밀려들어 모든 것을 삼키고는 했다. 내가 누리던 밤까지도. 그 어두운 위장 속에는 별빛도 달빛도 들지 않았다.
오랜만에 이른 시간부터 졸음이 밀려왔다. 매트리스 위에 엎드려 몇 글자 읽다 보면 순식간에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졸고 있는데 발가락 위로 무언가 떨어져 내렸다. 다리가 많은 생물 특유의 불쾌함에 나는 소스라쳤다. 거대한 지네였다. 푸르스름한 외피 아래로 수많은 다리가 꿈틀거렸다. 그 다리는 검붉은 색이었다.
간신히 지네를 몰아내고 나자 더 이상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문득 지붕 위에서 후다닥 뛰어가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지나가는 고양이려니, 사료를 한 줌 퍼서 밖으로 나갔다. 예상과 달리 마당에는 진득한 어둠뿐이었다.
구석에 놓인 밥그릇들은 마치 창백한 살덩이 같았다. 나온 김에 채워놓고 가야지, 으스스한 분위기를 애써 무시했다. 그리고 그릇 안에 든 민달팽이들을 봤다. 수십 마리의 민달팽이가 서로 체액 속에 뒤섞여 조용하게 소용돌이를 만들고 있었다. 그때 시선이 느껴졌다.
시골집 대문 옆에는 오래된 화장실이 있었다. 정화조가 없는 구식 시설이었다. 이제는 고양이들만 드나드는 곳이었다. 거기에는 묘하게 사람 얼굴 하나 내밀 수 있는 작은 구멍이 있었다. 고양이들이 종종 그 구멍을 통해 나를 바라보고 있을 때가 많았다. 그렇지만 확신하건대 그날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