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수영을 배운 지도 2년이 다되어간다. 물에 얼굴을담그는 것조차 무서워했던 겁쟁이가, 물공포증을 가지고 있던 내가, 이제는 물속으로 풍덩 다이빙도 하고 25미터는 거뜬히 잠영으로 간다. 물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영법을 구사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신이나기도 한다.
한때, 더 이상 나의 열정을 불태울만한 것들을 찾을 수 없어서 우울할 때가 있었다. 어렸을 때처럼 무엇인가에 미치듯 몰입할 수 있는 것을 과연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으로 가득했을 때가 있었다. 더 이상 하고 싶은 것도 재미있는 것도 없다는 생각에 무의미하고 무기력한 하루하루의 연속일 때가 있었다. 지나고 보니 그런 마음들을 느껴봤기에 지금 이 순간을 오롯이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기도 하다. 그저 나쁜 날들이 조금씩 지나갔던 것뿐이었다. 나의 삶이 나빴던 것이 아니다. 비구름도 끼이고 먹구름도 끼이고, 태풍도 휘몰아치고, 장마도 왔다 가고, 눈바람도 부는 날들이 있었기에 따사로운 햇살 가득한 날이 감사할 수 있었다.
수영을 처음 배우기 시작했을 때가 봄이 오기 전 매서운 찬바람을 간직한 2월이었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수영장까지 매일 걸어 다녔다. 매서운 추위에 그냥 집에 가서 따뜻한 전기장판에 노곤히 몸을 녹이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은 날도 있었지만 나의 발길은수영장으로 향했다. 수영을 잘하고 싶은 열정이 나의 발걸음을 이끌었다. 부비동염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하루 중 내가 쓸 수 있는 에너지의 80%를 다 쓰고 오는 것 같으면서도 수영을 배우는 것이 재밌었다.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의 모든 영법들만 배우고 계속 다닐지 생각해 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2년이 다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수영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요즘처럼 날씨가 추워질 때면 수영장 입구에 들어가기 전까지 갈지 말지 고민을 한다. 그렇지만 이미 나의 고민과는 상관없이 몸이 습관처럼 수영장을 향하고 있다. 기계처럼 움직이는 내 모습을 보며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수영을 배우기 전 시작하지 않을 수많은 변명을 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겨울에는 수영하기 너무 춥잖아~'라는 변명으로 행동하지 않았던 그때의 나에게 지금은 당당히 말해줄 수 있다.
"겨울에도 수영장 물온도는 27.9도로 사계절 내내 변함이 없어. 그러니 이런저런 변명하지 말고 무조건 해봐!"
열정을 불태울 무언가를 찾지 못해 무기력해했지만 사실 열정이 타오를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얼마 전 기안 84의 뉴욕 마라톤 완주 영상을 보면서, 달리는 기안 84를 스쳐가는 수많은 거인들을 보았다. 팔다리 없이 스케이드 보드에 몸을 의지하고 달리는 사람, 양쪽 겨드랑이 사이에 목발을 끼우고 달리는 사람, 의족을 한채 달리는 사람. 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그 어떤 변명도 필요 없다는 것을. 열정을 불태울 무언가를 찾지 못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열정을 불태울 무언가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열정이 불타오르는 무엇인가를 찾았다 해도 이내 그 불씨가 꺼지기도 하고, 힘들거나 지루하거나 재미없어지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럴 때는 잠시 냉정을 찾아 뜨거워진 마음을 식히고 하루하루 몸에 베인 습관으로 해나간다. 그렇게 냉정과 열정사이를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어느새 나의 삶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로가득 채워지고 있다는 것을알아차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