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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씨 Apr 07. 2024

극 F는 떨어지는 벚꽃 잎이 아프다.

벚꽃엔딩



26살 때였던가, 난소에 생긴 낭종으로 인해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다.


우리 집에서 차를 타고 나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꽃명소가 펼쳐지는데, 오른쪽에는 바다가 펼쳐지고 왼쪽에는 산과 집들이 있는 도로의 양쪽으로 벚꽃나무들이 굽이굽이 이어지는 길이 나온다. 4월의 어느 날, 수술을 하기 위해 병원으로 가는 길은 화사한 핑크빛으로 가득했다.


'우와... 너무 예쁘다... 수술하고 돌아와서 벚꽃이랑 꼭 사진 찍어야지!'


일주일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처참했다. 핑크빛 벚꽃들은 온데간데없고 연둣빛 새잎들이 돋아나 있었다. 일주일사이에... 그 많던 벚꽃들이 사라진 것이다.


그 뒤로 이 돌아올 때마다 미친 듯이 벚꽃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몽오리 질 때부터 잎을 퐁퐁 피우고, 비를 맞으며 촉촉해지는 벚꽃잎들을 한없이 카메라에 담아냈다. 바람이 불어 흩날리는 꽃잎들이 비처럼 내릴 때에도, 떨어진 꽃잎들이 바닥에 소복이 떨어져 바닥이 핑크빛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조차 놓치지 으려 애썼다. 마치 커가는 아이의 모든 순간을 기억하려 사진을 찍어대는 부모처럼.








F 중에서도 대문자 F인 나는 봄이 오면 말 그대로 미쳐버린다.  새순이 올라와 봉긋한 몽오리를 만들어내고 꽃잎을 피워내는 꽃들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꺄~~~'소리가 절로 나온다. 봄이 되면 내 마음속에도 꽃이 피나보다. 마음속에 피어난 봄의 기운이 번져 사람들의 모습들도 색색이 물들어 보인다. 화사한 옷차림에서, 설레는 발걸음에서, 발그레 물든 두 볼에서 봄이 만연하다.


풍성하게 꽃 피운 벚꽃나무 아래 서서 불어오는 바람에 떨어지는 꽃잎들을 느껴본다. 이 순간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위해서,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서, 휴대폰 카메라를 켜고 열심히 찍어댄다. 카메라 밝기를 려도 보고, 초점을 맞춰도 보고, 가로세로 수평을 맞춰보아도 내 눈에 담기는 것처럼 예쁘지가 않다. 끝내 사진 찍기를 포기하고 그냥 눈과 마음에 가득 담아 두기로 한다. 눈을 감고 떨어지는 벚꽃 잎을 맞고 있노라니 너무도 짧게 피고 지는 이 꽃잎들이 아쉽다. 이내 곧 푸른 잎들이 무성해지겠지만, 짧고 화려하게 피고 지기에 더 예쁘고 벅차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어본다.


우리 모두의 꽃피는 계절은 다르겠지만, 나무는 따스한 봄이 되면 반드시 아리따운 꽃을 피워낸다. 어쩌면 내가 이리도 떨어지는 벚꽃이 아쉽고 아프게 느껴지는 이유는, 엄마들의 카톡프사가 꽃인 이유는, 봄이 오면 변함없이 피워내는 꽃들이 경이로워서가 아닐까. 나의 꽃피는 계절은 언제 올지 모른 채, 어쩌면 이미 짧게 피웠다 져버린 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허망함과 상실감 속에서도 자연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고 매번 이렇게 꽃을 피워내니까.

활짝 피워낼 나의 꽃피는 계절이라는 희망의 씨앗을 봄이 증명이라도 해주듯 하늘과 땅 가득히 꽃이 만발한다. 남쪽나라는 이제 벚꽃들이 거의 다 떨어지고 초록이 무성해지고 있다. 철쭉과 진달래, 튤립과 장미처럼 색이 진한 꽃들이 피어나 봄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벚꽃들아, 잘 가. 내년봄에 만나자...

흑흑...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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