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후 2번의 외래진료, 그리고 아직 회복 중
지난주 목요일(23일) 외래진료로 유방내분비외과 서용준 교수님을 만나고 왔다.
오전에 가서 혈액검사 채혈을 하고, 오후에 다시 유방 내분비외과를 찾았다.
혈액 검사 결과는 모두 정상! 의사나 환자나 보호자나 모두 만족하며, 서로들 고마워했다.
유방 내분비외과엔 암 환자들이 주로 찾지만, 서용준 교수님은 부신 관련 전문의이기도 하다. 나에겐 서울대병원, 삼성병원, 아산병원 명의보다 더 고마운 평촌 한림대 명의시다.
빈혈 증상은 계속 나타났다. 수술 전후 똑같이. 훼로바유 서방정(철분제)과 신일 풀 산정(비타민B 일종인 옆산) 10일 치를 처방받아 왔다. 이 철분제가 나와 잘 맞는지 아직 의심 중이다. 심하진 않지만, 자꾸 짙은 갈색 설사를 하고 있어서.
세젤예 꾸미 엄빠(딸과 사위)가 '할미 몸보신하시라'라고 한우세트(등심, 채끝, 갈빗살 1.5kg)를 가져와, 매일 조금씩 구워 먹고 있으니, 철분이 많이 부족할 것 같진 않다.(그냥 내 생각~)
철분제를 이틀째 복용하지 않고 증상을 예의 관찰하고 있다.
다리에 쥐가 자주 난다. 뒤틀릴 때면 몹시 괴롭다.
너무 움직이지 않고 누워만 있으면 수술 부위도 불편하고 쥐도 더 자주 나는 듯.
천천히 걷기 운동, 처음엔 20분~30분씩 하다 차츰 늘려 지금은 40분~50분 정도 한다.
금세 자주 피곤하다. 산책하고 돌아오면 낮잠을 잔다.
가끔 속이 울렁대거나 머리가 띵할 정도로 기운이 없고, 걸음걸이도 보통 속도보다 훨씬 느리다.
아직은 조금 빠르게 걷기도 쉽지 않다.
수술 부위와 뱃속이 계속 불편하다. 불편함이 심하진 않다.
10월 6일부터 샤워가 가능하다니, 그때까진 좀 더 차분하게 지켜보려고.
샤워를 하지 못하니 좀 찜찜하고 끈적거리는 느낌이 들어 불쾌할 때도 있다. 빈혈이 있어서 철분제를 처방받았는데, 속이 부글부글 거리며 설사가 오락가락 중이다.
희한하게 배가 아프진 않다.
AM 10:30분 한림대 성심병원 외래진료엔 혈액검사가 없다. 더 이상 채혈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묵'이 나를 데려다주고 데려올 테니 마음도 편하다. 이번 진료를 받고 나면, 당분간 병원엔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은 병원에서 직접 안양 오빠 댁으로 가, 점심 식사까지 하고 집으로 돌아오려고.
가끔은 '묵'이 차려주는 밥상 말고, 묵이 배달 주문해 주는 음식 말고 좀 더 맛깔난 밥상을 마주하고 싶다. '묵'도 그러하리라! 딱한 가을 남자 '묵'에게 점심 한 끼라도 제대로 된 집 밥을 먹여주고 싶다.
정신적으로 여유로운, 육체적으로 평안한 일상을 지키며 살고 있는 걸까?
스스로를 믿는다고 매번 중얼대지만, 가끔 투명한 유리판 위나 얇은 얼음 위를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몸과 마음 균형을 이루며 살 수 있는 나의 시간이 남아있기나 한 걸까? 평정심을 흔들리게 하는 이런 생각이 들고나는 것도 싫구먼.
남편 '묵'은 AM8시 출장길에 올랐고, 아들은 성남 자기 집에 있다. 오랜만에 다시 혼자 남은 평범한 일상이 시작됐다.
가을이 깊어 가듯, 내 몸도 점점 회복되어 간다. 그런데 마음은 꽉 차 오르기보단 자꾸 비워진다.
비우며 살고자 했을 땐, 욕심이지 덕지 붙어서 떨어지질 않더니, 지금은 너무 텅 비워가는 것만 같아 허전하달까! 내 생각조차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살이다. 비워지든 채워지든 이조차 무슨 큰 의미가 있다고,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살아야지.
아인슈타인이 이런 말을 했단다.
'삶엔 두 가지가 있다. 기적은 없다고 믿는 삶과 인생의 모든 게 기적이라고 믿는 삶'
내 마음은 그 중간 어디쯤에 있다. 종교생활을 안 하고 있으니 기적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위선일까?
나를 걱정해 주는 가족과 친구들을 생각한다.
이들이 내게 힘이 되는 걸 보면, 인생의 어떤 부분은 작은 기적이 모이고 쌓이는 것 같다.
내 왼쪽 부신은 나를 아프고 힘들게 하더니 떠날 땐, '안녕!'이란 말 한마디 없이 잘려나갔다.
그런데 내 부신 수술 소식이 나에게 작은 기적들을 선물했다.
가족의 관심과 사랑도 당연한 건 아니다. 묵은 9월 15일 입원부터 10월 5일 오늘 아침까지 나를 챙기고 먹이며 케어한다. 아들은 거북이처럼 느린 내 산책에 동행했고, 아빠를 도와 설거지와 집안 청소를 한다.
딸과 사위는 전화 안부, 현금과 한우로 나의 몸보신을 챙겨줬다. 손녀 세젤예 꾸미는 그냥 보기만 해도 내겐 가장 큰 선물이다. 손녀 꾸미는 내게 힘과 기쁨을 주는 보물 같은 존재다.
물론 내 인생의 모든 게 기적은 아니지만, 손녀 꾸미는 나에게 긍정의 힘을 주는 '기적 1호'다.
93세 시어머니 걱정도 전해 듣고, 동서들의 진심도 텅 비어있던 단톡방을 울려댔다.
오랜만에 동서들의 목소리를 듣기도 했다.
친정 오빠의 걱정스러운 눈빛, 올케의 맛난 밥상.
그리고 따로 우리 집까지 날라다 준 육개장도 왜 이렇게 맛있던지.
무소식이 희소식이듯 별 연락 없이 지내던 친구들의 잦은 안부 전화, 단톡방 깨알 글씨도 다정 다정하다.
친구 YJ는 전북 고창에서 주문했다는 풍천 장어를 보내왔다, 몸보신하라고.
기독교 신자인 YJ는 나의 수술과 회복을 위해 매일 아침마다 기도했다는 전화도 잊지 않았다.
서울서 이웃하며 사귄 친구 HS도 잦은 전화로 안부를 물어온다.
얼굴을 하나하나 떠 올리면 울컥 보고 싶다.
나는 아직 집 근처를 벗어나지 못한다. 가을이 깊어지면, 좀 더 먼 곳까지 산책부터 늘려가야겠다.
새봄이 오면, 모두의 얼굴을 꼭 봐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있다.
'코로나19'도 2022년엔 그만 떠나버려라!
수술 후, 블로그 포스팅도 시큰둥해졌다. 이렇게라도 끄적거리면 되는데, 시동이 잘 걸리질 않는다.
의자에 2시간만 앉아 있어도, 허리가 아프고 몸이 피곤하다.
한림대 유방내분비외과 서 교수님은 내게 물을 매일 2L씩 마시라고 당부했다. 물을 많이 마셔야 전해질 균형도 잘 이루고, 발과 다리에 자주 나는 쥐도 멈출 수 있다고.
그런데 나는 어릴 때부터 국물을 잘 안 먹었다. 아직도 국을 건더기만 건져 먹고, 평생 국물 있는 음식을 좋아하지 않고 살아왔다. 물도 많이 마시질 않는다. 할 수 없이 이온음료를 사다 물과 병행해서 마시고 있다.
묵이 희뿌연 포카**, 푸른색 파워에**, 연녹색 게토**까지 골고루 사다 두었는데, 나는 지금 단 한 병 남아있는 게토** 병뚜껑을 열 수 없다. 오른쪽 손목 안쪽으론 아직도 동맥 채혈 주삿바늘 자국이 남아있고, 조금만 힘을 써도 손목과 엄지손가락이 아프다.
금세 서글퍼진다. 내가 마실 음료수 병뚜껑도 못 열다니. 아, 아니다. 난 수술 전에도 병뚜껑 비틀어 여는 게 엄청 힘들었다. 그냥 좀 허약한 체질일 뿐이다.
사람마다 능력이나 재능, 체력이나 역량은 다 다르니까. 서글플 일이 아니고, 물을 자주 많이 마시며 습관으로 만드는 것이 답이다.
체내 수분이 부족하면 어지럼증까지 생긴다니,
빈혈이 있는 나에겐 영양제나 고기 챙겨 먹는 것보다 물을 자주 마셔주는 것이 더 필요하다.
수술 부위가 눌려지거나 부딪히면 아파서 산책도 붐비는 곳은 피한다.
그러나 오늘은 수술 후 처음, 집 근처나 안양시내를 벗어나 백운호수로 드라이브를 했다.
보리굴비 정식으로 점심식사를 즐기고 돌아오는 길, 배가 불러서 인지 차 안에서는 꾸벅꾸벅 졸았다. 오늘도 평소처럼 기운은 없지만, 나는 믿는다.
매일 조금씩 더 좋아지고 있다고.
수술 후, 3개월이 지난 작년 12월 22일 한림대 성심병원 유방 내분비과 주치의를 만나고 왔다. 수술은 거듭 잘 됐다고 하시니 위안이 된다.
나는 수술 후, 3주 후부터 수술부위 통증이 나타났고, 3개월까지 매일 여러 번 꽤 강한 통증이 들고 나곤 했다. 통증 때문에 혼자 이런저런 걱정도 제법 많이 했다. 수술이 잘 됐다 하시니, 통증이 들고나는 것도 서서히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서는 2년간이나 통증을 느끼기도 한다고.
수술 후, 3개월 18일이 경과한 1월 9일 현재 통증 횟수가 많이 줄었다. 하루에 2~3회 정도이고, 어떤 날은 1회로 그치기도 하고, 그 강도도 점점 약해져 간다. 이 정도면 견딜만하다.
산책(가벼운 운동)과 물 많이 마시기는 평생 계속하면서 살기로 다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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