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한강의 장편소설

나는 동호와 정대의 못다 핀 꿈의 언저리에 머물곤 했다.

by Someday

한강은, 80년 5월 당시 영혼이 '어린 새' 같았던 열다섯 살 중학생 동호의 묘지를 찾았다.

동호의 오른편과 왼편 무덤은 모두 고등학생들의 것이었다.

'강'은 가방을 열어, 가지고 온 초들을 소년들의 무덤 앞에 차례로 놓았다.

한쪽 무릎을 세우고 쪼그려 앉아 불을 붙였다.

기도하지 않았다.

눈을 감고 묵념하지도 않았다.

초들은 느리게 탔다.

소리 없이 일렁이며 주황빛 불꽃 속으로 빨려 들어 차츰 우묵해졌다.

그의 무덤 앞에 쌓인 눈 더미 속을 디디고 있던 한강의 젖은 양말 속 살갗으로 눈이 천천히 스며들어왔다.

그녀는 반투명한 날개처럼 파닥이는 불꽃의 가장자리를 묵묵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 마지막 구절, 본문 215쪽



한강의 장편 소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간, 잔혹했던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상황을 <어린 새>의 너, 동호 / <검은 숨>의 나, 박정대 / <일곱 개의 뺨>의 그녀, 김은숙 / <쇠와 피>의 나와 김진수 / <밤의 눈동자>의 침묵하는 여덟 번째 증언자, 임선주 / <꽃 핀 쪽으로>의 동호 엄니의 입장과 시각으로 당시 이야기를 생생하게 이어갔다.

작가는 『소년이 온다』를 집필하기 위해,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철저한 고증과 밀착 취재에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절제된 문장, 밀도 있는 표현을 통해 당시 상무관에서 활동했던 이들이 겪은 5·18 전후 삶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아냈다. 동호의 처참한 죽음을 통해 당시 이야기들은 비로소 현재 우리에게 함축적으로 녹아들었다. 우리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비극적인 한 장을 다시 천천히 넘기면서 기억 속에 또렷하게 담아두었다.


1장 어린 새

5·18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너는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하고 혼자 살아남기 위해 도망친 모든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정대를 찾으러 다니고 있다는 구실로, 폐허가 되어버린 광주 시내 이곳저곳을 기웃대던 너(동호)는, 결국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관리하는 일을 돕겠다고 나섰다. 정대는 너희 집 문간채에 누나와 단둘이 사글세로 살고 있던 친구였지.

너는 매일같이 합동분향소가 있는 상무관으로 들어오는 시신들을 수습하면서 '어린 새' 한 마리가 빠져나간 것 같은 말 없는 주검들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초를 밝혔다. 너는 매일 매시간 ‘시취를 뿜어내는 것으로 또 다른 시위를 하는 것 같은 시신들' 사이에서 친구 정대의 처참한 죽음을 떠올리며 괴로워했다.


2장 검은 숨

나는 동호와 함께 시위대의 행진 중,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쓰러졌다.

나(정대)는 열십자로 겹겹이 포개져 버린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일 뿐이었다.

이들은 이미 죽었거나, 죽음을 맞이한 참혹한 상태로 짐짝처럼 던져지고 포개졌다.

나는 이 상황을 한동안 지켜보며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다.


국가의 폭력 앞에 꾸밈없이 순박했던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죽지도 살지도 못하던 정대의 눈길을 통해 그려진 비참한 상황에 몸서리가 쳐졌다.

정대의 처참한 목소리로 울려오던 독백은 독자들에게도 고통으로 전이됐다.

정대 누나, 정미는 중학교를 마치기 전 공장에 들어가 자신의 꿈을 미루고 동생을 뒷바라지했다.

그런데 정미 역시 그 봄에 행방불명되면서 우리는 남매의 비극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현실이 참으로 가혹했다.


3장 일곱 개의 뺨

그녀 김은숙은 당시 수피아여고 3학년 시절에 5·18을 겪어야 했다.

앳된 여고생 그녀는 '전두환 타도'를 외치던 데모로 점철된 대학 생활을 포기하고 작은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게 되었지만, 담당 원고의 검열 문제로 서대문경찰서에 끌려가 ‘일곱 대의 뺨’을 맞는다.

사내가 첫 뺨을 때렸을 때, 그녀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다음 따귀가 날아오기 전에 몸을 피하지도 않았다..... 가만히 숨을 죽인 채 기다렸다. 사내가 멈추기를. 세 번째에도, 네 번째에도 그게 마지막일 걸라고 믿었다..... 일곱 번째 따귀를 올려붙인 사내가 탁자 맞은편 접이 의자에 기대 않았을 때에야, 다섯에서 끊겼던 숫자에 둘을 더해 셈을 완성했다. 일곱 대.

사내는 그녀를 '개 같은 년', '쥐새끼 같은 년'이라 부르며 쥐도 새도 모르게 죽기 싫으면, 그 반역자 새끼가 어딨는지 불라고 족쳤다.

'가족한테도 안 알렸다는 연락처를, 처음 만난 출판사 직원한테 왜 알려주겠어요.'

..... 5.18 당시, 그녀는 처음부터 살아남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인간을 믿지 않았다. 어떤 표정, 어떤 진실, 어떤 유려한 문장도 완전하게 신뢰하지 않았다. 오로지 끈질긴 의심과 차가운 질문들 속에서 살아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 본문 96쪽


4장 쇠와 피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 - 본문 117쪽


상무관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대학생 김진수도 군인들에게 연행됐다.

쏴보지도 못한 채 소지만 하고 있던 총으로 인해 극렬분자로 낙인찍힌 채, 힘든 옥살이를 해야 했다.

함께 연행된 이들은 이후 ‘모나미 볼펜’ 손가락 고문 등을 받았는데, 특히 곱상하게 생겼던 김진수는 성기 고문까지 받으며 더 끔찍한 수감생활을 해야 했다.



그는 5·18 당시, 인구 40만의 광주 시민들을 진압하기 위해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이 80만 발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

광주의 모든 사람들의 몸에 두발씩 죽음을 박아 넣을 수 있는 탄환이 지급되었던 것이다.

이런 엄혹한 분위기 속에서도 국가의 부조리에 맞섰던 이들은 함께 투쟁했던 시위 현장에서 ‘깨끗하고도 무서운 양심’의 강렬한 힘을 느꼈다. 진수 역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느꼈고, 수십만 시민이 모여 만든 위대한 ‘양심의 혈관’은 뜨겁고 강렬했다.

..... 그러나 그는 출소 후, 당시 혹독한 고문에 따른 트라우마로 고통받다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5장 밤의 눈동자

봉제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고귀한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 노조활동을 하다 쫓겨난 당신(임선주)은 이후 양장점에서 일을 하다가 상무관에서 하는 역시 고귀한 일에 합류했다.

..... 견디는 것은 당신이 가장 잘하는 일이다. 중학교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당신은 일을 시작했다. 상무관에서 잡혀가 교도소에서 보낸 일 년 여의 시간을 제외하면 노동을 멈춘 적이 없었다.

어용노조를 큰 표 차로 꺾고 뽑힌 노조 간부들을 구사대와 경찰들이 끌고 가던 날, '잡아가지 마요'라고 소리치던 그녀들을 향해 각목 든 구사대가 달려들었고, 성희 언니와 동료들과 당신은 헬멧과 방패로 중무장한 백여 명의 경찰과 차창마다 철망이 쳐진 전경차들을 마주해야 했다. 임선주 당신은 생각했다. 무엇 때문에 저렇게 무장했을까, 얼핏 생각했다. 우린 싸움도 못하고 무기도 없는데.....

그리고 당신은 경찰에 연행된 인간으로서, 한 여성으로서 결코 겪어선 안 될, 하혈이 멈추지 않는 끔찍한 고문을 당했다.



6장 꽃 핀 쪽으로

동호의 엄니도 살아 있다는 현실이 오히려 치욕스러운 고통의 일상임을 마주하며 무력하게 살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던 5.18 당시 무력감에 괴로워하던 이들의 모습은 45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소년이 온다』 책장을 넘기면서, 국가가 자국민을 향해 자행한 잔혹함과 악행에 치를 떨다 보면, 쭉쭉 넘겨지던 책장의 본문을 마음은 미처 다 따라가지 못한 채. 동호와 정대의 못다 핀 꿈의 언저리에 머물곤 했다.

우리 역시, 모질고 혹독했던 80년 5월 18일 열흘간의 근처를 지금도 서성이고 있는 건, 아직도 치유되지 못한 분들의 고통을 오롯이 함께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지구 반대편에서 자행되고 있는 비인간적인 국지전을 뉴스로 지켜보는 것이 고통스럽고 슬프다.

힘을 가진 권력자들은 누구를 위해 전쟁을 자행하고 있는지 스스로 되묻기나 했을까.

이 시간에도 죽어가고 상처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은 힘없는 시민들이다.

과연 전지전능하시다는 이들의 신은 비이성적인 이들 권력자의 심각한 오판에 언제까지 침묵하고 계시려나?

왜, 많은 시민들의 값비싼 희생이 따른 뒤에야 뒤늦게 반응하시는 지도 정말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한강은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국가의 무자비한 폭력성을 통해, ‘유전자에 새겨진 듯 동일한 잔인성’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과거뿐 아니라 현재에도,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는 인간의 잔혹함과 악행에 대해 우리 모두에게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그 도시의 열흘을 생각하면, 죽음에 가까운 린치를 당하던 사람이 힘을 다해 눈을 뜨는 순간이 떠오른다.

입안에 가득 찬 피와 이빨 조각들을 뱉으며,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밀어 올려 상대를 마주 보는 순간.

그 순간을 짓부수며 학살이 온다. 고문이 온다. 강제진압이 온다. 밀어붙인다. 짓이긴다. 쓸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눈을 뜨고 있는 한, 응시하고 있는 한 끝끝내 우리는.....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 본문 213쪽


끝나지 않는 오월,

피지도 못한 채 시들어버린 아이들의 영혼을 위해 부르는 간절한 노래가 너무 슬펐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살아남은 것'을 오히려 치욕이라 생각했던 분들의 깊은 상처와 지독한 아픔을 함께 끌어안고 가야 한다.

『소년이 온다』는 국가 폭력에 그대로 노출된 암울했던 시대에 참혹했던 이들의 아픔을, 영원히 아물지 않을, 죽어서도 여전히 들쑤실 그 깊은 상처를 함께 보듬어 살펴보게 하는 책이다.

상처 입은 영혼들은 모두 밝고, 빛이 비치고, 꽃이 핀 쪽으로 가시길,

더 이상 억울한 영혼들이 없길,

나아가, 우리가 모두 평온한 일상을 보낼 수 있길.



이전 04화『작별』한강의 단편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