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한강이 만들고 부른 노래

'한 강'은 간절하게 '한 나무'가 되고 싶어 했다.

by Some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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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은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에서 '강'이 아닌 '나무'가 되고 싶어 했다. '한 나무'에게, 죽는다는 것은 더 이상 나무를 보지 못하는 거였다.


겨울날 뼈대를 드러내고 하늘을 향한 활엽수들,

봄날 연푸른 잎을 돋워내는 나무들,

그 줄기와 가지의 아름다움,

그 잎사귀의 빛과 소리를,

그 꽃과 냄새를, 열매의 빛과 맛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가장 나약할 때, 가장 지쳤을 때, 때로 억울하거나, 서럽거나 후회할 때, 가장 황폐할 때, 길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나무는 그 자리에 있다. 땅속 캄캄한 곳에서부터 잔뿌리들로 물줄기를 끌어올려 잎사귀 끝까지 밀어 올리며. -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142쪽


저자는 고요한 몸, 더욱 고요한 눈길로 이런 나무들을 떠올리며 살았다.


나무가 되고 싶었던 '강'은 어느 날 거울을 보았을 때, 그의 그을린 얼굴 대신 한 그루의 낮고 푸른 '나무'가 비치길 바랐다.

문득, 나뭇가지처럼 말라가는 『채식주의자』 김영혜도 생각났다.

영혜는 자신이 이제 곧 나무가 될 거라 말했고,

이보다 아홉 달 앞서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에서, '한강'은 간절하게 '한 나무'가 되고 싶어 했다.

독자인 나도 '한강'의 이름을 '한 나무'라 나직이 불러 본다, 저자가 스스로의 이름을 그렇게 불렀듯이.

이렇게 활자로 드러나기 더 오래전부터 '강'은 '나무'가 되고 싶어 했을 것 같다.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는 2007년 1월, 장편소설 『채식주의자』는 2007년 10월 초판 발행된 책들이다.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를 읽다 보면, 각 장마다 소개되는 노래를 자연스레 웅얼웅얼 읊조리게 된다. 물론 내가 아는 노래만.

개인적으로, '한강'의 <한 나무>는 고흐의 <사이프러스 나무>나 모네가 그린 <가을 포플러>같이 빛깔이 있는 것이 아닌, 음영과 양감만으로 그려진 묵(墨)의 농담을 담고 있는 나무로 느껴졌다. 무채색으로 칠해졌어도 다함이 없는 필체를 통해 다양한 노래로 불렸고, 우리 마음속에는 지워지지 않는 뿌리 깊은 수묵화 나무가 턱 하니 담겼다.



1. 흥얼거리다

노래의 날개

그렇게 흘러간다. 나지막이 흥얼거리며 때로는 끝소리로 부르며, 귓가에 머무는 선율을, 혀끝에 맴도는 가사를 타고 간다. 가다가 머물고, 머물다가 간다. 형체도, 맛도, 냄새도 없는, 우리에게 귀가 없었다면 결코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 수 없었을..... 존재하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그 이상한 파장들에 몸을 맡긴 채.


종이 피아노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어머니에게서 들었다. 내가 종이 건반을 두드리는 모습을 보던 때가, 그 시절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고.


저녁 여섯 시, 검고 긴 바늘

이제는 꽤 많은 시간이 지나갔다. 그 뒤로 피아노를 쳐보지 못했다.....

다만 기억한다. 내가 그토록 성실했던 저녁 여섯 시, 검고 긴 바늘이 조금이라도 늦게 한 바퀴를 돌기를 바랐던 그 시간의 두근거림을, 늦었지만 고맙다. 그때 곁에 있었던 이들에게. 그 나이에는 깊이 알기 어려웠던, 숨겨진 따뜻한 마음들에게.


밤의 소리

내가 왜 그랬을까! 한없이 서툴고 사적인 노래에 귀 기울인 낯선 사람들에게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음반을 만들어보라고 권유하는 사람들에게 햄릿처럼 대답하게 되었다. '정말 내야 하는지, 왜 내야 하는지 고민을 더 해봐야 할 것 같아요.'



2. 귀 기울이다

보리수

보리수라는 이 노래가 어쩌면 내 보리수인지도 모르겠다. 기쁘나 슬플 때나 찾아온 나무인지도. 그렇다면 그 가지에 몰래 희망의 말을 새겨놓은 사람은 나였을까. 얼마나 오래전에, 어느 전생의 한나절에 그랬을까. 할 수 있다면 가까이 다가가 읽고 싶다. 해독하고 싶다.


엄마야 누나야

바람이라는 햇빛이라는 단어도 없이 얼마나 햇빛과 바람으로 가득 찬 노래인지..... 식물들처럼 사람에게도 향일성이 있어. 이렇게 빛나는 것에 끌리는 걸까. 빛나는 기억, 빛나는 유년, 빛나는 시간, 빛나는 모국어..... 살아 있으니 다행이라고 속삭여주는 것 같은 이 낮은 노래.


짝사랑

"아아 으악새(억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여울에 아롱 젖은 이지러진 조각달

강물도 출렁출렁 목이 멥니다."

삼십 대 후반의 생기 있는 얼굴의 어머니가 노래를 한다. 수줍어서 소리를 크게 내지 못한고 가성으로.....

어머니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없지만, 짐작하건대 때로 물살에 맡겨 두어야 하는 당신 삶의 고단함을, 젊은 날의 그 노래처럼 바닷물이 출렁출렁, 당신 대신 목메어주는지.


당신에게 내가 필요했다니 You needed me

어떤 노래가 몸에 새겨지려면 몇 번쯤 들어야 하는 걸까..... 노래를 듣다 보면 일어날 힘이 생기고, 온몸이 터져나갈 듯한 만원 지하철 속으로 다시 뛰어들 용기가 생겼다. 어떤 종교도, 위로해 줄 애인도 없을 때, 때로는 그렇게 노래 하나가 거짓말처럼 일상을 버텨주기도 한다.


쑥대머리

이 곡은 일종의 원체험으로 새겨져 있다. 부르짖고, 아프고, 사무치는 노래. 그러나 흐르는 눈물은 없어 빰은 쓸쓸히 말라 있는 노래. 피눈물은 가슴으로 삼키면서 그저 앞으로, 앞으로 가는 노래.


황성 옛 터

어머니의 노래가 <짝사랑>이라면 아버지의 노래는 <황성 옛 터>다.

김소월도 이상도 김유정도, 임화, 백석, 윤동주도 듣거나 불렀겠지. 그 무엇을 찾으려는지 모르는 채, 괴로운 심사를 가슴 깊이 묻어둔 채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던 그 시절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떠올리게 되는, 옹이 박힌 나뭇등걸처럼 오래된 이 노래.


Let it be

대답이 있을 거야. 슬픔은 없을 거야. 그대로 둬. 그냥 그대로. 그대로 둬.

'그대로 두라'는 그 말 외에 어떤 말이 그 시절을 구해줄 수 있었을까. 대답을 들려주는 게 아니라 대답이 있을 거라는 미래형. 슬퍼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슬픔은 없을 거라는 미래형. 어떤 거짓말도 없는 가사. 그렇게 내 몸에 끌처럼 새겨진 노래.



https://www.youtube.com/watch?v=Pca2l_2hDb8&list=RDPca2l_2hDb8&start_radio=1



청춘

'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이라는 가사에는 정말 푸르른 청춘을 앓고 있는 사람의 애틋한 육성이 느껴진다. 후에, 누군가 이 가사를 바꿔 '갈 테면 가라지, 푸르른 이 청춘'으로 부르는 걸 듣고 웃은 적이 있다. 그 노래를 들은 지 벌써 십 년이 지났는데, 그 사람은 이제 어떻게 그 가사를 바꿔 부르고 있을까. 이젠 다 가버렸지. 푸르른 청춘? 가고 나니 애잔하네. 푸르던 그 청춘? 아니, 차라니 이렇게. 갔어도 좋다네. 푸르른 그 청춘.....

그런 것, 다시 돌아가기 싫은 것. 그만큼 혹독했던 것. 언제나 가버리려나 기다리고 기다렸던 것. 그러나 돌아보면 이상하게도 달 무척 밝던 밤의 한순간으로 기억되는 것. 청춘, 피었다 지는 꽃잎 같은.


https://www.youtube.com/watch?v=EgTEQ51x0rY&list=RDEgTEQ51x0rY&start_radio=1


행진

짧은 가사지만 지금 보아도 좋다. 삶에 대한 자세를 이렇게도 명확하게, 군더더기 없이 노래했구나 싶다. 비가 내리면 묵묵히 그 비를 맞으면 되고, 눈이 내리면 두 팔을 활짝 벌릴 것이다. 과거가 밝았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니고, 오히려 어두웠지만, 앞으로도 종종 힘들겠지만 뭐 상관없다. 엄살 없이 그렇게, 행진하듯 그렇게 가는 거다.


새로운 시작 New beginning

넬슨 만델라가 아직 감옥에 있고 남아공의 흑인들이 아파르트헤이트에 저항하고 있던 때, 미국 포크 가수 트레이시 채프먼이 부른 노래다. 그녀는 중성적인 외모에 중성적인 목소리의, 의식 있는 노래들로 알려진 흑인 여가수.



https://www.youtube.com/watch?v=72PkUgZ651k&list=RD72PkUgZ651k&start_radio=1


담배 가게 아가씨

노래를 하며 저렇게 크게 웃을 수도 있을까!

송창식이 기타 하나 메고 나와 노래하는 모습이 텔레비전에 비치면 나는 아무리 먼 데 서라도 달려가 브라운관 앞에 붙어 있곤 했다. 그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냥 좋았다. 내가 가지지 못한 엄청난 낙관이 느껴져서였을까?

이 노래를 처음 들은 순간부터 좋아했고, 지금도 들으면 웃음을 참을 수 없는 노래다. 남동생이 잘 부르는 노래라서 더 정이 가기도 한다. 이렇게 철두철미 유쾌한 그림이 눈앞에 활동사진처럼 그려지는 노래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다시 들어보지 못했다.


혜화동

어릴 적 놀던 골목이 이 세상 어디엔가 그대로 남아 있는 청년. 그 골목에서 오래 전의 친구를 만나러 전철을 타고 가는 노래. 들을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골목 끝에서 친구가 달려오는 대목에선 늘 마을이 흔들렸다. 골목에서 태어나고, 골목에서 자라고, 그 사라진 골목에서 처음 사랑을 배운 나는.


인생이여 고마워요 Gracias a la vida


https://www.youtube.com/watch?v=rMuTXcf3-6A&list=RDrMuTXcf3-6A&start_radio=1


밤에 떠난 여인

오랜만에 들어도 회전목마를 타는 것처럼 상쾌한 하남석의 노래


사랑하는 이에게

정태춘과 박은옥의 노래. 목소리에 마음이 흔들려 어느새 사랑하게 되었다는 이 노래의 가사에는 '처음 당신 모습을 본 순간 사랑에 빠졌다.'는 흔한 얘기보다 진실한 울림이 있다.

델리 스파이스가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고 수없이 반복할 때 아득하게 마음이 움직이는 것도 비슷한 까닭 아닐까.


500 miles

이 노래는 기차 바퀴 소리를 음향으로 깔고 있지 않지만, 아득한 향수를 불러오는 노래다. 밤기차에 실려 떠나는 사람. 멀리, 아주 멀리 그리운 데가 있는 사람. 차창에 비치는 붉고 노란 불빛들. 꿈처럼 어른거리는 옆모습들.

이 곡은 마치 조용함과 단순함만으로 이뤄진 원형질인 듯 아련하게 스며든다.

듣다가 눈을 감으면, 어디론가 기차에 실려 떠나가는 듯 비현실적인 느낌이 든다.

아, 오백 마일이나 멀리 떠나왔구나.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멀어지고 있구나, 어딘가로부터.

기억하지만 결코 돌아갈 순 없는 아득한 날들로부터.


초승달

파도가 뭍으로 밀려온다. 모든 것이 밀려오듯 다가와서, 밀려가듯 물러난다. 무한히 반복되며 밀물과 썰물의 유려한 곡선을 그린다.

달이 그렇게 한다. 찼다가 기울며 바다를 끌어당기고, 놓아주고, 다시 끌어당긴다. 달이 찼다가 이지러지고 사라졌다가 다시 차오르는 리듬. 바다가 밀려왔다 물러가고 다시 밀려오는 리듬.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며 다시 나무가 불꽃처럼 피어오르는 리듬.

파도의 그 철썩이는 리듬 위로 이 노래는 불린다. 섣부른 기교 없는 이상은의 목소리는 달빛처럼 파르스름하다.


내 사랑 내 곁에

어느 책에선가 '나의 모든 사랑이 떠나가는 날이..... ' 하고 시작되는 부분이 5 음계로 이루어져 있어 더 우리 심금을 울리는 거라는 대목을 읽었는데, 그럴 법하다는 생각이 든다. 처절하게 아름답고, 뜨겁고도 서정적인,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든, 한 시절의 뇌관을 건드리는 이 노래.


https://www.youtube.com/watch?v=iJ6ThgYyhSs&list=RDiJ6ThgYyhSs&start_radio=1

편지

안치환의 <편지>를 처음 들은 것은 수유리의 서점에서였다.

어느 여름날 서점 뒷방에서 엎드려 책을 읽다가, 이 노래가 나올 때마다 잠깐 책을 덮어놓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의 절절한 목소리를 좋아해서 가끔 크게 틀어놓고 따라 부를 때가 있는데(<고백> 같은 노래) 이 노래는 가만히, 숨죽이고 듣게 되는 노래다. 애잔하고 애달파서, 하던 일이 저절로 멈춰진다.


그녀가 처음 울던 날

김광석의 얘기는, 길게 쓰다 보면 마음이 아파질 것 같아 짧게 쓰련다. 그래도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니까. 쓰기는 쓴다.....

'그녀가 처음으로 울던 날 내 곁을 떠나갔다네'라는 명랑하고도 우수에 찬 마지막 고백을 들으면, 아카시아 그늘 아래를 지나는 것처럼 가슴이 싸아 해진다.

그의 목소리, 호흡, 생명을 우리가 듣는 현재에 그는 죽어 있다는 이상한 막막함에 이제는 익숙해질 만큼 시간이 흘러갔다. 그래도 아직은, 가끔은 그렇게 느낀다.


Bondade e maldade

어떤 슬픔이나 고통은, 곧이곧대로 말하려 하다가는 말하는 사람의 몸뚱이를 으스러뜨려버리고 만다. 그렇다고 가슴에 눌러두면 시름시름 앓게 될 테니, 방법은 하나다. 리듬에 맞춰 노래하는 것. 세자리아 에보라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사람, 이렇게 인생을 넘어가는구나. 이토록 깊은 슬픔과 리듬 사이의 서늘한 낙차 속에서, 그저 흔들리며 넘어가는구나. 우리 안에 존재하는 선과 악까지.


https://www.youtube.com/watch?v=JMn_L0uhOo8&list=RDJMn_L0uhOo8&start_radio=1


보리밭

문득 돌아보자 저물기 직전의 푸르스름한 하늘 아래 집들은 다정히 모여 있고, 아이는 내 손을 쥔 채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 있고, 나는 그 순간 이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었다.

고마워라, 소녀처럼 옛 노래를 부르던 주꾸미 집 아주머니. 고마워라, 수호천사처럼 우리를 따라다니는 노래들. 거기 실려 다니는 시간들. 그리운 옛 생각들..... 불현듯 등 뒤에서 우리를 불러 세우는 그 소리들.



3.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12월 이야기

겨울은 나에게 그렇듯 따뜻함과 차가움이 격렬하고도 애절하게 충돌하는 계절이다. 언 몸을 녹이는 아랫목, 외투 안에 품고 가는 풀빵 봉지의 온기, 무심코 스친 손끝의 따스함. 거리거리의 차가운 보도블록. 회색의 하늘. 죽은 듯 얼어붙은 가로수들.

92년 겨울에 '서울의 겨울'이라는 제목으로 시 열여섯 편을 쓴 건 그런 충돌 속에서였다. 이를테면 연작시였는데, 대학을 졸업한 뒤 그 시들로 처음 등단하게 되었다. 어떤 시들은 차갑고 어떤 시들은 몸부림치는데.....


내 눈을 봐요

눈을 비로 바꾼 건, 빗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씻어서 어루만져 주는 느낌이 더 좋아서였다. 그러고 보니 이 노래들 중 거의 유일한 사랑 노래인 모양이다.


나무는

'나무는 언제나 내 곁에 / 하늘과 나를 이어주며 거기 / 내가 가장 약하고 외로울 때도'

정말 그랬다. 나무는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휠체어 댄스

누구든 살아가다가 힘든 순간을 만난다. 그게 언제든, 어떤 형태든, 때로는 그로 인해 영혼의 일부 또는 전부가 파괴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어떤 본질이 막 파괴되려는 바로 그 순간의 자세라고 믿는다. 그 마지막 순간에, 최후의 당신을 지키는 가느다란 끈을 놓아선 안 된다. 놓았다 해도 다시 잡으면 된다. 어떤 지옥도 결코 무너뜨릴 수 없는 내면의 정수를, 그 가냘프고도 단단한 실체를 온 힘으로 느껴야 한다. 느껴내야 한다.

어렵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그 순간.



추억

그 오월 새벽에 떠올랐던 소절. '네가 떠나버린 걸 이제 어쩌나, 가버린 걸 어쩌나'를 더듬어 만든 노래다.

오래전 봄날에 가본 적이 있는 냇가의 햇빛, 잡지 못하고 놓쳐버린 물고기들의 빛나는 지느러미. 유유히 헤엄쳐 사라지던 그들의 반짝이는 등허리. 찬란하게 하류로, 하류로 흐르던 물빛. 그런 추억. 아픔보다는 빛으로 남는 추억.

그런 기억이 당신에게도 있는지. 백 마디의 안부보다 애틋한, 말없이 내미는 악수 같은 추억이.


새벽의 노래

하루에 두 번, 밤과 낮이 바뀌는 푸른 시간을 좋아한다. 혈관의 피까지 파랗게 물드는 그 시간. 하늘의 먹빛이 서서히 가시고, 모든 사물이 경계에서 뛰쳐나오려 하는 새벽의 떨림을 좋아한다. 옥타비오 파스의 <새벽>이라는 짧은 시를 좋아한다. 차갑고 날렵한 손길이 / 한 겹 한 겹 어둠의 베일을 벗긴다 / 나는 눈을 뜬다 / 아직 나는 살아 있다 / 한가운데 / 아직도 생생한 상처의 / 한가운데

살아 있다는 것을 가장 깊게 느끼는 시간.

말로는 결코 말할 수 없는 그 시간


햇빛이면 돼

십 년 전쯤 한 단편소설에서, 만약 죽기 전에 세 시간이 허락된다면 햇볕을 쬐는 데 허비하고 싶다고 쓴 적이 있었다. 지금의 내 마음도 변함없다. 그 세 시간 동안 햇빛 속에 온전히 온몸을 담글 것이다.

단, 사랑하는 너와 함께. 나 없이 오랜 시간을 살아갈 네 손을 잡고.


안녕이라 말했다 해도

애이불비(哀而不悲), 슬프되 슬퍼하지 않는다는 말. 모든 제작 과정이 다 끝난 뒤까지, 이 노래는 들을 때마다 마음에 걸렸다. 아무래도 애이불비가 안 된 것 같아서. 너무 많이 드러난 것 같아서. 이 노래가 나오고 있는 동안엔 어디 숨어서 영영 안 나오고 싶었다. 그럼에도 재녹음을 포기한 건, 이미 초과된 제작비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시 떨게 되고 말 것 같아서. 중간부터 나오는 첼로 선율이 등을 쓸어주는 것 같아, 다시 막막해지고 말 것 같아서.

'.....

이제 일어나 걸을 시간

(누가 내 손을 잡아줘요)

이제 일어나 걸을 시간

(이제 내 손을 잡고 가요)

음..... '

누가 내 손을 잡아줘요,라는 말을 소리 내어하기란 어렵다.

그래서 벼랑 끝에서도 손을 못 내밀고 마는 사람들이 있다. 괄호 속에 넣은 말을 속삭이며, 견딜 수 없이 떨렸다.


가만가만, 노래

애써 눈물을 감추는 사람. 그토록 잘 감추다가 한순간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의 뜨거움에 놀라는 사람. 문득 새벽에 깨어나 어둠 속을 두리번거리는 순간, 그 순간들을 밀고 끌며 변함없는 리듬으로 의연히 교차되는 밤과 낮들. 집요한 밤과 지워진 꿈들. 정적과 숨겨진 노래들. 다시, 감춰진 눈물들. 불현듯 선명히 떠오르는 꿈들. 다시, 숨겨진 노래들. 다시, 감춰진 눈물들.


자장가

아이가 잠들면 세상이 다 잠든 것 같다. 고요한 이마, 죄를 모르는 뺨, 평화롭게 다물린 입술. 아이는 가끔 잠꼬대로 소리 내어 웃기도 한다. 까르륵, 웃음소리가 어둠 속에 퍼지면 나도 잠 깨어 웃고 만다. 어둠 속에 미소 지은 채 쌔근쌔근 자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다 다시 잠든다. 아이가 꾸는 꿈은 자신과 꼭 닮은 꿈뿐이다.....

아무리 거센 바람이 밤새 창문을 흔들어대도, 천둥 번개가 하늘을 조각내도 아이는 잘 잔다. 달도 자고 별도 잔다. 집들도 자고, 오후 내내 헤매어 놀던 길들도 잔다. 달게도 잔다.


https://www.youtube.com/watch?v=_bPdHSJ_sbI&list=RD_bPdHSJ_sbI&start_radio=1

가만가만 노래 중 수록된 곡들 <안녕이라 말했다 해도>, <새벽의 노래>, <12월 이야기>, <나무는>




4. 추신; 검은 바닷가, 그 피리 소리

알 만한 나이가 됐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리운 것임을. 수많은 형태의 사랑의 허구를, 환멸의 배면을 알고 있다. 그러나 또한 알고 있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을. 그토록 쓸모없고 연약한, 부서지기 쉬운 찰나의 진실, 찰나의 아름다움만이 때로 우리가 가진 전부라는 것을, 심지어 치유의 힘이 되기도 하는 것을.


그 새벽, 검은 바닷가의 피리 소리.

그 꿈은 무엇을 말하기 위해 나에게 찾아왔던 걸까. 융의 말대로, 무의식이 나에게 보내오는 메시지가 꿈이라면, 나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나'는 무엇을 가르쳐 주고 싶었던 걸까.....

그것은 어쩌면 마흐무드가 추구했던 세계와 얼마쯤 닿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폭력과 불안, 고통의 현실 속으로 그가 쓸쓸히 불러들였던 자신만의 세계처럼, 내가 놓지 말아야 할 마음은 그런 것일까. 그 피리 소리를 잊지 않고, 그 순간의 떨림을 손바닥에 새기고 가야 하는 건가. 죽은 자의 영혼에 가닿을 만큼의 절실함으로,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에게 대꾸했던 나의 말대로. '그게 다'라는 담담함과 고요함으로.....



다시, 인사; 새벽의 노래

공기는 차갑고, 거리에는 인적이 없습니다. 동트기 직전의 검푸른 하늘은 말로 할 수 없이 아름답습니다.

살아 있습니다.

그게 느껴집니다.....

저는 제 운명을 미리 알지 못하니,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빛을 던지는 것뿐일까요. 아주 찬란한 빛이 아니라 해도. 어슴푸레한, 빛의 어린아이 같은 무엇이라 해도..... 오직 생의 가운데에만 있는 무한한 기쁨이, 어렴풋한 따스함으로라도 제 서툰 노래들에 배어 있기를 빌고 있습니다. 이것이 전적으로 의미 없는 바람이라는 걸, 이젠 조금은 알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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