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한강의 단편소설

무너져 내리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퍽 슬펐다.

by Someday


일월 하순 어느 날, 그녀는 오후 여섯 시에 현수와 만나기로 했다.

약속 장소는 그녀가 매일 산책하던 천변 근처였다.

천변 야외 벤치에 잠시 앉았던 그녀는 깜박 졸았다.

무릎 위로 쥐고 있던 헝겊 가방의 끈을 손에서 놓치면서 십 분도 안 되는 시간, 정말로 잠들었다가 퍼뜩 깨어났다.

그녀는 몸 전체의 감각이 둔해진 것을 느낀다.

아, 그녀의 몸은 눈사람이 되어있었다.

'문득 그녀는 아이가 다섯 살 무렵 처음으로 만들었던 눈사람을 떠올렸다..... 아이는 그것을 냉동실에 넣어두고 싶어 했다. 아이의 소원대로 그녀는 하얀 사기 접시에 그걸 옮긴 다음 냉동실 위 칸에 넣었다. 아이가 만든 첫 눈사람과 다음 겨울까지 함께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단 몇 시간 만에 눈사람의 표면에 구멍이 숭숭 뚫리며 거무스름해졌다. 하루가 지나자 크기가 3분의 2로 줄었으며, 마침내는 푸석푸석 주저앉아 원래의 형상을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얼음과 달리 눈은 보존할 수 없다는 것을. 낙하하는 눈송이들을 날개처럼 가볍게 만들어주는 공기의 입자들이 서서히 빠져나가기 때문이라는 걸 그때 그녀는 배웠다.' - 본문 35쪽


여전히 생각하고, 말하는 눈사람이라니. 그사이 누가 눈을 뭉쳐서 그녀를 눈사람으로 만들었단 말인가!

그녀는 여전히 생각을 이어갔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남자친구인 현수와 소중한 아들 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고, 아버지 어머니와도 전화로 마지막 안부 인사를 전할 수 있었다.


'비록 눈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아직 그녀는 사람이다. 하지만 언제까지일까. 그녀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눈과 귀와 입술이 녹으면 어떻게 될까. 정수리부터 녹은 머리가, 눈 녹은 물이 되어 가슴으로 흘러내리면? 심장부터 발끝까지 형상이 남김없이 사라지면? 이 층계참에 흥건한 물웅덩이만 남으면.

그냥 끝이야.

소리 없이 입술을 달싹여 그녀는 자신을 향해 말했다. 홀가분했다. 미치도록 후련했다. 아니 억울했다. 이가 갈리게 분했다. 아니, 아무것도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을, 제발 더 생각을 해야 했다. 가능한 시간만큼, 조금만 더.' - 본문 53쪽


젖은 구두를 벗자, 이미 발가락의 경계가 사라진 두 개의 둔중한 눈 덩어리들이 진흙땅을 디디며 뭉개어졌다. 무엇을 돌아보는지 알지 못한 채 사력을 다해, 그녀는 가까스로 뒤를 돌아보았다. - 본문 55쪽


힘겹게 뒤를 돌아보던 그녀의 눈길을 피할 수 없었으니, 우리는 함께 현실을 인정해야 했다.

무너져 내리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퍽 슬펐다.


한강은 강(물)이었으나, 한 나무가 되고 싶어 했다.

흐르지 않고 정착하고 싶어서였을까?

시간도 강처럼 흐른다.

비도 눈도 시간처럼 물이 되어 강으로 바다로 흘러들고, 하얀 눈사람 역시 탁한 물로 녹아 사라지고 만다.

삶과 죽음의 경계, 존재와 소멸의 경계, 그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의 운명이 쓸쓸하고도 아름답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깬 그레고르는 자신이 벌레로 변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다.'

프란츠 카프카는 작품 <변신>에서 주인공 '그레고르'를 벌레로 변신시켰다.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는 예전에 즐겨 먹던 음식을 더 이상 먹을 수 없었다.

지저분하고 부패한 음식을 먹고 어두운 곳을 좋아하게 됐지만, 그는 여전히 가족들 대화를 들을 수 있었고, 여동생이 연주하는 바이올린 선율에 감동했다. 그레고르는 벌레 형체를 하고 벌레로서 특성을 갖게 되었다. 그는 인간으로서 특성도 지닌 복합적인 존재가 되었지만, 가족은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인간과 인간 아닌 것의 경계는 무엇으로 구분 지어지는가.

'존재한다는 것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던 카프카의 목소리가 울려온다. 우리는 '거기에' 속하고 싶다. 우리 모두 각자 존재 가치와 이유를 확인하며 살고 싶은 것이다.

그레고르는 현실에서 부딪히는 암울하고 답답한 상황을 통해, 실존과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그는 여전히 인간으로서 생각했지만, 그의 오감은 벌레의 몸을 통한 것이었고 언어까지 상실된 상태였으니, 한강 작가의 <작별>에 등장하는 눈사람보다 더 크게 암담했을 것이다.


한강은 한강 대로, 프란츠 카프카는 그의 방식대로 '암울한 현실을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을 상징적으로 변신시켰거나, 비인간성에서 '본래의 자아를 지키고자 한 인간'을 형상화했거나, 놀라운 통찰력과 직관력으로 인간 본성을 꿰뚫어 보았다.

눈사람으로 변신한 그녀도,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리도, 아직 아무것으로도 변하지 않은 우리도 모두 한 줌 흙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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