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의 사랑』- 한강의 단편소설

마음의 상처는 몸의 병으로 나타나고 인간관계와 환경의 부조화를 이룬다.

by Someday

모든 사람에겐 고향이 있다.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있던, 아련한 추억으로 기억되던, 고향은 우리 마음속 깊이 간직된 그립고 정든 곳이다. 그러나 '정선'에게 고향은 어린 시절 추악한 기억이 깊은 트라우마를 남긴 곳이기도 했다.



<<여수의 사랑>>에서 나(정선)는 아침 6시에 도착하는 여수행 밤 열차를 타고 있다.

'통곡하는 여자의 눈에서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은 빗물이 객실 차장에 여러 줄기의 빗금을 내리긋고 있었다. 간간이 벼락이 빛났다. 무엇인가를 연달아 부수고 무너뜨리는 듯한 기차 바퀴 소리, 누군가의 가슴이 찢어지고 그것이 영원히 아물지 않는 것 같은 빗소리가 아련한 뇌성을 삼켰다. 음산한 하늘 아래 나무들은 비바람에 뿌리 뽑히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어린 정선은 어머니를 여의고, 동생 미선을 돌보아야 할 처지였다.

보호자였던 아버지는 이미 술에 절어 정상적인 삶을 지탱하기 힘들던 위인이었다. 딸 둘(미선과 정선)을 여수 앞바다에 수장시키고, 스스로 죽음을 택했으니.

'언니, 같이 가. 아, 아부지·······!

잘 뛰지 못하는 미선의 손을 냅다 뿌리치고 달아나던 나는 그 아이의 혀 짧은 외침이 부두 아래 바닷속으로 곤두박질치는 소리를 들었다. 뒤돌아보았을 때 미선의 조막손과 조그만 머리통은 거품을 뿜으며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힘껏 달렸으나 얼마 못 가 붙잡혔다. 술에 젖은 아버지의 가슴을 밀어내기 위해 나는 안간힘을 썼다. 아버지의 역한 숨결이 내 이마에, 눈에 뜨겁게 끼얹어졌다.' -본문 58쪽


미선의 손을 냅다 뿌리치고 달아났던 정선의 의식이 겨우 돌아왔을 때,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죽을라면 혼자 죽을 것이지 어쩐다고 죄 없는 어린 것들을·······"

" ···제 어매가 살아서 이 징한 꼴을 봤으면 뭐라고 했을까잉."

"···저것 혼자서 살아난 것이 정말로 다행 일인가 모르겄네." - 본문 59쪽


이후, 정선은 고향을 떠났다.

그날 이후, 정선은 여수를 다시 찾지 못하고, 심인성 질환(心因性疾患)인 공포, 불안, 두통, 스트레스 등의 신경계 장애와 심한 결벽증과 불면증으로 힘든 시간을 견뎌내면 살고 있었다. 그래도 세월은 흘렀고, 26살이 된 정선은 혼자 외로운 서울살이를 하고 있는 직장이었다.


정선의 결벽증과 불면증으로 동거인들은 오래 견디지 못하고 나갔다.

그러나 정선은 혼자 내고 있는 월세를 아끼기 위해 다시 새로운 룸메이트를 맞이한다.

그녀의 이름은 '자흔(기쁠 흔, 欣)'이었고, 봉제공장을 전전했다.



자흔은 '여수 발 완행열차'에서 버려진 고아였고, 자신의 고향을 여수라고 믿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25살 나이로 세상을 등진 어린 어머니의 아련한 품속처럼, 수천수만의 물고기 비늘들이 떠올라 빛나는 것 같던 봄날의 여수 앞바다처럼 자흔의 가슴은 다사롭고 포근하였다.' - 본문 62쪽


두 사람은 저마다 깊은 상처를 품고 살았지만, 고향을 바라보는 마음은 달라 보였다.

그러나 깊은 심연을 들여다보면 같아 보이기도 했다.

결국, 자흔도 떠나고, 정선은 한동안 강박 증상이 사라지는 했지만, 토악질은 계속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창문 틈으로 적요한 햇빛이 춤을 추었다. 자흔의 말간 얼굴이 그 햇빛과 먼지 속에 고요하게 흔들리고 있었고, 예리한 칼날이 겨드랑이로부터 젖가슴까지의 살갗을 한 꺼풀 저미어오는 것 같은 슬픔에 나는 눈을 감아버리곤 했다.' - 본문 63쪽


마침내, 열차가 종차 역 닿았다.

'여수, 마침내 그곳의 승강장에 내려서자 바람은 오래 기다렸다는 듯이 내 어깨를 혹독하게 후려쳤다. 무겁게 내려앉은 잿빛 하늘은 눈부신 얼음조각 같은 빗발들을 내 악문 입술을 향해 내리꽂았다. 키득키득, 한옥식 역사의 검푸른 기와지붕 위로 자흔의 아련한 웃음소리가 폭우와 함께 넘쳐흐르고 있었다.' - 본문 64쪽


정선이 어렵게 찾은 고향, 여수.

날씨는 그냥 늘 변덕스럽지만, 이날따라 온화한 남쪽 지방의 날씨조차 그녀의 귀향을 환영하지 않는 듯 매몰차고 사납기만 했다.

하필 그날이 왜 정선의 귀향 날이어야 했는지······

마음의 상처는 몸의 병으로 나타나고 인간관계와 환경의 부조화를 이룬다.

소화불량, 불면증, 토악질로 이어진진 깊은 상처는 26살 청춘의 남은 생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여수의 날씨조차 그녀의 불안한 정신 상태가 그대로 투영된 듯한 여운으로 남았고, 정선과 함께 여수에 도착한 독자의 눈길과 마음도 애잔하고 안타까운 날이었다.


* 『여수의 사랑』 책 속에는 『여수의 사랑』을 시작으로 『어둠의 사육제』, 『야간열차』, 『질주』, 『진달래 능선』, 『붉은 닻』 6편의 단편소설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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