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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파란, 'So blue'

독립서점 | So blue

by 이재이


"여기 뭐하는 곳이에요?"


불쑥 문을 열고 들어가 나는 그렇게 질문했다.

카페인지 서점인지 위스키 바인지 모를 그 곳이 낯설고도 익숙했다.


"독립서점이라고 보면 될까요? 아니면 카페인가요?"

파란 책들로 가득한 so blue. / 이재이


사장님은 '블루'라는 색을 테마로 낮과 밤 관계없이 커피와 술을 팔고 책을 파는 곳이라고 했다. 멋있는 공간이구나. 어떤 한 사람의 취향이 켜켜이 녹아있는 공간을 탐색한다는 건 실례가 되리만큼 은밀하고도 신나고 설레는 일이라서 나는 최대한 오랜 시간동안 그 공간 자체를 하나하나 꼼꼼하게 보고 싶었으나 약속 장소로 가던 중 우연히 들른 거라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언젠가 다시 방문해야지, 생각하면서 아쉬운 마음으로 가게를 나섰다.


So Blue 외관과 매대 위의 파란색 책들. / 이재이

그리고 다시 들른 쏘 블루.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모든 것이 푸르다는 것이다. 책 표지와 인테리어 소품, 음료의 이름까지 온통 블루로 통일 되어 있다. 심지어 주문 후 받는 영수증까지 파란색이다. 그래서 이곳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이 공간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느낄 수 있다. 이런 디테일은 방문객에게 색과 음악, 책이 어우러진 복합적인 공감각을 경험케 한다.



"그때 오셨던 분이시죠?"


사장님이 반갑게 알은체를 했다. 그렇다고 하면서 블루 피노를 한잔 주문했다. 사장님이 자리로 음료를 가져다 주었다. 블루 피노의 첫 맛은 돈시몬 청포도 주스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익숙한 맛이었다. 돈시몬은 탄산이 없지만 블루 피노는 탄산이 있다는 차이만 빼면. 나는 블루피노를 조금 홀짝이다 찬찬히 공간을 훑어봤다.


파랗고 파랗고 파란 책들. 온통 파란 책들에 둘러 쌓인 기분이 새롭다. / 이재이

파란색, 커피, 책, 재즈가 있는 곳.


이럴수가. 내가 좋아하는 걸 하나도 아니고 4개씩이나 모아 놓은 공간이라니. 와, 여기로 매일 출근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이 절로 드는 공간이었다. 이렇게 자기만의 작고 예쁜, 평생을 디깅하며 모아온 것들을 전시하는 공간을 갖고 있는 기분이란 어떨까. 문득 사장님이 샘이날 정도로 부러워 지는 것이었다.


취향을 전시한다는 것에서 오는 묘한 희열이 있으려나. 너무 유심히 보는 사람들을 보면서 조마조마 하려나.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취향을 공유하는 것에 대한 보람과 기쁨이 있으려나. 뭐가 됐든 참 좋을 것 같았다.


자유롭게 책을 가져다 봐도 된다기에 절로 흥분이 되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조금 진정하고서 책들을 한 권 한 권 살펴보는데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들이 꽤 많이 있었다. 아 맞다, 이 책 표지가 파란색이었지, 라고 다시 생각하면서.


나만의 블루를 그려볼 수 있다. / 이재이


쏘블루에서는 계속 재즈가 흘러 나온다. 신청곡도 신청할 수 있다.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에는 재즈 감상회를 연다. 쏘블루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 '아주(so) 블루', 그리고 '그래서(so) 블루' 라는 중의적 표현이라고 한다.


so blue의 매력은 머무르는 방식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글을 읽어도 좋고, 음악을 감상해도 좋다. 조용히 커피를 마셔도, 사장님이 추천해준 위스키를 마시며 잠깐 얘기를 나눠도 된다. 주인장이 선별한 책과 음반, 소품, 음료 하나하나에서 드러나는 취향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방문객은 단순히 공간을 소비하거나 머무르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감각과 세계관을 함께 느끼고 이해하게 된다. 이렇게 쏘블루는 연희동이라는 동네의 고즈넉한 골목 안에서 각자의 '블루'를 발견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모든 것이 블루 블루. / 이재이


그러고 보면 나는 언제부터 파란색을 좋아하게 된 걸까. 원래는 푸른 계열의 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파란색, 하늘색 다 너무 차가워 보인다고 해야 하나. 나는 핑크 같은 따뜻함이 섞인 색이 좋았다. 하지만 하늘 아래 같은 레드가 없듯 하늘 아래 같은 파랑이란 것도 없는 법. 블루라고 다 차갑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차가운 블루, 따뜻한 블루, 미지근한 블루,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감도를 주는 온도의 블루가 실존하는지.


언제부턴가 집에는 회색빛이 깃든 파란색 물건들이 많아졌는데, 내 암막커튼만 해도 톤이 다운된 하늘색이다. 나는 쨍한 파란색보다는 어느 정도 톤이 다운된 색을 좋아했는데 요새는 쨍한 색도 그것대로 좋다. 네이비도 좋고 연세대학교 상징색인 로얄블루도 너무 깔끔하고 예쁘고, 쨍한 파란색은 왜그리 산뜻하고 청량한지.


나는 이제 입덕 부정기를 거쳐 블루에 완전 입문한 걸 인정한다. 흰색, 밝은 원목, 회색 정도의 균일한 톤을 유지하고 있던 집에 각종 푸른 색감이 더해져 계속해서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내 공간 역시 언젠가는 나만의 블루로 가득 차겠지.



연희로운 생활 1편이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brunchbook/yeonhuiful-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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