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타인종과의 결혼
편견을 이겨내는 건 가정교육에서 부터..
롱아일랜드의 심심할 정도로 조용한 동네. 신부의 집 앞에 서 문을 두드린다. 기다렸다는 듯, 문이 열리고 과한 웃음으로 촬영 스텝을 환영하는 신부의 아버지. 악수가 아닌 포옹을 해왔다. 이건 좀 오버 아니야?
아무리 미국이라도 초면에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실내로 들어서니 깔끔한 거실이 눈에 띄었다.
가구도 많지 않았고 밝은 베이지 색의 가죽 소파가 유일한 장식 같아 보였다. 창가에 웨딩드레스가 걸려 있는데 레이스 같은 게 전혀 없는 단순한 디자인이 집안의 분위기와 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가족도 신부 밑으로 여동생이 하나 있는, 네 식구가 전부였다. 신부의 특징이라면 특징 없는 얼굴에서 쉴 새 없이 터지는 웃음이었다. 촬영 스텝이 오기 전에 화장을 끝냈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화장을 했는지도 잘 못 알아봤다. 하마터면 화장 끝낸 신부에게 화장 언제 시작하냐고 묻는 대형 사고가 터질 뻔한 순간이었다.
신부가 드레스를 곱게 챙겨 입고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드레스 입은 모습을 보였을 때, 아버지는 눈물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도 신부는 크게 웃었다. 그리고 네 식구는 손을 맞잡고 둥글게 서 기도를 했다.
갑작스럽게 기도 하는 걸 보고 있자니 서부영화에 나오는 어떤 가족의 모습이 떠올랐다. 바깥세상의 수많은
위험에서 가족을 구해 달라고 하는 기도.
친절하고 요청에 잘 따르는 가족 덕분에 쉽게 신부집 촬영을 마치고 교회로 향했다.
교회에 도착 해 보니, 바로 전 앞선 결혼식이 있었는지 교회 앞이 어수선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 보니 웬일인지 흑인들이 많이 있었다. 신부가 도착하기 전에 카메라 셋업을 끝내야 했기에 사람들이 나가기를 기다릴세 없이 내 손은 빨라졌다. 그때 신랑 측 촬영을 마치고 온 촬영 스텝이 들어서며 신랑이 도착했다고 알려 왔다. 그렇다면 시간이 조급한데 저 사람들은 왜 나가지를 않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신랑 쪽 스텝이 흑인들의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전 결혼식의 하객들이라고 찍지 말라고 했더니 신랑이 흑인이라는 대답. 솔직히 나의 첫 반응은 놀람 그 자체였다. 그리고 신랑 측 스텝이 묻는다.
"신부가 백인이에요?" 이렇게 흑백 커플의 결혼 촬영을 처음으로 하게 됐다.
고지식해 보이기까지 했던 신부네 분위기와 다른 인종과의 결혼이 너무 의외였다.
그냥 신랑도 신부와 비슷한 분위기의 교회 오빠 정도를 예상하고 있었다.
선입견이 있었던 나의 오해였다. 고지식해 보인다고 타인종과 결혼하지 말라는 법 절대 없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신랑과 신부가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다고 한다.
결혼 전에는 서로의 연애 상담을 해주던 사이였고, 지금은 결혼까지 하게 된 귀여운 커플이었다.
남사친이 남편으로, 여사친이 아내로....
연애 기간이라 해야 할지? 알고 지낸 기간이라 해야 할지?를 모를 정도로 오래된 커플이었지만,
서로를 바라볼 때의 애틋한 눈 빛은 변하지 않은 거 같았다. 하지만 두 집안은 다른 문화에 속해 있었다.
신랑, 신부는 가족을 만들기 위해 준비된 듯했지만, 과연 그 외의 가족들도 그럴까?라는 의문.
그만큼 두 가족은 다른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교회 예식에서는 신랑 측과 신부 측의 좌석이 나누어져 있다 보니 확연히 달라 보이는 양측의 모습이었다.
마음이야 한 가족 같을지 모르지만 양쪽으로 분리된 모양새였다.
신부 가족이 다니던 가톨릭 교회에서의 결혼이라 어릴 적부터 신부를 보아 온 교회 신부님께서
주례를 맡아 주시고 신부의 어릴 적 이야기를 곁들여 차분한 진행을 해주셨다.
주례가 진행되는 동안은 어린아이들 마저도 숨 죽이고 앉아있었다.
결혼 서약과 예물 교환까지 끝마치고 예식이 거의 끝나 갈 무렵이었다.
신랑의 어머니가 모셔 온 목사님이 단상에 올랐다.
목사님은 커플을 위한 축복 기도를 시작하셨다. 원래 예정된 순서였다.
그리고 갑자기 확 바뀐 분위기. 서서히 에너지가 올라가던 축복 기도는 찬양을 하듯 분위기가 고조됐고
조용하던 신랑 측 하객석에서는 연신 할렐루야와 아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성가대가 없어 합창이나 춤을 추는 사람은 없었지만 에너지와 활기는 그 이상이었다. 뭔가 보여주기 위해
기다린 사람들 같았다. 그 모습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는 건너편 신부의 하객들.
예식이 끝나고는 양측이 함께 가족사진을 찍는 시간을 갖었다.
예상은 했지만, 사진과 비디오에게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순 백색 드레스에 하얀 신부, 검은 턱시도에 검은 신랑. 그리고 그들 뒤로 나뉜 가족들.
모든 선입견을 내려놓고 얘기를 하려 해도 피부의 칼라 맞추는 게 쉽지 않았다.
한쪽이 어둡거나 밝거나.... 중간은 없었다. 칼라 대비가 너무 선명했다.
신랑에 맞춰 조금 밝게 찍으려면 신부는 하얗다 못해 허연 귀신이 돼버리고..
신부에 맞춰 조금 어둡게 찍으려면 신랑 얼굴의 눈, 코, 입이 까맣게 묻혀 버리는 거였다.
한정된 시간 때문에 따로 조명을 설치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그때그때 번갈아 가며 신랑, 신부에게 포커스를 달리하며 촬영을 끝마쳤다. 커플이 나중에라도 컴플레인을 할 거 같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웨딩 촬영.... 쉬운 일이 아니다.
피로연 장소로 와서 칵테일파티를 지켜보는데 신랑 쪽은 신랑 하객대로, 신부 쪽은 신부 하객대로 나뉜 모습이었다. 친구들의 테이블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흑백이 섞여 있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하객들이 서로에게 살갗게 구는 모습은 없었고 그저 마지못한 인사치레 정도.
괜히 안쓰러워 보이던 신랑, 신부는 나의 오지랖 때문일까?
파티가 시작되고 모두가 즐기는 댄스 타임 촬영을 하다 보니 어느 때는 신랑 쪽 가족, 하객들이 스테이지에 모두 나와 춤을 추고 있다가 어느 틈엔가 없어지고, 그다음에는 신부 측 가족, 하객들이 그 틈을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신부 쪽이 스테이지를 비우면 다시 신랑 쪽이 스테이지를 채우는 현상. 물론 스테이지에 남아 있는 하객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르르 빠졌다가 들어 서기를 번갈아 했다. 혹시 새로운 차별 방법인가? 의아해하며, 그 현상을 가만히 지켜보니 이유는 음악에 있었다.
예를 들자면 그룹 져니의 Don't Stop Believin'이나 닐 다이아 몬드의 노래가 나오면 신부 측 하객이 스테이지에 있고, 랩뮤직이나 Electric Slide 같은 노래가 나오면 신랑 측 하객이 스테이지에 오르는 거였다.
음악만으로 확연히 갈리는 신랑 측과 신부 측이었다.
이러니 우리나라의 BTS 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종, 문화를 뛰어넘는 그들의 음악 세계.
갑자기 BTS?
당시, 촬영을 하며 신랑, 신부가 가족들의 편견을 이겨내고 잘 살 수 있을까?라는 우려를 했다.
모든 문제는 서로에게 가진 스테레오 타입, 선입견에서 시작되었을 텐데.. 그게 그리 쉽게 고쳐질 리가 없다.
요사이 미국에서는 어느 인종이 건 타인종과의 결혼이 많아지고 있다.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15% 를 넘는 역대 최고 기록이라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혼율도 높아져 이혼율은 41%라고 한다.
참고로 같은 인종의 이혼율은 31%이다.
타인종을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거 쉬운 일이 아니다.
그저 다름을 인정한다는 것 정도가 어떨까?
그들의 인생이니 신경 꺼주세요 정도의 태도.... 어차피 내가 같이 살 것도 아닌데 웬 참견!!
사진은 글의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