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원수 되기 참 쉽죠!
처음부터 원수지간은 아니었다.
유능한 웨딩 촬영자라면 가족 관계에 대해 설명해 줄 정보원(?) 한 명 정도는 포섭해 둔다.
표현이 조금 의아스럽게 느껴지겠지만 정보원이 필요한 이유가 있다. 재혼, 이혼, 그에 따라 이복형제들이 많은 미국의 가족 관계에서 분위기 붉히지 않으며 촬영해 나가려면 최소한의 가족 정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신부의 자매 또는 메이드 오브 아너 (Maid of Honor, 들러리들 중 우두머리 정도)가 정보원
역할을 해준다.
간혹 형제나 사촌 간에 사이가 안 좋은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이번 결혼은 참 특이한 경우였다.
사실 상상도 못 했는데 신랑의 어머니와 신부의 어머니가 원수가 돼버린 경우였다. 그것도 결혼식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기에 원수가 돼버렸단다. 그전까지는 둘도 없는 친구지간이었는데 말이다.
친구 없어 보이는 메이드 오브 아너의 설명은 이랬다. 결혼식 전에 리허설 디너가 있었고 사건은 거기서 시작됐다고 한다.
결혼식 당일, 있을 수 있는 혼잡이나 실수를 막기 위해 가까운 친지들과 들러리들을 불러 저녁자리를 겸해 미리 결혼식 연습을 하는데 그게 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보통 리허설 디너에서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모여 식순에 따라 입장, 예식 중에 각자 설 자리, 퇴장, 퍼스트 댄스, 부모와의 댄스 등을 연습한다.
자식들을 위해 의기투합해 열린 자리에서 기분 좋게 술 마시던 신부 어머니가 선을 넘고 말았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었지만 신부 어머니가 술에 취해 주변 사람들에게 신랑 어머니가 갱년기 호르몬 요법을 받고 있고 섹스 라이프가 이러니 저러니, 가십성 이야기를 했단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신랑의 어머니는 신부 어머니의 젊었을 때 화려한(?) 전력을 얘기하며 서로의 폭로전으로 번져 버리고 대학 때부터 친구였다는 30년 지기 우정은 원수가 돼버렸다. 결혼을 1주일여 앞두고 말이다.
어찌 보면 너무도 미국적인 입방정이 이유인데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는 두 어머니를 제외한
모두의 숙제였다. 자녀를 괴롭히는 어머니들도 참 다양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어머니는 공통점이 많아 보였다. 두 사람 모두 이혼을 했고,
좋아하는 스타일이 비슷한지, 장식이 화려한 엷은 갈색의 드레스를 두 사람은 입고 있었고 헤어 스타일도 비슷해 얼핏 보면 누가 누구의 어머니인지 헷갈렸다.
그 모습이 코믹해 보이기도 했지만 당사자인 신랑, 신부는 얼마나 가슴이 내려앉아 있었을까?
예전부터 친구지간이었던걸 알고 있던 사람들이 두 어머니에게 다가가 같이 사진 찍기라도 권할까 봐,
주변인들은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미리미리 귀띔을 해주었다.
그래도 눈치 없는 사람은 있는 건지, 어느 하객이 친구와 사진 찍자며 신부 어머니의 팔을 끌자.
신부의 어머니 입에서 나온 말은 "저 여자 내 친구 아니야!"라는 쌀쌀맞은 반응이었다.
괜히 민망한 꼴 당한 하객. 하객도 눈치는 있어야 되나 보다.
친구였던 두 어머니의 자존심 싸움도 만만치 않았다.
덕분에 비디오를 찍으며 신경 쓸 것이 하나 더 있었는데 양가의 모습을 아주 공평하게 찍어야 하는 거였다.
한쪽 집안에 치우치기라도 하면 다른 한쪽이 질투를 할게 뻔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찍을 거리가 한쪽 집안으로 치우쳐 있다 해도 공평하게 리코딩 버튼을 눌렀다.
신랑이 스테이지에서 춤추고 있는 모습을 20분 정도 촬영했다면 신부도 20분.
신부 쪽 하객의 모습을 10여분 찍었다면 신랑 쪽도 똑같은 분량으로 촬영을 했다.
이런 번거로움은 사진사도 마찬 가지였다. 사진이 이쁘고 안 이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양가가 비슷한 숫자의
사진을 받을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이 바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방법이다.
어쩔 수 없이, 같은 결혼 피로연에 있는 두 사람, 그리고 두 사람의 눈치를 보는 그 파티의 모든 사람들.
행복해야 할 결혼식 내내 흐르는 긴장을 모두가 버거워했다.
단지 두 어머니의 깨진 우정 때문에 신랑, 신부에게 까지 나쁜 영향이 미칠까 걱정이 되었다.
싸우기 전까지는 서로의 딸과 아들을 친자식처럼 대했다고 하던데, 지금은 글쎄....
나의 기분 탓 인지는 몰라도 두 어머니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신랑과 신부의 결혼 생활이 평탄치 않을 거 같았다.
이제는 시간이 좀 흘렀는데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잘 살고 있기를 바란다. 손주라도 봤다면 두 할머니의 마음이 풀리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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