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원수

제15화 구급차 불러!

by Henry Hong
술이 웬수는 웬수


뉴욕에서 살다 보니 타인종과 술자리를 갖는 경우가 간혹 있다. 조상님 덕분에 술 좋아하는 민족으로 태어나

타인종과 쉽게 어울리고 친구가 되는데 이점이 있었다.. 술 마시고 취하면 다 똑같다.

날 잡고, 남자들끼리 술을 마시다 보면 본의 아니게 자존심 싸움으로 향할 때가 있다. 갑자기 국가 대항 전?

내 경험에 의하면 역시 아일랜드 사람들 (Irish)이 술을 많이 마셨다. 술 많이 마시기로 유명한 러시안들과는 술 마실 기회가 거의 없었고 그다음으로 이탈리아 친구들이 술을 잘 마셨다. 여기서 중국이나 일본은 열외로 하겠다. 왜 그 나라에도 술 잘 마시는 사람이 없겠냐만..

평균적으로 한국인에게 적수가 안된다.(순전히 저의 경험에 의하면)

술 종류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아이리쉬는 대체로 여자분들도 술이 세다.

데이트 비용으로 술 값이 차지하는 비율이 꽤 많을 거 같다고 예상된다.


술을 좋아하는 것도 정도 것이지, 선을 넘는 바람에 망한 경우의 이야기를 전하겠다. 역시 술을 많이 마시기로 유명한 아이리쉬 커플의 결혼식이었다.

이들의 청첩장에는, 이미 어린아이들은 데려 오지 말라는 경고가 쓰여 있었다. 미국에서는 이런 경고 당연히 할 수 있다. 아이 볼 사람을 찾던지! 아니면 파티에 오지 말던지! 실제로 아이 때문에, 낮에 열리는 예식만 참석하고 밤에 열리는 피로연에는 참석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니 그렇게 많은 영화 속에서 애 봐줄 사람(Babysitter) 구하려고 소동을 벌이지.


신랑과 신부가 방은 다르지만 같은 호텔에서 준비를 한다는 스케줄이었다.

신랑 쪽 준비 과정을 촬영하기 위해 오전에 호텔 방문을 열었을 때부터 방 안의 공기는 이미 알코올 내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신랑과 신랑의 들러리들은 전 날 마신 술이 덜 깬 듯이 보였고 30분만 있다가 시작하자는

신랑의 말과 함께 촬영팀은 문 밖으로 밀려났다.

듣자 하니 지난 새벽까지 친구들과 어울려 술자리를 갖었다고 한다. 30여분이 지나고 방 안으로 들어가 보니 시간에 쫓기며 넥타이를 찾는 사람, 구두를 찾는 사람, 멍하니 침대 모서리에 앉아 화장실 차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 등, 비좁은 방에 촬영팀까지 뒤섞여 소동을 벌이게 되었다.


사실 이것은 예견된 비극의 전조였다. 신부 측은 다른 층에서 결혼식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새로 온 친구들이 합세 해 신랑 쪽, 신부 쪽을 오가며 다양한 종류의 술을 정오부터 마셔댔다. 아예 어느 친구는 아이스박스에 맥주를 잠겨왔다. 아이스박스를 열자마자 환호하는 친구들.

해장술 문화는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호텔을 떠나 교회에서 진행되는 결혼식 촬영을 하고 있자니, 은근히 그들의 주량에 경이를 표하고 싶을 정도가 되었다. 이 민족은 얼굴 빨개지는 인간이 없네.... 이유를 알 거 같은 긴장 속에서 결혼식은 끝났다.

대낮부터 술 냄새와 그걸 가리려는 향수 냄새를 맡아가며 가족과 친지의 기념 촬영을 마쳤다. 술 냄새를 맡고 있자니 나까지 취하는 느낌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술 냄새로 취할 수 있다.


기념 촬영을 마치고 피로연 자리로 이동을 했다. 이동하는 파티 버스 (Party Bus) 안에서는, 말 그대로 파티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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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이 끝날 때 까지는, 나름 절제하던 신랑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하객들이 권하는 술을 마다하지 않고 받아 마시기 시작했다. 피로연 파티가 시작되기도 전에 술에 취하지 않은 신랑의 친구들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 와중에도 촬영팀은 할 일을 해야 했기에 필요한 촬영을 위해, 가족, 친지, 친구들을 한자리에 끌어 모으기 위해 애를 썼다. 촬영은 무척 느리게 힘들게 진행됐는데 이 사람들 정말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고 그냥 취한 사람들이었다. 어찌나 촬영 스텝들에게 술을 권하던지....


좋은 사진이나 비디오를 찍는 건 애초에 포기했고 나중에 컴플레인(Complain)을 듣지 않으려고 의례적인 샷만 찍었다. 급기야 곳곳에서 술에 취해 언성이 높아지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촬영팀은 그나마 제정신으로 보이는 신부의 눈치만 보게 되었다. 하지만 듣자 하니 신부도 꽤 많은 술을 마셨다고 했다.


참고로 피로연에서 술을 무한정 제공하는 패키지는 식사 비용에 1인당 30~40달러 정도 가격을 더하거나,

술 패키지를 따로 주문해야 한다. 패키지는 술의 종류에 따라 많은 가격 차이를 보인다.

파티가 시작되고는 하객들도 본격적으로 술을 마셨다. 번쩍번쩍 빛나는 조명, 스피커가 터져라 울리는 음악 소리. 제정신인 사람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파티 분위기. 이곳은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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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무슨 사고가 일어나도 놀랍지 않을 상황에서 사고는 예기치 못한 곳에서 터졌다. 화장실을 간 신랑이 넘어지며 세면대에 얼굴을 부딪쳐 눈 가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한 것이다. 상처가 깊었는지 피는 멈추지 않았고 피투성이 얼굴로 술 취한 친구들의 부축을 받으며 신랑은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들이 입고 있던 하얀색 셔츠는 공포 영화를 연상 시키 듯 피로 얼룩져 있었다.

그런 모습을 마주하게 된 하객들은 아연실색을 하고 신부는 대성통곡을 하는데도 수건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 신랑이나 그 옆의 친구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 못하고 히죽거리고 있었다. 역시 술의 힘은 놀랍다.

그 크게 울리던 디제이의 음악 소리는 멈춰져 있었고..

누가 불렀는지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구급차가 도착했다.

신랑과 신랑의 형이 그 차를 타고 사라졌다. 울면서 그들에게 손을 흔들던 신랑의 어머니.

이제 피로연 파티는 어떻게 되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는데 이미 디제이는 신나는 음악을 틀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스테이지에서 춤을 추던 사람들은 춤을 췄고, 술을 마시던 사람들은 술을 마셨다. 이 사람들 정말 쿨한 건가?

말 그대로 Party Must Go On. 파티는 멈추지 않았다. 울고 있었던 신부 조차도 춤을 추며 파티를 즐겼다.

결혼식 피로연에, 단지 신랑이 없었을 뿐이다.


약속된 시간이 다 돼 신부에게 작별 인사할 때가 되었다. 나는 다른 때와 달리 신부와 거리를 두고 인사 준비를 했다. 누구나 하는 아메리칸 스타일 작별 인사 허그(Hug)를 할까 봐였다. 나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신부는 고맙다며 포옹을 해왔다. 땀범벅에 화장 줄줄 흐르며 술에 쩔어버린 신부를 얼떨결에 안게 됐다.

신부의 떡진 머리가 내 뺨에 달라붙었다. 그 찝찝함을 여러분은 아시나요?



사진은 글의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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