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 인연

제17화 내가 널 찜했어!

by Henry Hong

만남? 아무도 모른다.

남남으로 만나 결혼을 하게 되고 부부의 인연으로 가족이 되어 살아가는 인연, 그런 인연이 맺어지기까지

저마다의 스토리가 있을 것이다.

기억에 남는 부부의 인연을 이야기해 보겠다.


첫째,

간혹 커플 중의 한 사람이 상대방에게 첫눈에 반해 그 사람과 결혼까지 골인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첫눈에 반한 시기가 5살 유치원에서였다니..

5살 여자 아이가 유치원에 갔다가 같은 반 사내아이에게 첫눈에 반했고 그 이후로 남자아이는 반 강제(?) 아이의 남자 친구가 됐고 남자 친구로 25년을 지내다가 결혼까지 하게 됐다. 결혼도 전에 그 둘은 거의 평생을 같이 지내 온 거였다. 전생이 있다면 도대체 어떤 인연이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그 둘은 묘하게 닮아 있기도 했다. 연한 갈색의 머리카락, 깊고 파란 눈, 옆에 사람이 놀랄 정도의 커다란 웃음소리…. 아마도 그들이 커플이라는 걸 몰랐다면 당연히 남매라고 생각했을 거다. 신기한 건 신부에게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그 조차도 신랑과 똑 닮았다는 거다. 신랑보다 두 살이 어린 신부의 남동생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 까지를 신랑과 같은 학교를 졸업했다고 한다. 물론 그 두 사람이 같이 있을 때는 모두가 형제인 줄 알았다고 한다. 신랑에게는 누나와 여동생이 있었는데 다행히도 신랑과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그들이 닮지 않았다는 것에 나는 이유를 알 수 있는 안심이 되었다.

신랑의 부모와 신부의 부모는 워낙 예전부터 알고 지내서 그런지 사돈관계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그 들은 서로를 친구처럼 대하고 거리낌 없는 모습이었다.

5살 여자 아이에게서 시작된 인연이 무척 신기하게 느껴진 결혼이었다.

5살 때부터 누군가에게 선택당한 신랑의 정신 상태가 궁금하긴 하지만 그건 잠시 접어두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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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순간의 텔레비전 선택. 평생을 좌우한다. 결혼 전, 신부의 집으로 미래의 신랑이 냉장고 배달을 왔다고 한다. 배달 온 청년과 젊은 처녀가 눈이 맞아 결혼까지 하게 됐다면 그저 평범한 이야기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청년이 냉장고 배달을 갔을 때는 처녀(신부)가 집에 있지도 않았다고 한다. 청년에게 반했던 사람은 처녀의 할머니였다고 한다. 힘 좋고 반듯했던 청년이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연상시켰다고 한다.

냉장고 배달을 갔다가 커피에 스낵까지 얻어먹은 청년은 할머니의 말 상대까지 해주게 되고 연락처를 남기게 됐다. 그 후에 할머니에게서 손녀를 만나보라는 제안을 듣게 됐단다. 그 당시 데이트하는 여자가 있던 신랑은 처음에 거절을 했단다. 하지만 거듭되는 할머니의 성화에 당사자를 만나 사정 얘기를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만남을 약속했다.

결론이야 당연히도 두 사람이 결혼까지 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두 사람을 이어 준 할머니는 결혼식에 참석을 못 하셨다.

할머니의 건강이 악화되며 돌아가시고 말았기 때문이다. 결혼 날짜까지 잡힌 상황이어서 가족들은 너무도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미래의 손녀 신랑을 처음 보고 3년 여가 흐른 후였다. 살아계실 때 할머니는 젊어서 돌아가신 할아버지 이야기를 많이 하셨는데 배달 왔던 청년이 너무도 할아버지를 닮아 놀랐다고 한다.

체구도 닮았고 심지어 말투까지 할아버지를 닮은 청년을 꼭 손녀에게 소개해 주려고 했단다. 처음 이 이야기를 할머니에게 들은 손녀는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로만 들었다고 한다. 할머니의 연세도 있고 해서 할머니의 남자 보는 눈을 믿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할머니의 이야기가 계속되며 본 적도 없는 할아버지의 젊었던 모습이 궁금해져 만남에 응하게 됐단다. 첫 만남 이후로, 두 사람은 이유 모를 끌림으로 인해 서로에게 연락하다가, 가족의 인연까지 맺게 되었다.

이제는 저 세상에 계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이어 준 커플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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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내 경험상 최고령자의 결혼. 신랑, 신부가 70대 후반의 나이로 보였다. 등은 굽었지만 멋지게 턱시도를

차려입은 신랑. 주름을 감추려 하지 않은 화장에 고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

그들은 은퇴한 의사 신랑과 은퇴한 간호사 신부였다. 조금은 흔한 이야기 같게도 신부는 신랑의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였다. 물론 의사가 싫다는 간호사를 열렬히 쫓아다닌 끝에 사랑을 쟁취했다. 많은 드라마에서 본 듯한 이야기. 단지 그들은 나이가 많았다. 40대 중반에 남편을 잃고 홀로 두 아들을 키워낸 신부는 뒤늦게나마 신랑을 받아들였다. 약간 푼수끼가 있던 나이 든 신랑은 어떻게 홀로 되었는지 모르겠다.

신부 앞에서 뭔가를 보여 주고 싶었던 신랑은, 기회만 있으면 스테이지로 달려 나가 춤을 췄다. 그걸 뜯어말리러 같이 뛰어나가는 가족들. 그 모습이 어린아이를 쫓는 어른들 같아 보였는데 신랑의 심장이 좋지 않아 말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굳이 얘기하자면 신부는 한국사람이었다.

이미 장성한 자식들에 손주들까지 있는 가족 파티 느낌의 피로연이었지만, 두 집안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신랑과 너무도 친해 보였던 중년의 아들 둘은 진심으로 아버지의 새 출발을 기뻐했다. 서로 얼굴만 봐도 웃는 세 부자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신부 측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하루 종일 화가 나있던 두 아들이었다. 그 모습을 애써 무시하는 어머니 신부. 미안해하는 신부의 며느리들. 유난히 할머니에게 살갗게 굴던 손녀들.

왠지 아들들의 기분을 이해할 수 도 있을 거 같긴 하지만 어머니를 위해 최소한 내색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중년의 아들들.. 어머니가 바라는 행복이 어떤 것인지 고민은 해봤을까?

어머니가 자식들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결혼하는 마음을 알까? 아니다 어머니는 자식들 때문에 결혼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결혼을 하는 거다!라고 믿고 싶다.


나는 그저 황혼에 만난 부부의 인연이 오래가기를 바라련다.


사진은 글의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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