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패밀리

제18화 아메리칸 스타일

by Henry Hong
너무도 미국적인 가족


결혼 촬영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기본적인 가족 관계 파악이다. 다시 말해 중요 인물을 제대로 알아야 기억에 남는 웨딩 비디오를 찍을 수 있다. 평생 간직할 결혼 비디오는 가족이 우선이다.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신부가 있었다. 신부는 할머니의 첫 손녀였다고 한다. 신부 또한 할머니를 많이 따르고 좋아했는데 그 할머니가 살아생전 마지막으로 남긴 육성과 행복한 모습은 신부의 결혼 비디오에 있었다. 할머니가 그리워질 때는 가족이 모여 함께 결혼 비디오를 보는 것으로 그리움을 달랠 수 있다고 한다.

그 인연 때문인지, 나는 그 신부의 남동생, 여동생 그리고 몇몇의 친구와 사촌들의 웨딩 촬영까지 했다. 행복한 시간을 매번 같이 하다 보니 그 가족과는 각별한 사이가 되어 무슨 때가 되면 와인이나 과일 바구니를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다.

한편, 이런 경험도 있었다. 결혼날 신부와 친해 보였던 친구의 모습을 열심히 찍었는데 그 친구와 절교했다며

결혼 비디오에서 그 친구의 모든 장면을 삭제해달라고 찾아온 손님이 있었다.

나는 편집실로 신부를 들일 수밖에 없었다. 평생 또는 자자손손 간직할지도 모를 결혼 비디오가 마음에 안 든다 잖아...손님은 무조건 맞다?!

편집기 앞에 같이 앉은 신부는 눈에 불을 켜고 내 옆에서 소리 질렀다.

"이 여자예요! 이 여자 다 빼주세요!"

"아! 맞다 빼는 김에 저 여자도 좀 빼주세요!"....


서론이 길어졌는데 그만큼 웨딩 촬영은 가족 파악이 중요하다. 친구들? 별로 중요치 않다.

내 경험 중 가족 관계 파악하기가 무척 힘들었던 결혼이 있었다. 일단 모던 패밀리라고 하자.

양가 부모 모두가 이혼 그리고 재혼, 그리고 이복형제들. 워낙 대가족이라 힘들기도 했지만 그중 중요 인물을

가려서 화면에 담는 게 쉽지 않았다.

흥미로웠던 점은, 부모가 재혼 한 상대가 전 남편이나 전 처와 비슷하게 생긴 아이러니였다.

동양인이 봤을 때 비슷비슷하게 생긴 백인이 아니고 정말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과 다른 인연을 맺은 거였다.

아마도 그들의 이상형은 예전부터 확고했나 보다.


교회에서 예식이 끝나고 가족 촬영 시간이 되었는데..

부모만 8명, 한국의 정서로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르지만 할머니가 데려 온 남자 친구들까지 있었다.

할아버지들은 안타깝게도 모두 고인이 되셨는지 할아버지들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가족 파악을 하며 촬영을 해야 빠진 조합 없이 촬영 임무를 마칠 수 있는데 그게 쉽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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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신부의 어머니, 신부의 가족, 새아버지, 그들의 가족과 기념 촬영을 했다면 그다음에는 신랑 측 가족을 넣어야 하고.. 신부의 아버지 차례에는 신부의 가족 다시 넣고 새어머니, 그들의 가족, 신랑 측 가족을 다시 넣어 촬영을 해야 하는 거다. 가족들이 왜 이렇게 촬영에 기를 쓰나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미국 사람들 결혼 말고는 가족 촬영할 이벤트 많지 않다. 사진이나 비디오에 찍히려고 열심이다.


각자 재혼한 사람들이, 분위기는 쿨했는데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는지, 누구는 누구와 사진 같이 찍기 싫다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촬영자에게만 살짝 귀띔을 해줬으니 대놓고 기념 촬영을 하다가 그 누군가를 갑자기 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 날은 신랑의 누나가 새아버지의 자식 중 하나와는 사진을 안 찍겠다고 버티었다. 그렇다 별로 중요치 않은

사람이 분위기를 흐린다. 이럴 때 촬영자는 별수 없다. 자기들끼리 해결할 때까지 그냥 기다린다.

서로의 새 남편, 새 부인을 데리고 오는 열린 결혼식이었는데 자식들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사진을 찍는 사진사의 얼굴은 점점 질려 갔다. 찍어야 할 사진은 많고 진도 나가는데 계속 걸림돌은 생기고, 시간마저 한정 적이고.. 하지만 지옥을 맛보는 시간은 그다음이었다.

피로연이 시작되고는 중요한 이벤트 모두가 두세 번씩 진행되었다. 부모의 인사말 차례에는 그 많은 부모가 마이크 앞에서 짧건 길건 간에 연설을 했다.

부모와의 댄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부모 모두가 신랑, 신부와 번갈아 가며 춤을 추었다. 이쯤 되니 부모들끼리 어떤 경쟁심이 있던 게 아니었나 생각됐다.

또한 각 부모가 선택한 노래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음악을 틀어주는 디제이 입장에서는 머리에 쥐가 날 정도였다. 아버지와 새아버지의 노래를 헷갈렸다가는 파티를 망쳤다는 지탄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 노래를 선택한 새아버지는 신랑 쪽이었나? 신부 쪽이었나? 피로연 디제이 머리 좋아야겠다.


지금 이야기는 가장 많은 부모가 참석한 경우지만, 사실 뉴욕에서는 양가 친부모로 이루어진 결혼이 흔치 않아졌다. 물론 인종이나 사회계층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양측 부모 중 누군가는 이혼을 해, 편모슬하 나 편부 슬하에서 자란 신랑, 신부 또는 새롭게 부모를 맞은 가족들이 많다. 아마도 60~70% 정도는 되지 않나 라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커밍아웃한 아버지가 딸의 결혼식에 남자 친구를 데려 온 경우를 촬영한 경험도 있는데, 가족 앞에서 당당한 그들의 모습이 솔직히 좋아 보이기까지 했다.

모던 패밀리 감출 필요는 없잖아..! 딸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치 않았을 테고..


B-J&J-005.jpg 유태인의 혼인 계약서


가족 구성원이 예전과 달라지는 게 모던 스타일, 모던 패밀리라도 가족끼리 사이좋게 지내는 건

당연한 거고.. 사이가 나빠졌을 때 법적으로 엄격히 시시비비를 가리는 게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린 자녀가 있는 부모라면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부양비 정도는 책임져야 하는 겁니다.

아님 혼인서약서와 같이 혼전 계약서(Prenup Agreement)를 작성 해, 깨끗하게 헤어짐을 대비하시던지....


유태민족은 혼인 서약서가 아닌 혼인 계약서(Ketubah)에 사인을 합니다.


사진은 글의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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