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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Feb 27. 2024

7인의 사무라이

볼 수 없던 영화

너무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하지만 볼 수 없었다.

영화에 한참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 한국에서는 

일본 영화를 볼 수 없었다.

아니 그럼 얘기나 말 것이지

영화 잡지나 신문에서는 일본 영화를 거론하면서

볼 수는 없단다. 볼 사람은 알아서 보라는 건가?

일본 영화 일본 가서 보면 된다는 단순 사고방식?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를 시켜주긴 했답니다.


옛날 사람인 아빠가 아들에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가장 오랫동안 보고 싶었던 영화가 '7인의 사무라이'라는 영화였지, 

하지만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어. 일본 영화 못 보는 게 법이었거든."

"왜?"

"아빠도 잘 모르겠는데 밥솥은 일제를 써도 영화는 일제가 안된데.."

"에이 그런 법이 어딨어?"

"그러게 그런 법이 다 있었네."


미국에 와서 좋았던 것 중 하나가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일본 영화를 볼 수 없었으니 더 보고 싶었을 수 도 있다.

7인의 사무라이

텐노(제왕, 황제)라 불리었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54년도 작품이다.

조지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 등을 비롯해 수많은 할리우드 감독들에게 

영감과 영향을 주었던 일본 감독이다.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시기였다. 드디어 고대하던 영화를 빌려왔다.

영화를 보기 전,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워낙 오래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이기 때문이었을까?

경건한 마음마저 들었다.

집안의 전화기 플러그를 빼고, 핸드폰 같은 건 미래의 일이었다.

대낮 창문을 커튼으로 가리고, 행여 룸메이트의 방해라도 받을까 방문을 잠그고,

숨을 죽여가며 영화를 시작했다.

짧지 않은 3시간 23분의 상영 시간은 숨을 몰아시다가 끝났다.

인간 군상들이 보여주는 희로애락 그리고

세상에 이렇게 실감 나는 액션씬이라니 기가 빨려

다시 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화가 났다.

이런 영화를 못 보게 막았던 거야!

검열의 기준은?

괜히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누굴 탓하기 전에 시대 탓부터 했다.

좋은 영화보다 양담배가 먼저 들어오다니..


아들은 7인의 사무라이를 보기 전, 할리우드 식 리메이크 작,

황야의 7인 (The Magnificent Seven)부터 봤다. 

그것마저도 오리지널이 아닌 2016년 영화였다. 

오리지널은 율 브린너가 나왔던 동명의 1960년도 작품이다.

미국은 사무라이 영화를 그럴듯하게 카우보이 영화로 만들었다.

칼을 총으로 대신했는데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아들은 시간의 역순으로 영화를 보게 됐다.

2016년의 The Magnificent Seven의 오리지널이 뭔지 알아?

아빠가 태어나기도 전인 1960년의 멋있는 서부극을 따라 했지..

근데 그 멋진 서부극의 원조가 있었어.

일본의 1954년 사무라이 영화로.. 아주 대단했지.

세계 영화의 흐름을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어.

그때 한국은 전쟁이 끝난 지 겨우 1년이 지났을 때였고,

한반도는 말 그대로 폐허였는데 말이지..

옆 나라 일본은 영화를 만들고 있었단 말이야.

그것도 아주 잘 만든 영화를..

아빠는 자조감 섞인 말을 이어가며 열등감을 느낀다. 

그리고 안도감에 미소 짓는다.

일본에 대한 열등감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찾을 수 없는

우리의 다음 세대 때문에..

아카데미의 작품상, 감독상을 받은 감독을 보유한 나라이기에..


영화 이야기만 하자면,

2005년 생인 아들의 눈에도 촌스럽지 않은 1954년도 영화.

7인의 사무라이

영화는 지독하게 전쟁의 잔혹함을 보여 준다.

사연 있는 인물들에게 살인을 저지를 이유가 생겼다. 

아이러니하게도 상대가 죽을 때까지 찔러야 하는 싸움의 결말은 덧없음이다.


감독이 말하는 것 같다.

죽이고 죽여 봤자. 너도 곧 죽는다!

명작은 영원하고 인생은 참 덧없다.

시대 탓을 하다가 전쟁통에 태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한다.


7인의 사무라이 (1954)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

출연: 미후네 토시로우, 시무라 다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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