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nry Hong Oct 25. 2024

기다린 자국 B3

긴 여운

화장실의 물 내려가는 소리에 선뜻 잠을 깼다. 이어져 들리는 코 푸는 소리. 세면대로 떨어지는 물소리가 폭포수처럼 느껴질 때, 오전 여섯 시 삼십 분인걸 안다. 집사람이 나갈 채비를 하고 있는 화장실을 애써 무시하며 돌아누웠다. 소음은 차차 낮아지고 집사람의 기척이 멀어진다. 현관문 닫히는 소리에 긴장이 풀리고 얕은 잠으로 서서히 빠졌다. 다시 눈을 뜬 건 아홉 시가 넘어서였다. 어두웠던 방의 커튼을 조금 열어 놓고 방 밖으로 나갔다. 거실의 식탁에는 어젯밤 영화를 보며 마셨던 맥주병이 그대로 놓여있었다. 마주 보고 있는 병 두 개가 보기 싫어 바로 식탁을 치우기 시작했다. 우두커니 병을 든 채로 냉장고에 붙어있는 달력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오늘은 화요일. 그 옆은 기다리던 내일이 시뻘겋게 표시돼 있다. 쓰레기 수거날은 이틀이나 더 기다려야 한다. 괜한 한숨을 내쉬고는, 거실에 서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익숙한 전경. 옆 아파트의 뿌연 벽이 거울 마냥 나를 보고 있었다. 기나긴 기다림 끝에 내일로 정해진 만남. 아직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인기척 없는 딸아이 방을 흘깃거리다가 방문을 열었다. 몇 년째 같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가구들. 붙박이 옷장은 닫혀있고 작고 단순한 방은 한가해 보이기까지 했다. 무엇을 찾고 있는지 실재가 확실치 않지만 듬성듬성 빈칸이 보이는 책꽂이에도 덩그런 책상에도 내가 찾는 물건은 없었다. 

옷장 옆에 비스듬히 서 있는 기타가 눈에 띄었다. 딸아이가 한 달을 사달라고 조르던 기타였다. 잠시 기타를 노려본다. 기타로 해볼까? 기타를 들어 살짝 줄을 튕겨본다. 먼지 묻은 소리가 방안에 퍼졌다. 망설이다가 혹시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미련을 버린다. 허탕 친 기분으로 아이의 방을 나와 신발장에 시선이 멈췄다. 오래된 아파트와 일체가 돼버린 듯한 자줏빛 신발장. 위태롭게 달린 신발장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봤다. 어디서 들어온 그림자 때문인지 안이 잘 보이지 않았다. 허리를 좀 더 굽히고 신발들을 스캔하듯 살펴보니 맨 밑 칸으로 비스듬히 뭔가가 튀어나와 있었다. 굽혔던 허리를 펴고 앉은뱅이 자세가 된다. 살펴보니 구둣주걱에 가려져 있던 롤러 블레이드였다. 이제는 중학생이 된 아이가 어릴 적 타던 롤러 블레이드였다. 잊고 있었던 물건이었는데 먼지 맞으며 제 자리에 있었다. 박스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운 욕심까지 부려본다. 들뜬 마음으로 롤러 블레이드를 화장실로 가져갔다. 세면대 밑 수납장에서 낡은 칫솔을 꺼내 롤러 블레이드의 먼지를 털어내는데 묵은 먼지는 쉽게 털리지 않았다. 물을 묻혀 닦아 볼까 하다가 관둔다. 지난번 청소기를 물로 닦으려다가 먼지 때가 번지기만 하고 닦이지 않던 경험이 있었다. 얼마 받지도 못할걸 갖고 노동력만 낭비한 꼴이라 후회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좁은 거실, 볕 잘 드는 곳을 찾아 웅크린 채 롤러 블레이드 사진을 찍었다. 다섯 장 이상은 웹사이트에 올릴 수 없어 손가락이 신중해진다. 아이의 발이 금방 자라 몇 번 타보지도 못하고 구석에 자리한 물품이지만 뒷 축과 바퀴에는 생채기가 남아있었다. 할퀸 듯한 흠을 피해서 사진을 찍으려니 쉬운 일이 아니다. 롤러 블레이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사진을 찍다가는 제풀에 지쳐 사진 찍는걸 대충 마무리했다. 가격을 얼마로 하면 좋을까? 내가 얼마 주고 샀었지? 백 불은 줬던 거 같은데…. 사진 찍던 전화로 중고마켓 웹사이트에 로그인을 하고 스포츠용품을 찾는다. 첫 목록의 상품은 여자 수영복이었다. 입던 수영복도 파나? 대체 누가 살까? 다행인지 어린이용 롤러 블레이드 판매자는 없었다. 사진과 함께 구매자를 기다리는 두 개의 롤러 블레이드는 모두 성인용이었다. 사진을 업로드하고 상태 좋은 어린이 롤러 블레이드라는 내용으로 소개글을 시작했다. 가격은 삼십 불. 아니 사십 불로 할까? 아예 오십 불로 해봐? 사십 불은  어감이 이상하고 오십 불은 어때? 하다가 양심도 없냐!라는 자기 검열에 포기한다. 결국 가격은 삼십 불로 결정됐다. 연락처를 적어야 할 칸에 내 전화번호를 또박또박 적고는 다시 한번 번호 하나하나를 확인했다. 관심 있으신 분 연락 부탁드립니다.라고 조심스럽게 소개글을 마무리하고 광고가 포스트 된 것을 재차 확인하고서야 전화기를 시야 밖으로 밀어냈다. 문득 수 천만의 사람이 보내는 수 억 개의 문자가 착오를 일으켜 전달되지 않을 확률이 얼마나 될지를 생각해 봤다.


지난 몇 주간 두 번의 거래가 있었다. 거래가 성사되기 전까지 불특정 다수가 보내는 고루한 질문에 대답을 해야 했다. 물건 상태를 묻는 상식적인 질문부터 구입처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달라는 비상식적인 문자대화가 오고 갔다. 문자대화가 오가며 병적으로 전화기를 확인하는 나의 모습. 기다림에 애간장이 타다가는 이게 그럴 일인가?라는 자괴감이 움츠린 목을 펴줬다. 기다리지 않을 때 기다림은 쉬었다. 시간을 견디어 내고는 상대와 만날 약속을 정했다. 성별도 모르는 아무 사전 지식 없이 사람을 만나는 경우라 약속 장소로 향할 때는 떨림과 호기심으로 입안이 말랐다.  만날 장소는 판매자나 구매자나 자신의 정보를 최소한으로 보여줄 수 있는 넓은 주차장이 제격이었다. 나는 바쁘게 움직이는 차들의 공간에서 누가 중고품 거래자에게 관심을 갖겠어!라고 믿으면서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다.

첫 거래는 부엌 한 구석에 장식처럼 버티고 있던 쥬서기였다. 건강하게 아침을 시작하자고 제법 비싸게 구입한  쥬서기였는데 역할은 좁은 부엌의 액세서리였다. 구매자는 다섯, 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를 앞장 세워 온 주부였다. 입 가린 마스크 위의 눈으로만 서로를 알아봤고, 인사했고, 돈 받고, 물건을 건네주고는 뒤 돌아보지 말자는 마음으로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그 후, 차량용 진공청소기는 할아버지를 운전사로 데리고 온 할머니가 구매했다. 차 안의 할아버지와는 얼핏 눈이 마주쳤지만 곁눈질로 내 시선을 외면했다. 할아버지는 차에서 내리지 조차 않았다. 혼잣말인지, 나에게 한 말인지 모를 말투로 작동은 잘되나? 젊은 양반이 거짓말은 안 하겠지 가 할머니가 한 말이었고, 멍하니 서 있다가 걱정 마세요 가 내가 한 말의 전부였다. 이번에는 내가 급히 빠져나가는 그들의 뒷모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자로 나눈 긴 대화 후의 짧은 만남이 조금은 허무하게 느껴졌다. 무슨 다른 말이라도 해야 했던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도무지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두 번의 거래로 내가 받은 돈은 쥬서기 삼십 불, 청소기 이십 불, 모두 오십 불이었다.

일주일에 오 일을 퀸즈 코로나의 운동화 가게에서 일했다. 전염병이 퍼지기 전까지 코로나는 왕관의 의미로만 알고 있었다. 소개로 알게 된 가게 사장은 면접 같지 않았던 면접에서 젊은 사람들은 붙어있으려 하지 않는다며 다음 주부터 일할 수 있는지를 물었었다. 주급을 현금으로 지급한다는 말에 시작한 일자리였는데 햇수로 3년을 넘겼다. 

“선배님도 참.. 아니 한국에서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 말을 어떻게 믿습니까?.... 어차피 떠날 직원하고 가까워질 필요 없다니까요.”

일 시작하고 얼마 안돼 사장이 누군가와 통화하는 것을 듣게 됐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전화기를 귀로 더욱 밀착시키며 나에게서 멀어지던 사장의 뒷모습. 멀어졌던 그 거리는 결코 가까워지지 않았고 나는 관계유지에 필요한 만큼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사장은 간혹 오버타임이라도 하게 되면 동전까지 꼼꼼히 계산해 주는 사람이었다. 동전의 반올림 같은 것은 없었다. 생소했던 주급봉투의 찰랑거림을 무시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브루클린에 가게가 하나 더 있고 한창 인터넷 쇼핑몰을 준비하던 사장은 점점 바빠졌다.

내가 쉬는 월요일과 화요일에만 나오던 사장 부인이 가게에 나오는 날이 많아졌다. 사장 부인과 내가 같이 일하는 날은, 부인이 카운터에 있으면 나는 스패니쉬 직원과 입구 쪽에서 손님을 맞고, 카운터가 지겨운 듯 부인이 입구 쪽으로 나오면, 나는 카운터 계산을 하거나 지하의 창고 정리를 했다. 말없이 정해진 약속이지만 금방 서로에게 익숙해졌고 약속은 잘 지켜졌다. 남매같이 유난히 닮은 사장부부는 정글의 거대한 눈과 귀를 가진 이름 모를 포유류를 연상시켰다. 공포 때문에 제 그림자조차 믿지 못해 서로에게 의지해야 하는 어린 짐승.

“미스터 신, 이따가 일 끝나고 시간 괜찮으면 얘기 좀 하죠" 삼일 만에 본 사장이 점심시간에 한 말이었다.

듣지 않아도 내용을 알 수 있는 이야기였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거리는 한산하기만 했고 근처 식당과 잡화점은 이미 문을 닫은 상태였다.

“미스터 신 미안하네요, 미리 얘기하려 했는데 우리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서요.”

“상황이 점점 나빠지는데 어쩔 수 없지요!” 

“그러게요 상태 좋아지면 연락드릴게요. 그때까지 건강 조심하세요.”

“사장님도 건강 조심하세요!” 사장이 조심스럽게 안 주머니에서 꺼낸 흰 봉투를 내밀었다.

받아 드는 봉투에서 동전의 촉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

“감사합니다. 사장님….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다른 기다림이 다시 시작되었고 기다리던 기다림은 계속되었다. 

그 형은 만남이 기다려지는 사람이었다. 형과의 첫 만남은 이제  얼굴도 기억 안나는 어떤 이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송별회 자리였다. 그게 벌써 십 년이 지난 일이다. 형과는 비슷한 시기에 이민자가 된 것 이외에 둘만의 은밀한 공감대가 있어 잘 통했다.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 잡혀있는 추억의 광물, 발굴되기를 기다리는 서로의 기억들. 그 형과 나는 아리기만 한 이십 대를 관철동에서 보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살짝 밀봉되어 있는 추억이 있는가 하면 깊이 파묻혀 채굴을 기다리는 추억이 있었다. 대화를 주고받으며 추억을 찾고 채굴하는 재미가 서로를 의지케 해 줬다. 

“와, 형도 야구 연습장 옆의 8번가 호프를 아신다고요?”

“그럼, 그때 그곳이 획기적이었어, 규모도 크고 1층에는 그네까지 설치해 놨었다니까. “

주말에는 자리가 없을 정도로 바쁜 곳이었지만 첫 잔은 꼭 그곳에서 시작할 정도로 친구들 모두가 좋아하는 곳이었다. 현기가 흔들리는 그네에 앉아 술이 빨리 취해 돈 절약이라는 말을, 하고 또 하고 하던 곳이었다. 그 당시 형은 입시생을 가르치던 미술 학원이 인사동에 있어 관철동에는 매일 갔다고 했다.

“그때는 술을 드셨나 봐요?”

“아닌데, 그 때나 지금이나 안주빨“ 이라며 부끄럽게 웃던 형의 솔직한 웃음에 동지애를 느꼈다.

관철동 뒷골목, 그 많던 카페와 주점을 기억하고 있던 형이 좋았다. 어쩌면 벽마다 가득했던 낙서 가운데 한 부분을 같이 채우지 않았을까?라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우리는 그 인연을 낙원정서라 부르며 인사동에서 걸어 내려와 관철동으로 들어서는 형과 파고다학원을 나와 관철동으로 향하던 내가 틀림없이 교차로에서 만났다고 믿었다. 같은 신호등의 파란불을 기다리던 사이. 우리는 스쳐 지나갔고, 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는 다소 컬트적이고 가소로운 믿음에 동조했다. 타국에서 살다 보면 같은 언어를 쓴다는 것 만으로 반갑다가도, 과거를 알 수 없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서로에게 경계심이 생기는데, 관철동은 마음의 차단기를 걷어 올렸다. 

형이나 나나 사는 곳은 퀸즈지만 자주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만나기라도 하면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을 고마워하며  말꼬리를 늘리고 늘리는 사이였다. 술을 입에도 대지 않는 형이라 만나면 밥을 먹고 커피숍을 옮겨 다니다가 늘 헤어짐을 아쉬워하곤 했다. 만남이 뜸해져 어쩌다 전화 통화라도 하게 되면 서로의 안부를 묻느라 말이 부딪치기 일쑤였다. 작년에 형이 떡가게를 개업한 후에는 근처 갈 일이 생기면 조금 돌아가더라도 꼭 들려서 몇 마디 말을 나눠야 마음이 편했다. 형과 나는 서로의 존재에 감사하는 사이였다.

그러던 형이 내 전화를 피하기 시작했다. 문자로 연락을 해도 며칠이 지나서야 읽음 표시가 없어졌고 답장도 없었다. 혼자 앓듯이 걱정을 하다가 와이프에게 형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 같다고 얘기를 꺼냈다. 

“아무래도 이번 주 쉬는 날 가봐야겠어. 그날 저녁은 애 하고 먼저 먹어.”

대답 없는 와이프는 빨래를 차곡차곡 개고 있었다. 삼 일 후, 쉬는 날이 될 때까지 형과 연락은 안 됐다.

전화를 안 받는 형에게 무작정 갔다. 형에게 무슨 사고라고 생긴 건 아닐까? 운전하는 내내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형의 떡가게 건너편, 길가에 차를 세우고 마음은 급하지만 무겁기만 한 다리를 차에서 내렸다. 다행히 가게의 파란색 영업 중 사인은 켜져 있었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동전을 어림잡으며 주차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끔은 들리던 동네였는데 낯설게만 느껴졌다. 한 한 시간 이면 되려나? 형이 아프지만 않았으면 좋겠네. 형이 없으면 형수라도 계시겠지를…. 생각하며 주차기에 동전을 넣었다. 얼마 전까지 한 시간에 일 불이었던 주차비가 일 불 오십 센트로 올라있었다. 이제 안 오른 게 없구먼 이라고 투덜거리며 주차티켓을 뽑아 차로 돌아오다가 가게 안의 형을 보게 됐다. 형은 창가에 기대어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멀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빵 같아 보였다. 나도 모르게 숨듯이 하며 차에 올랐다. 가로수의 그림자를 헤치고 보니 형수도 형 옆에 서 있었다. 드문드문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은 연신 웃음을 흘렸고 먹고 마시던 것을 서로에게 권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듣기라도 하는 듯  서서히 운전석 의자를 눕히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가며 두 사람을 지켜봤다. 유달리 그들의 눈이 커 보였다. 손님 없는 가게는 무슨 일이 있어 보이지도 않았고 형이 아파 보이지도 않았다.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길 건너 내 귀에 박히는 듯했다. 가슴이 요동을 쳤다. 더듬거리는 손으로 눕혀있던 의자를 곧추 세웠다. 아직도 웃고 있을 것만 같은 그 두 사람을 피하며 차의 시동을 걸었다. 괜히 일 불 오십 센트만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받기로 한 날 보다 한 달이 좀 지난 어느 날이었다.

“ 삼천 불 딱 이 주만 쓰고 줄게.”

“ 형 솔직히 이 주고 삼 주고 상관없어요, 정해진 날짜만 정확히 지켜주세요 그래야 애 엄마에게도 할 말이 있으니까요.” 라며 돈 봉투를 건넸다.

“상철아! 정말 고맙다. 잊지 않을게…. 차용증이라도 쓸까?”

“이 주 쓰신다며 무슨 차용증 씩 이나요!” 어색함이 무서워 우린 그냥 크게 웃고 말았다. 

약속했던 날짜가 다가오고 미리 연락을 해볼까 하다가 형의 체면을 세워주려는 마음에 기어코 약속날짜가 지나고 삼 일이 더 흐른 후에야 연락을 했다. “형 안녕하셨어요?”

“상철아 미안한데! 형이 바로 전화 줄게” 라며 전화는 끊기고 형은 이틀이 지난 후에야 전화를 해왔다.

“상철아 미안한데 형에게 딱 일주일만 시간을 더 줄 수 없겠니?”

오죽하면 사업하는 사람이 이럴까 싶어 더 이상 길게 얘기하지 않았다.

“그래요 형, 다음 주에 봐요….” 하지만 형의 연락은 없었다.

전화를 기다리는 내내 칼날 같은 모멸감이 가슴을 할퀴었다. 괜히 돈은 빌려줘서 멀어진 관계라는 생각이 들다가는, 어쩌면 한 번도 가까워 본 적이 없는 관계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호해진 관계가 혼란스러웠다.

친한 사이끼리는 돈 빌려 주는 거 아니라는 집사람의 말을 무시한 건 나였다.

“그럼 친하지도 않은데 누가 돈을 빌려 주겠어,! 그리고 돈 삼천 불에 끝날 관계라면 언제 끝나도 끝날 관계야! 그 형 무시하지 마. 나하고 십년지기라고.” 무안해하던 집사람의 표정에 나는 의기양양해했다.

주차비 일 불 오십 센트만 허비하고 돌아온 나에게 와이프는 재촉하듯 물었다.

“형님은 어떠셔?, 어디가 아프신 거야?” 목구멍을 비집고 나오려는 하소연을 억지로 참았다. 

“다행히 아프진 않던데 사정이 안 좋더라고.. 배고프다 밥부터 먹자.”

“밥도 여태 못 먹었어?”

돌아 앉아 양말을 벗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돈 빌려주고 삼 개월하고 이 주가 지났고 달력의 시뻘건 표시를 일주일 넘게 본 후에야 오늘 형의 얼굴을 보게 됐다. 만나자는 약속은 망설임 끝에 보낸 몇 번의 문자 끝에 할 수 있었다.

형네 가게를 다시 찾았다. 운전하며 가는 동안 내내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다. 그동안 나를 수단으로만 봐 왔던 건가? 그건 그렇고 말머리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속상한 마음을 다 얘기해야 하나? 형이 나를 이해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따져야 하나? 그러기에 갑자기 웬 떡집을  오픈 한 거래? 떡 만드는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아무리 본사에서 떡 배달을 해준다 해도 그게 수지타산이 맞겠어! 

누군 왕년에 사업 안 해봤나! 형이 떡가게를 한다고 했을 때, 입방정이 될 까봐 얘기 못 한 것들이 후회됐다. 걱정 없다며 떡집 운영 누워서 떡 먹기라던 형의 말이 우습지 않았다.

주차비를 아끼려고 몇 블록 떨어진 골목길에서 주차 자리를 찾았다. 10 여분을 넘게 같은 자리를 맴돌다가 저 멀리 막 나가려는 차를 발견했다. 급히 차를 몰아 옆에 세우고 차가 나가기를 기다렸다. 금방 나갈 것 같던 차 속 운전자는 전화 통화 중이었다. 형과의 약속 시간에 늦을까 봐 조바심이 날 때쯤, 차가 빠져나가고 그 자리에 주차를 했다. 급한 마음에 잰걸음으로 형에게 향했다. 그때 진동과 함께 가슴에서 전달되는 문자 알림 소리. 걷는 속도를 줄이지 않으며 속주머니의 전화를 꺼냈다.

[롤러블레이드 얼마나 쓰셨어요?] 

반가운 마음에 걸음은 절로 멈춰지고 입꼬리 마저 쓰윽 올라간다. 광고 올리고 처음 온 문자였다. 잠시 서서 엄지 손가락을 놀린다.

[산지는 좀 됐는데 몇 번 쓰지는 못했어요. 애가 금방 커서요. ㅋㅋ] 

구차하게 아이 얘기까지 꺼냈다.

선채로 멍하니 전화기를 응시하며 문자를 기다렸다. 더 이상 문자는 오지 않았다. 전화기에서 떨어지지 않는 시선을 애써 무시하고 뛰듯이 걸었다. 

한눈에 봐도 장사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개업 날부터도 변변치 않던 장사였다. 진열대는 곳곳이 비어 있었다. 실내 영업정지로 인해 구석으로 모아 논 빈 테이블. 의자들은 눕혀져 있는 게 철 지난 해변가를 보는 듯했다. 형에게 어색한 웃음으로 인사를 했다. 둘 다 어떤 얼굴을 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 마스크라도 쓰고 싶은 심정이었다. 형 보다 훨씬 연배가 어린 형수는 괜찮다는 내 말을 무시한 채, 기어코 차를 한 잔 내줬다. 티백이 담긴 종이컵을 남겨놓고 그녀는 슬그머니 부엌으로 퇴장했다.

그때서야 나는 먼지 오른 의자 중 하나를 들어 올린다. 의자와 함께 쥐색 먼지 뭉치가 길게 딸려 나왔다. 폐활량을 최대로 해 입으로 불어 본다. 먼지 뭉치가 잠시 발악을 하고는 그대로 의자 다리에 붙어있다. 의자를 내려 끌며 슬쩍 밟아 먼지를 단념시켰다.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형과 마주 앉았다.

마음에도 없던 내 첫마디는 형 요즘 힘드시죠? 였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오래 생각했는데 허무하게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그냥 그렇지 뭐…. 그래도 몇 달 전보다는 나아졌어.”

“다행이네요. 이 시국에.”

속마음을 들킬 것 같아 시선을 돌려 가게 인테리어를 둘러봤다. 

시선은 진열장 위 백설기를 지나 빈칸을 지나 개피떡으로 다음은 이름 모를 떡에 머물다가 그 옆 인절미에서 멈춘다. 넘쳐 보이는 콩고물이 사막의 모래를 연상시켰다. 빵보다 촌스러워 보였던 떡을 예나 지금이나 좋아해 본 적이 없다. 지난한 마음을 감추려고, 머뭇거림 없이 말을 홱 던져 버렸다.

“형 왜 제 전화 피하셨어요?” 

“상철아 미안하다. 사정이 좀 있었어 “ 형이 카운터 위, 깎지 껴있던 두 손을 뒤통수로 가져가며 천천히 말했다.

“사정이 있으면 얘기를 해주셨으면 됐잖아요.” 형의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대꾸했다.

나는 카운터에 두 팔을 괸 자세가 된다. 등이 불편해 고쳐 앉았는데 형에게 다가간 모양새가 됐다.

“솔직히 말하자면…. 쪽 팔려서 연락 못했어. 미안하다.”

“형! 연락 못하는 게 더 쪽팔린 거 아닌가요?” 

“그런 건가! 정말 미안하다.” 

세 번의 미안하다는 말. 듣는 내가 미안해지라고 하는 말 같았다. 형이 슬쩍 눈을 피하며 어색한 웃음을 짓는다. 처음 보는 익숙지 않은 웃음이었다. 형을 외면하며 테이블 위 종이컵으로 손을 가져갔다. 멀건차가 종이컵을 눅눅하게 만들고 있었다.

지금 정작 쪽팔린 건 나라고 돈 삼 천불에 갈등하고 있는 나라는 것을 형은 알까?

가난한 마음을 스스로에게 들켜 당황스러웠다. 안착할 곳을 못 찾은 시선이 형의 어깨 뒤를 바라본다. 

축 개업이라고 쓰인 거울 속 나와 눈이 마주쳤다. 어색한 마스크가 턱에 걸려있다.

침묵이 두려워 말머리를 쉴 새 없이 찾았다. 말머리를 찾을 수 있다면 먼지 구덩이라도 들춰 보고 싶었다.

“너 정 사장 기억하지? 얼마 전에 가게 둘 다 내놓았단다. 정신없어 보이던데…. 그게 팔리기나 하겠냐?”

나에게 동의를 구하는 건가? 를 고민하는데 형의 말이 이어졌다.

“그 사람이 그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코로나가 여럿 죽인다.. 여럿 죽여!”

형도 나와 비슷한 심정인지 노력하고 있었다. 침묵을 깨려는 노력을. 

학업마저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유학생들이 많다는 말이 요즘은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 천지라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데요? 나는 되묻지 못했다. 나도 힘들다고, 일하던 가게가 휴업했고 지금은 놀고 있다는 말을 차마 못 한다. 딴 세계 이야기를 하는 형을 내 세계로 끌어 오려고 안간힘을 써 본다. 코앞에 앉아있는 형을 생각해 본다.

관철동의 나그랑, 포시즌, 보니 앤 클라이드를 정확히 아는 형이었다. 자뎅 커피숍, 그 앞 좁은 골목길의 설렁탕집도 알던 형이었다. 약간은 연약해 보이기까지 했던 형의 얼굴은 불그레 변했고 턱의 근육은 훈련된 표정을 만들고 있었다. 훈련된 얼굴 위로 연약한 얼굴이 겹쳐 보였다. 알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눈앞, 형의 존재에 거리감이 느껴졌다. 불과 몇 개월 만의 일이다. 갑자기 입안에서 먼지가 씹히는듯한 이물감이 들었다. 등이 저려왔다. 덥지 않은 날씨에도 환풍구에서는 에어컨 바람이 나오고 있었다..

서먹함, 실망감, 억울함, 수치감, 모호함, 의미를 정확히 모르겠는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회오리를 일으켰다.

기억을 공유하는 사이였는데 막상 형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형을 의식적으로 배려하려는 내가 지겹다가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남 얘기만 계속하고 있는 형에게서 귀를 닫고 진열대 위의 아까 그 인절미를 쳐다본다. 비닐랩으로 싸여 있는 인절미가 답답하게 눌려있었다.

약속한 날을 못 지키겠으면, 형편이 안된다면, 양해부터 구해야 되는 거 아닌가? 형편 얘기를 하고 지금 당장은 힘들지만 조금씩이라도 차차 갚아 나가겠다는 말을 기대했었다. 최소한 그 정도의, 상식적인 사람인 줄 알았다. 

넌 형도 아니야 새끼야 어디 그 돈 갖고 잘 먹고 잘 사나 보자! 차라리 어디 뒈지게 아팠다면 고맙기라도 했을 거다.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을 거다! 뱉지 못할 말들이 양은 냄비 속 라면 물처럼 팔팔 끓는다.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어차피 하지 못 할 말들을 욱여넣었다. 형과 나는 각기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내 뒤로 문이 열리며 차임벨 소리가 들렸다. 형은 양손을 카운터에 의지하며 벌떡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 어서 오세요! “ 침묵을 깨는 경쾌한 말투였다.

“손주 돌떡 좀 보려고 왔어요.” 

“네 이쪽으로 오세요, 샘플 사진 보여 드릴게요.”

나는 형이 보내는 눈짓을 못 본 체하며 일어났다. 미안해하는 듯한 미소의 젊은 할머니를 지나쳐 밖으로 나왔다. 차임벨의 여운이 내 뒤를 따랐다. 턱에 걸려있던 마스크를 입으로 올리고 주머니 속 전화기를 꺼내 시계를 보니 지긋한 시간이 고작 20 여분이었다. 전화기를 다시 안주머니에 넣고 지퍼를 닫는다. 우두커니 서서 주차하고 있는 차를 쳐다보고 가로수를 쳐다봤다. 곧 가을인데도 잎이 풍성했다. 고개 내려보니 언제 묻었는지 운동화 코에 엄지손톱 만한 얼룩이 있었다. 의자를 옮기다가 묻었나? 쪼그려 앉아 얼룩을 문질러 본다. 얼룩은 번지면서 되레 커졌다. 금세 후회했다. 포기한 얼룩이 열등감처럼 보였다. 열등감을 피하듯 몸을 돌려 가게 안을 들여 다 봤다. 손님이 뭔가를 물어보는지 형이 예의,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로 대답하고 있었다. 부엌에 있던 형수도 어느샌가 나와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아까는 못 봤던, 어울리지 않는 곰 그려진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잠시 주춤하다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차임벨 소리가 세 사람의 고개를 내쪽으로 돌렸다. 형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얼떨결에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형, 바쁘신 거 같은데 먼저 가볼게요., 형수님도 안녕히 계세요!”

“그럴래? 내가 다음 주에 꼭 연락할게!” 내가 연락할 때까지, 너는 연락하지 말라는 소리로 들렸다.

“그러세요 “ 미련을 털어버리려 가게 안을 훑어보며 돌아섰다.

“상철 씨 잠깐만요 “ 형수가 부르는 소리에 슬쩍 고개만 형수 쪽으로 돌렸다.

“떡 좀 가져가세요. 은주 씨하고 아이랑 같이 드세요.” 형수 손에는 이미 검은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나는 과장되게 손사래 치며 가게를 빠져나왔다. 계속 신경 쓰이던 차임벨의 울림이 문밖까지 따라나섰다. 가게를 몇 발자국 뒤로 하고 깊은 심호흡을 했다. 마스크를 통과한 공기가 새삼 다른 공기를 마시는 것 같았다.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고 마스크로 전해지는 내 숨의 뜨듯한 냄새에 안도했다. 그 안도의 순간, 억세게 팔을 잡아끌며 형수가 비닐봉지를 쥐여줬다. 마다 할 겨를도 없이 얼떨결에 받아 든 봉지를 바라보는데 형수는 이미 가게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봉지 안에는 답답한 인절미가 들어있었다. 가게의 모퉁이를 지나 차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모든 게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 잘못이라는 생각. 추억의 가격을 알게 돼 가슴이 시렸다. 발아래로만 향하던 고개를 들어 올린다. 의미 없는 기다림은 정신을 갉아먹을 텐데. 형의 연락을 기다린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기다림을 견디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기다린 자국만 남지 않을까?  형의 존재가 허상처럼 느껴지고 자국만 남는다. 걸으면서 시선은 또다시 발밑을 향했다. 몇 블록 떨어진 차가 멀게만 느껴졌다. 

겨우 차 앞에 다다라 힘없이 차 문을 여는데 하필 전화의 알림 소리가 울렸다. 급하게 속 주머니 전화기로 손을 향했다. 허둥거리다가는 기어코 차문에 무릎을 찧는다. 뇌로 전해지는 고통은 무시됐다. 기어오르듯 하면서 차에 탔다. 급해서일까? 옷 끄덩이에 걸린 지퍼가 열리지 않았다. 왼팔목에 걸려 있던 인절미 봉지는 대롱거리며 꼬여만 갔다. 성가심에 신경질을 내며 겨우 지퍼를 여니 이번에는 주머니의 전화기가 빠지질 않았다. 원래 작았던 속주머니가 이제야 원망스럽다. 주머니와 다툼이 끝나고서야 겨우 문자를 확인한다.

[ 롤러블레이드 십 불만 깎아 주시면 안 될까요? ㅋㅋ]

그때서야 팔목에서 나불대던 인절미 봉지를 빼 옆 좌석에 내려놓았다.

차의 시동을 건다.

이전 01화 여기도 뉴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