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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Oct 25. 2024

바람이 보인다 E5

경계인

교통량 많은 찻 길 옆에 서 있는데도 소음은 들리지 않는다. 목울대가 빠져라 꼿꼿이 쳐들고

머리 위를 바라보고 있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 아래 낮은 먹구름이 내 심정 같다.

불안한 마음을 어쩔 수 없다.

아들이 내딛는 한 발 한 발이 끈적이고 어설프기만 하다. 

다 큰 아들의 뒷모습을 보는 것은 생소했다. 어릴 때 그토록 바라봤던 아들의 뒷모습이 기억났다.

뒷모습을 바라볼 때면 늘 조바심이 따랐다.

아들의 팀버랜드 부츠의 밑창이 선명히 보인다. 양쪽 모두 바깥쪽이 닳아있다. 

아비를 닮아 어릴 적부터 뒷 축을 끌던 아이. 시선을 좀 더 올려보니 청바지의 엉덩이 골이 보인다. 

벨트라도 좀 두꺼운 것을 하고 나올 것이지. 바지마저 불안하다. 하기야 예전부터 제 모양새 챙기는 데는 무던한 아이였으니 무엇을 기대하겠냐마는..

사다리를 붙잡고 있는 손에 힘을 가한다. 땅과 맞닿아 있는 사다리 끝 부분에 고정한 발은 

긴장을 더 한다. 사다리를 오르거나 내릴 때는 두 팔, 두 다리 네 개 중, 세 개가 사다리에 놓여야 한다. 

한 발을 들어 올렸다면 두 손이 사다리를 붙잡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몸의 균형이 틀어지고, 사다리에 가해진 하중의 중심이 무너지며 추락하게 된다. 낙상 사고는 너무도 흔한 우리네 사고였다.

나는 추락하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버티었다.

지금처럼 삼 층높이의 사다리를 뒤뚱거리며 올라가는 자식 놈 뒷모습을 올려 보게 될지는 몰랐다.

지난 주였다. 워싱턴 디씨에서 직장 생활 잘하고 있을 녀석이 난데없이 집에 왔다. 

지 어미, 지 아비 놀라는 것은 안중에도 없고, 배 고프다는 게 첫마디였다. 

문을 열어 주었던 마누라도,

텔레비전 보다  벌떡 일어난 나도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현관 앞을 막고 서 있던 마누라를

피해 들어가는 아이를 시선으로 쫓은 뒤에야 소리를 질렀다.

“아, 뭐 해! 애 배 고프다는데!”

언제나 자랑스러운 자식이었다. 유치원 다닐 때에도 아침 7시 50분 이면 집을 나섰다. 오후 6시에

끝나는 연장 프로그램까지 마치고 돌아오는, 길었던 하루에도 밝게 웃으며 저의 하루를 조잘조잘

이야기하는 아이였다. 뒷 좌석에 앉아 아빠가 제 이야기를 듣는지 마는지 아랑곳 않고 점심은 뭘 먹었는지,

낮잠 시간에 잠을 안 잔 아이의 얘기, 알아듣게 된 스패니쉬 단어 등을 늘어놓았다. 

차 안에서 아빠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미리 준비해 놓은 것처럼, 쉴 새 없이 숨 쉬듯이 말을 하던

붙임성 있는 아이였다. 공부도 잘했다. 중학교 내내 아너스 클래스에 있었고, 고등학교는 뉴욕 최고라는

스타이븐슨을 나왔고 경제학을 전공으로 보스턴 칼리지를 졸업했다. 

아이비리그의 학교에 합격을 하고도 장학금 주는 학교를 선택 한 아이였다.

부모 생각도 남다르기만 했다.

졸업 후에는 두 달 만에 금융 회사에 취직을 했고 직장 생활 잘한다던 아이였다. 

나에게 기쁜 마음으로 사다리를 오르게 해 줬고, 남들 내 앞에서 자식 자랑 못하게 해 주던 아들이었다. 

업어 키워도 시원치 않을 자식이 아니라 내가 업어 키운 외동아들이다. 

지금 사다리 끝에 올라 간판 크기를 재고 있는 그 아이를 보고 있자니 도대체 이해가 안 됐다.

화딱지가 나면서도….. 내 입에서는 연신 “ BE CAREFUL!, “WATCH OUT!” 소리가 터져 나온다.

진작 내가 올라가려 했거늘 부득이 제가 올라가겠다고 해서 올려 보냈는데 밑에서 마음 졸일

바에야 내가 올라가는 게 맞았다.

뒤늦게 후회한들 뭐 하랴 마는 이 모습을 마누라가 봤다면 나에게 뭐라고 했을까? 

늙어 노망 났냐는 말을 했을게 뻔하다.

십여 년 전까지는 간판업 경기가 좋았다. 물론 경기가 나만 좋았던 건 아니었다. 노던 블러바드의

유니온 스트릿을 경계로 동쪽의 상가는 모두 한인 상권이었고, 새로운 업소들이 경쟁 하 듯

들어섰다. 하지만 그 호황도 잠시 어느 순간부터 중국인 가게로 바뀌고 있었다. 

같은 아시안이지만 불안히 경계인으로 살며 서로의 경계를 만들던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경제 논리에 의해 경계 밖으로 밀려났다. 

당시에는 매니저에 스패니쉬 직원이 네 명이나 있었는데 장사가 안되다 보니 저들이 알아서 그만둬

주었다. 그동안의 정 때문에 떠나 준 직원들이 고맙기만 했다.

우울함이 얼룩처럼  남아있는 아침을 매일 맞이해야 했다.

끝나지 않을 거 같던 노도의 시간이 어느덧  지나고 자식 하나 있는 거 독립했고, 마누라와 나는 크게 돈 들어

갈 곳도 없고 해서, 지금은 알음알음 들어오는 일로 먹고살고 있다.

가끔 자식 놈이 손주나 하나 안겨 줬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것 말고는 큰 바람도 없다.

얼마 전까지는 제 발로 일거리 찾아온 호세도 있었다. 초짜라 교육을 시켜야 했지만 호세와

소화하기에 무리 없는 양의 일이 들어왔고 별문제 없이 일들을 끝마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착실하던 호세가 이 주일 전부터 소식도 없이 안 나왔다. 일 좀 시킬만하니 다른 업소에서 채

갔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세의 전화기는 꺼져 있고 달리 연락할 길도 없었다. 

급한 마음에 가끔 내려다 주던 코로나까지 가서 찾아보았지만 찾을 길은 없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나쁜 일이라도 생긴 거라면? 

호세를 걱정하던 마음은 오 분만에 집어치우고, 당장 김밥집 간판은 어떡해! 

욕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 틀 전, 개업이 코앞이라 간판 달아야 하는데 아직도 예전 떡집 간판이  달려 있다는 김밥집 사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성화가 귀찮았지만 마무리 지어야 할 내 일이었다. 

고민 끝에 스패니쉬 일용직을 구해 일 마무리를 할 작정이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일용직 사람을 구하려면..

파슨스 블러바드에 들려야 하나? 코로나 쪽으로 가볼까? 옷매무새 깨끗한 사람을 하나 골라야겠다.. 

하루 일할 사람을 구할 생각으로 머리는 복잡해진다.

대충 일 나갈 채비를 하며 방을 나서는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아들이 따라나선다.

“ 뭐 하러 나와!.. 넌 네 할 일이나 해! “

“ I Can help you 아빠! “

곁 눈길로 마누라를 보니 아침 토스트를 해 놨다고 가져가란다. 아들이 받아 든다.

마누라가 토스트 봉지를 건네며, 

“ 제 깐에 아빠 도와주겠다고 일찍부터 준비했나 봐, 데리고 가 봐! 말려도 소용없었어. “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오늘 할 일은 뻔한데, 아들 얼굴 힐끔 보고, 마누라 얼굴 힐끔

본다. 결정을 피하기 위해 결정을 안 한다.

“ See you later 엄마! “

“ 그래, 잘 다녀와 아들! 토스트는 식기 전에 차 안에서 먹고! “

아비 속을 알 리 없는 아들이 싱긋 웃으며 뒤를 따른다. 사내자식이 웃음이 헤프다.


기다리던 아들이 사다리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사다리는 내려오는 일이 오를 때 보다 힘들다. 

오를 때는 몸의 균형을 생각하며 시선은 위쪽을 향하면 된다. 하지만 내려올 때는 

더 많은 주의력이 필요하다. 일단 건물 높은 곳에서는 사다리로 첫 발을 걸치기가 쉽지 않다.

사다리로 몸을 옮길 때는 한 발은 난간을 지탱하고 다른 한 발을 사다리로 이동시키며, 동시에

온몸의 중심을 사다리에 의지 해야 하는데 그 결단이 쉬운 일이 아니다. 몸을 사다리로

옮겼다 해도 시선은 사다리를 마주 보게 돼, 시야는 가려지게 된다. 만약 추락이라도 하게 된다면

착지 지점을 가늠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한 발 한 발 내려올 때 무게 중심을 잃으면 사다리는

넘어지고 사람은 추락하게 된다. 대부분의 낙상 사고는 그렇게 일어 난다. 

사다리 위에서 중심을 잡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살아가며 중심을 잡는다는 게 어디서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땅으로 착지하는 일은 오르는 일 보다 어렵다.

어깨 좁은 아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났다.

하늘과 땅의 경계라고 할 수 있는 내 생활 터전 인 사다리 위,

지금 그곳에 내 아들이 매달려 있다.

아들이 사다리에서 내리니 안도감 때문인지 코 끝이 찡했다. 아들이 불러 주는 치수를 받아 적고

있는데 어느 틈에 왔는지 신 목수가 옆에 서 있다. 평소 깐죽거리는 말투 때문에 마주치기 싫어

하던 인간인데 사다리에 온통 신경 쓰다 보니 옆에 와 있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 아이고, 오늘은 아드님과 출동하셨네. 어쩐 일 이래! “

“ 져스틴! 아저씨께 인사해야지 “ 마지못해 말한다.

“ 안녕하십니까? “ 아들이 버터향 풍기는 한국말로 인사를 한다.

“ 야! 져스틴 오랜만인데…. 넌 어떻게 사내자식이 점점 더 이뻐지냐? 시집가도 되겠다.”

무슨 뜻인지 알아듣기나 했을까? 아들은 그냥 미소만 흘린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울화가 치솟았다.

“ 아니 이 늙은이가 늙으려면 곱게 늙지! 귀한 아들한테 시집!, 네 딸내미는 장군감인데 군대

보내. 나라 지키라 하지! “….. 신 목수 너 잠자코 네 할 일이나 해라! “ 라며 고함을 질렀다.

아들은 무슨 상황인지 알고나 있는지? 미소 띤 얼굴로 말없이 연장을 챙기고 있다.


며칠 전 밤이었다. 이를 닦고 막 침대로 오를 때였다.

“여보, 우리 아들이 게이면 어떡하지? 

"이 여편네가 갑자기 뭔 소리야!"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면 어쩌냐고? “

“ 이 놈의 마누라가 못 하는 소리가 없네, 어떡하긴 뭘 어떡해! 집에서 내쫓아 버리든지 해야지.

내가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 헛소리 그만하고 잠이 나 자! “ 

말은 쉽게 했지만 긴 시간 잠들지 못하는 밤이었다.

“아니 웬 화를 그렇게 냅니까?, 지난번 빌려간 돈 이백 불 때문이면 당장 내일이라도 주면 될 거

아닙니까! “ 신 목수가 볼멘소리를 한다.

“ 알았으면 돈이나 갚고 말해! “

잠시 내 생각에 갇혀 돈 이백 불에 화내는 인간이 돼 버렸다. 하지만 저 인간이 내일 이백 불을

갚지 않을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뒤도 안 돌아보고 밴 트럭에 올랐다. 연장을 챙긴 아들이 뒤

늦게 차에 오른다.

“배 고프지? 우리 뭐 먹으러 갈까? “ 아이 앞에서 소리 지른 게 부끄러워 조금이라도 부드럽게

말을 걸어 본다.

“갈비탕, 아빠! “

“그래, 우리 갈비탕이나 먹으러 가자! “

조금 늦은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식당에는 우리 말고 아무도 없었다. 둘러앉아 마늘을 까고

있던 세 명의 종업원이 동시에 일어 나 인사를 한다. 요사이 경기가 안 좋긴 한가 보다. 아들아이

먹이려고 좀 비싸더라도 갈비탕 전문점으로 왔는데 손님이 우리밖에 없었다. 얼마 전 만해도 이

곳을 지나칠 때는 저 집 손님 많다며 질투 아닌 질투를 하던 곳이었다. 간판도 비싼 아크릴을

이용한 현대식 스타일이었다. 갈비탕 맛 거기서 거기지 뭐가 특별하겠어! 전문점이라며

비싸기만 하지라고 생각했고, 처음 와 보는 곳이었다. 갈비탕 두 개를 주문하고 벽에

걸려있는 꺼진 텔레비전을 쳐다본다. 머릿속은 좀 전에 심 목수가 한 말이 맴돈다.

아들이 점점 이뻐진다고! 넋 빠진 늙은이 같으니라고…..

꺼진 텔레비전에 반사된 식당 내부를 흘깃거리다가 아들을 본다. 내 아들이지만 곱상하게 생기

긴 했다. 사내자식이 무척 긴 손가락을 가졌다. 오늘따라 더 왜소해 보이기까지 한다. 누굴 닮은

거야? 숫기 없어 계집아이에게도 맞고 울던 아이. 내 잘난 아들은 금융 회사 잘 다니다가 어떻게

사다리 위에 올라가게 된 거지? 회사에서 잘린 거야? 내 아들이?

아들의 대답이 두려워 차마 묻지 못하는 질문들이 가슴 언저리를 두들겼다.

갈비탕 두 그릇이 우리 앞에 놓일 때까지 심기만 불편해졌다. 젓가락으로 갈비 고기를 건져

아들의 갈비탕 그릇으로 덜어 넣는다.

“I am fine 아빠, You eat them “

“아빠, 이 안 좋잖아….. 오랜만인데 너나 더 먹어 “

심기 불편하게 만들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아들이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라면? 그건 우정 아니야?..... 아들의 가방이나 소지품을 뒤져 봐야 하는 건가? 

차마 그럴 수는 없지. 아빠의 양심 때문이 아니다. 행여 보게 될지 모를, 어떤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 어떤 것이 무엇인지 상상조차 안 돼지만 결말만 상상되는 기묘한 상황. 

내 아들이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라면? 꼬리를 물던 생각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어색한 공기가 아들과 나 사이에 흘렀다. 그 어릴 적 아이가 이 아이 인가! 일터로 나가는 나의

양쪽 바지 주머니에 의지 해, 목이 젖혀질 대로 젖혀진 채 내 얼굴을 올려 다 보던 아이.

그네에 앉아 등 떠밀라 재촉하던 아이..

나와 아들 사이에 흐르던 어색한 공기가 경계를 만든다. 경계에 서 있을 때의 불안감. 

나는 다시 사다리 위에 올랐다.


삼십여 년의 이민 생활은 줄곧 경계의 삶이었다.

간판장이, 낡은 간판을 떼어 내고 새 간판을 부착하는 일.

하늘과 땅 사이 어딘가를 딛고 하는 일. 눈에 보이는 위험을 당연한 듯, 데면 데면 사는 삶. 

허무의 눈 빛을 하고 있는 옛 간판 주인 그리고 설렘의 눈 빛을 하고 있는 새 간판 주인. 

나는 그 중간 어디쯤, 어설픈 웃음의 주인공이었다. 

내 삶의 불안감은 경계에서 시작됐다. 불안감을 없애 보려, 

소속감을 느껴 보려 학교 동문회도 찾고 소상인, 퀸즈, 한인, 코리안 등의 이름을 

내세운 여러 협회도 기웃거려 보았다. 

하지만 그들 모두도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며 살고 있는 것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아들과 식당을 나와 노던 블러바드 쪽으로 차를 몰았다. 

브루클린으로 가는 길에 파슨스 블러바드를 둘러볼 생각이다. 

그곳은 일용직을 얻으러 나온 스패니쉬들이 진을 치고 있을 터였다. 

자식을 내일도 사다리에 올릴 수는 없다! 

누구라도 붙잡고 일을 맡겨 볼 심산이었다. 

파슨스 블러바드의 싸인이 보이고 좌 회전을 한다. 주유소 앞에 스패니쉬 몇이 보였다.

오후라 몇 사람밖에 없었다. 관상은 볼지 모르니 인상 좋은 사람 만나면 연락처라도

받아 놔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주유소 앞에 차를 세운다. 눈치 빠른 두 사람이 내 차 쪽으로 뛰어

온다. 둘은 거의 동시에 차창으로 달라붙다시피 하며 소리를 질렀다.

“ YOU NEED WORKER?, PAINTING, PLUMBING NO PROBLEM! “

"일 손 필요해요? 페인팅. 배관설비, 뭐든 문제없습니다!"

백육십 센티미터 남짓 비슷한 체구의 남자 둘. 야구 모자에 후드가 달린 재킷, 페인트 묻은 청바지. 

뭐가 들어 있을지 궁금한 배낭 가방. 두 사람과 맞부딪치는 순간, 선뜻 뭐라 대답해야 할지 단어가

떠오르질 않았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유 있어 보이는 아들이 나를 보며 턱으로는 앞 쪽을 가리킨다. 저 쪽에서 걸어오는 또 한 명의 남자가 있었다. 한 손에 들고 있는 찢어진 누런 봉투 사이로 버드와이져의 

로고가 보였다 말았다 한다. 

빼꼼히 보이는 캔 뚜껑은 열려 있었다. 마치 일용직 유니폼이라도 되듯이 옷차림은 내 옆의 두 사람과

같다. 길거리에서 일할 사람을 찾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실감할 때,

아들이 박력 있게 본토 발음 확실한 영어로 차창의 두 사람에게 말한다.

“ SENOR…. Not today, We are not here for workers! “

" 미스터.. 오늘은 괜찮아요. 우리는 일 손 필요한 게 아닙니다!"

두 사람은 한숨을 쉬며 하나, 둘 내 차에서 손을 떼고 아쉬운 듯 뒷걸음질 친다. 저 쪽에서 느리게 걸어오던

누런 봉투의 사내는 뭐라고 스패니쉬로 고함을 지르고는 뒤 돌아 선다.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이

펭귄을 닮아 있다. 

고개 돌려 아들을 쳐다봤다. 

아들은 나를 쳐다봤다. 

우리는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생각 없이 웃고 있는데, 저녁에 만나기로 했던 브루클린 카페 사장의 전화벨이 울린다.

“ 오 사장님 죄송한데요. 늦어도 어제는 나왔어야 할 간판 디자인이 아직도 안 나왔어요, 죄송한데

디자인 나올 때까지 기다려 주셔야겠어요. “ 카페 사장은 요즘 젊은것들은 일이 느려 터졌다며

디자이너 욕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 예, 알겠습니다. 전화 주셔 감사합니다. “라는 말로 전화를 끊었다.

차를 사무실이 있는 칼리지 포인트 쪽으로 돌렸다. 카페가 있는 브루클린으로 가기 전에 전화를

받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 사장의 마음 씀씀이에 고마움을 느낀다. 하지만 사장이 다른 업체에게 일을 맡겼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사무실 앞에 차를 세웠다. 차가 서자마자 뛰어내리듯 가볍게 내리는 아들. 

나는 전화기며, 열쇠 뭉치며, 수첩 등을 챙기며 혹시 잊고 내리는 것은 없는지 다시 한번 차 안을 살핀다. 

요즘 번번이 잊고 다니는 물건이 많아져 주위를 세심히 확인한다. 천천히 차에서 내려 아들을 찾으니,

벌써 밴 트럭 위로 올라가 묶여 있던 사다리를 내리려 한다. 반사적으로 또 소리쳤다.

“ 조심해 져스틴! “

“ Don’t Worry 아빠! “ 아빠를 안심시키려는 듯, 엄지 손가락을 내보인다.

나를 바라보는 아들의 뒤로 해가 보였다. 하루 종일 구름 뒤에 숨어 있던 해가 아들의 뒷모습을

비춘다. 역광 때문에 눈이 부셔 아들의 얼굴을 정확히 볼 수 없다. 웃는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나에게 뭐라 말을 하려는 거 같기도 하다.

그때였다. 익숙한 얼굴, 아들의 얼굴에서 내 얼굴이 보였다.

오래전, 내가 아버지께 

“ 제 걱정은 이제 그만하세요…. 저 잘하고 있어요 “라고 말하던 내 모습이었다.

마침 구름에 살짝 가려진 해 덕분에 아들의 얼굴을 선명히 볼 수 있다. 아들이 큰 눈을 반달로

만들며 미소 짓는다. 어릴 적 나를 올려다보며 웃던 그 얼굴이다.

아빠만 알 수 있는 그 표정의 의미. 그래 나는 너의 아빠 란다.

나는 너의 존재 만으로 행복하련다. 언제나 그랬듯이....

내 아들이어서 고맙다.

아들과 나 사이에 흐르던 어색한 공기가 바람에 날아간다.

한껏 상쾌해진다.  바람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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