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43년간 학생을 가르칠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요?”
5학년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손을 들었다.
“건강해서요!”
“똑똑해서요!”
“돈을 벌 수 있어서요!”
그녀가 빙긋이 웃었다.
“맞아요, 그것도 정답입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어요.”
아이들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잠시의 정적 후 그녀가 입을 연다.
“여러분 앞에 섰을 때 저는 언제나 가슴이 뛰었습니다.”
아, 아이들의 탄성이 터졌다.
우리 학교 교장선생님은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코칭의 대가로 꽤 유명하신 분이다. 처음 이 학교로 발령받았을 때 걱정하는 지인들이 많았다. 일 벌이기를 좋아하고 성취 지향적인 분이니 되도록 눈에 띄지 말라는 조언을 했다. 하지만 지난 3년간 겪어본 그녀는 ‘사랑’이 넘치는 분이었다. 아이들을 세심하게 챙겼고 학부모와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방과후 강좌 수가 100여 개를 넘기고 학부모 연수가 많으니, 인근에서는 사립 못지않은 좋은 학교로 소문이 날 정도였다. 그 일을 관리하고 진행해야 하는 담당 교사들에게 교장선생님은 까다로운 관리자로 비치기도 했다.
교장선생님을 제대로 알게 된 계기는 작년 6학년 제자들에게 진로 특강을 해주실 때였다. 전국을 다니며 강의를 하시는 유명 강사의 수업을 초등학교를 떠나는 제자들에게 해주십사 부탁을 드렸고 당신도 흔쾌히 시간을 내주었다. 개인적인 호기심도 내심 있었다. 당시 교장선생님의 수업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그래서 올해도 예비 6학년을 위해 요청했는데 공교롭게도 퇴임을 앞둔 교장선생님의 마지막 수업이 됐다.
‘가슴 뛰는 비전, 쓰면 이루어진다’라는 제목으로 아이들 앞에 선 교장선생님은 열정 그 자체였다. 60세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당신의 지난 삶과 앞으로 펼쳐질 인생에 자부심과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성공이 뭐라고 생각해요?”
“돈 많이 버는 거요!”
“유명해지는 거요!”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는 거요!”
아이들의 대답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교장선생님은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교장선생님이 생각하는 성공은 성장하며 공유하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당신의 평범치 않았던 지난 삶을 흥미진진하게 펼쳐냈다. 잘 나가던 남편과 똑똑한 자녀들을 둔 유능한 교사가 한순간에 빚쟁이로 몰려 지하 셋방으로 쫓겨났던 사연과 두 자녀의 고등학교 자퇴와 우울증으로 죽고만 싶었다고 순간을 담담히 들려줬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아이들이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기적처럼 만난 책이 스티븐 코비 박사의 ‘성공한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었다고 고백했다.
“아, 그래서 우리가 1학년부터 그 수업을 들었구나.”
이제야 이해됐다는 듯 7가지 습관을 아이들이 줄줄 읊는다.
그리고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은 성품을, 성품은 운명을 바꾼다고 말씀하시던 교장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드림 리스트 100가지를 써보라고 권했다. 가슴 설레는 일, 되고 싶고, 갖고 싶고, 배우고 싶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 같은 아주 사소한 것부터 거창한 것 지 일단 모조리 적으라는 말에 아이들이 끄적이기 시작했다.
우리 반 영준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저는 프로게이머가 돼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어요.”
오호라, 분명 교실에서는 돈 왕창 벌어서 펑펑 쓰고 싶다고 했는데 성공의 의미를 배우고 벌써 ‘성장하고 공유하는’ 삶을 꿈꾸고 있다.
교장선생님은 비전을 가졌던 제자들의 성공 사례를 끝도 없이 소개했다. 삐뚤삐뚤한 글씨의 초등학교 2학년이 명문대를 가고, 연습을 꾸준히 하던 성실했던 아이가 수영선수가 된 사연에 아이들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절망했던 순간 쓰기 시작했던 교장선생님의 비전 리스트가 스크린 위로 올라갔다. 베스트셀러 작가 되기, 아들딸과 감동적인 강의하기, 기부한 해외학교 방문하기 등 당시에는 허무맹랑했던 파란색 드림 리스트가 빨간 색깔로 바뀌어 현실이 됐음을 아이들은 두 눈으로 확인했다. 당신의 끊임없는 반성과 노력으로 결국 변화와 성장을 가져왔고 그 결과 은둔형 외톨이였던 아들딸도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고 담담히 말했다. 낮은 자존감으로 방에만 있던 딸이 멋진 모습으로 자신의 꿈을 찾고 가정을 이뤘다는 대목에서는 아이들의 열렬한 환호성과 박수가 터졌다.
“오늘 이 시간이 저의 마지막 수업입니다. 선생님은 학생 앞에 섰을 때가 가장 설렜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일을 꼭 찾고 행복한 인생을 사시길 바랍니다.”
교장선생님은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너무 아쉽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꿈을 계속 만들어가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교실로 돌아온 아이들은 할 말이 많은 것 같았다. 내 주위로 몰려들며 선생님은 교장선생님의 사연을 알았냐며 자신들이 얼마나 훌륭한 교장선생님 밑에서 공부했는지 이제야 알았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남긴 명강의의 울림을 포스트잇에 적게 했다.
-따님 이야기가 정말 감동적이었다
-교장선생님이 왜 7가지 성공습관을 그렇게 강조하셨는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쓰면 이루어진다니 오늘부터 꿈 리스트를 만들겠다
-좌절과 역경을 이겨낸 교장선생님 존경한다
-5년을 함께한 우리들의 교장선생님 사랑합니다
-교장선생님 책 들고 내일 사인받으러 가겠다
또박또박 눌러쓴 아이들의 소감이 교사로서의 당신 삶이 얼마나 값지고 의미 있는지 그녀에게 잘 전달됐을지 모르겠다. 동료이자 후배로서 인생 선배님의 울림은 내게도 컸다. 지금 나는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있는가. 과연 나의 마지막 수업은 어떤 키워드로 제자들과 만날 것인가.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더 큰 사회에서 펼쳐갈 우리 교장선생님의 인생 2막을 늘 지켜보며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