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하는 날
오늘은 펌 하는 날, 오후 2시 예약이다. 미용실에 다녀온 지가 지난해 언제인가? 벌써 육칠 개월은 지난 것 같다. 머리관리가 영 안되어서, 버티다 버티다 예약을 잡았다.
이발소 세대인 나는 미용실에 드나드는 것이 왠지 불편해서, 출입이 아직도 자연스럽지 못하다. 예약시간 10분 정도 일지감치 도착했다.
미용실의 소리가 바쁜 일상처럼 흩어진다.
윙윙윙... 사각사각...
드라이어와 가위소리가 들린다.
예약자를 반기는 O실장이 이것저것 설명해 주는데, 알아듣는 말이 60프로 밖에는 되질 않는다. 그냥 알아들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꼬치꼬치 물어보아서 다 알게 되는 것도 좋겠지만, 굳이 100을 전부 알 필요도 없고, 60 정도면 엉뚱한 모양으로 나오진 않을 것 같아, 그냥 궁금함을 접어두기로 한다.
한참 민감했던 예전 어릴 적 같으면, "여긴 이렇게, 저긴 저렇게, 그리고 요기는 요렇게 해 주세요"하면서, 하나하나 시시콜콜 얘기했을 것이다.
머리 펌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간다.
샴푸-커트-말고-기다림-중화-린스-드라이-마무리...
O실장의 의견이 대부분 수용되었으니, 본인의 장기가 발휘되는 순간이다.
싫지 않다. 누군가에게 맡겨져 그냥 편히 내버려 둔 적이 살면서 별로 없었다. 항상 나 스스로 제자리를 찾으려 노력하고 노심초사하며 살아왔다.
이젠 그리하지 않을 시간이 되어 다행이다. 평일 오후 2시의 예약과 한낮의 두어 시간 씀이 말해주듯, 사뭇 삶의 시간이 여유로워졌다.
게으름에 늘어지지 않게만 조심한다면, 꽤 괜찮은 시간들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