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네가?

그러게나 말입니다

by 진이령

“아니, 네가? 왜?”


발병한 후 주변에 아프다는 사실을 조심스럽게 알리기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네가 왜?


나는 양극성 정동장애(조울병)와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

2014년에 발병했으니 2021년 현재 7년 된 숙환을 앓고 있는 환자다.


발병 전까지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은 활달하고 밝고 붙임성 좋은 20대 초반의 여대생이었다. 씩씩하고 싹싹하고. 척척 맡은 일을 잘 해내는 책임감 있는 사람. 지금도 날 잘 모르는 사람들은 대략 비슷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런 이미지와 맞지 않게 정신병이라니.


“그래 공황장애는 그럴 수도 있다 쳐, 근데 조울병이라고? 막 감정이 널을 뛰고 그런 거야? 우울했다가 기분 좋았다가, 그런 거?”


‘양극성 정동장애’라고 하면 아무도 못 알아듣는다. 조울병이라고 고쳐 말하면 십중팔구 이런 반응이었다.


일일이 설명하기도 길고 구차하고, 병이 만성이 되다 보니 내가 어땠는지 기억이 잘 안나고 지금 내 상태가 어떤지 감이 안와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나도 내 병에 대해 설명하면서 생각 좀 정리해보려고.


나는 어쩌다 정신병에 걸렸을까?


과연 그 답을 알 수 있을까? 어찌 됐건, 까마득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기 전에 공황 발작과 눈물로 화려하게 수놓았던 2014년으로 돌아가 보고자 한다.


그때 나는 아는 분의 소개로 정신과에 처음 내원했다. 내원 당시 상태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나는 두 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고 실패했으며 수 차례 미수에 그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들 나를 왜 입원시키지 않았을까?’ 싶다. 20여분 남짓한 초진 동안 의사 선생님은 나의 가족력과 가족사, 내 상태와 자살 시도 여부 등을 간단히 묻고 일주일치 약을 처방해주었다.


다음번에 올 때는 혼자 오지 말고 꼭 보호자와 같이 와야 한다는 말을 뒤로하고 나는 수납 카운터에서 처방전을 받아 들었다.


F316. 양극성 정동장애, 현존 혼합형
F410. 공황장애 [우발적 발작성 불안]
F510. 비기질성 불면증


‘제임스 본드의 코드 네임이야?’ 나는 속으로 뇌까렸다. 코드와 숫자 그리고 한 줄의 글로 내가 단정 지어지니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빴다.


비급여로 처리했고 초진비와 약제비를 전부 현금 납부했다. ‘기록’이 남을까 두려워하며.

(6년간 쓰던 가계부 어플이 폭파되면서 기록을 찾을 순 없지만, 당시 십몇만 원을 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병원에 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블로그 후기와 기사를 찾아봤는지 모른다. 정신과를 제 발로 걸어 들어가야 할 만큼 피폐해진 상태에서도 사회적 죽음이 두려워 차라리 내 손으로 내 목숨을 끊기를 바랐던 나다. ‘기록’이 남아선 안된다.


그러나 나는 가난했고 나의 부모님은 더욱 가난했다. 일주일마다 비급여로 진료비와 약값에 십몇만 원을 쓰면 한 달이면 50만 원이 넘는 큰돈이 깨진다. 그리고 비급여 처리해도 ‘기록’은 어차피 남는다.


일주일 뒤 다시 내원했을 때부턴 비급여가 아닌 국민건강보험에 감사함을 느끼며 카드를 시원하게 긁었다.


어쩔 거야. 당장 발등에 붙은 불을 꺼야 발을 안 잘라내지.


당시에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keyword
이전 01화Int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