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정신병에 걸렸을까?

나도 여전히 궁금해

by 진이령

발병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스스로 나름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어려운 수강신청을(우리 학교는 수강신청에 실패한 추가 인원을 받아주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강의를 한 반 더 개설해주는 경우는 더더욱 없었고.) 5학기째 성공하며 원하는 대로 스케줄을 짤 수 있었고, 꾸준히 풀타임에 가까운 파트타임 자리를 구할 수 있었으며, 서울에서 살며 문화적 수혜를 입었다. 학교와 집도 가까웠고 내가 원할 때 같이 술 마셔주는 사람도 많았다.


내가 대학을 다니는 건지 일을 다니는 건지 자주 헷갈리긴 했지만 나의 목표는 <졸업>이었기 때문에 학생의 본분을 잊은 것 따윈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나는 돈에 한이 맺혀있었다. 청소년기에 돈 때문에 고생을 ‘아주 조금’ 했는데 그게 골수에 까지 인이 박였던 터이다.


그러고 보니 나의 유구한 아르바이트 경력은 초등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친구와 치킨집 전단지를 아파트에 살포하고 받은 2만 원으로 신나게 만화책을 봤던 것이 내 굴레의 시작이었다.


다시 돌아가서, 돈에 한이 맺힌 나는 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서 부모님께 경제적 독립을 선포했다. 당장 집을 나가 혼자 살 수는 없지만, 집에서 돈 안 타서 쓸 테니 내 인생에 터치하지 말라! 는 강한 워딩까지 덧붙여가며. 그런데 이게 뭐람? 기울어져가던 집이 완전히 망해버려 오히려 부모님이 나에게 경제적으로 독립을 못하게 되었다.


이게 뭐람.


나는 돈을 벌어야 했다. 초등, 중등, 고등학생인 세 동생과 무직의 부모님. 다섯 식구가 출근하는 나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의 오싹함이란.


집안 경제 사정은 지옥에서 롤러코스터를 타고 나는 스물셋이 될 때까지 고군분투하며 전력질주를 했다.



상담받을 때 ‘언제’부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냐는 질문을 받았었다.


“언제요? 중학생 때부터요.”


“언제요? 중학생 때부터요.”


그럼 의사 선생님이나 상담 선생님의 낯빛이 상당히 어두워진다.


“그럼 약 10년 정도 된 거네요?”


그렇게 말하는 선생님들의 어투는 마치 치과 의사 선생님 같았다.


‘충치를 이렇게 방치해서 임플란트까지 하게 만들어 온다고요?’하고 반문하는 치과 의사 선생님 말이다.


잠시 우리 부모님과 가족들을 변호하자면, 나는 방치된 아이가 아니었다. 충분히, 아주 과할 정도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자랐다. 청소년기 중반까지는 고리타분하게 안정적인 삶을 살았기도 했다.


우리 부모님이 인정하기 어려웠던 점은 단 하나. 내가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점이었다. 중학생 시절 상담 치료를 받을 뻔했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무산되었고 고교생 때 미국 유학이란 돌파구로 나의 우울증은 청소년기에 흔히 있는 사춘기 정도로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게 아닌데…….


그땐 나도 몰랐다. 조금 괜찮아져서 괜찮아 진건 줄 알았다. 중2 때 자해를 할 만큼 상태가 심각했는데 또 살다 보니 살아지더라. 그래서 나 역시도 청소년기에 흔히(?) 있을법한 일 정도로 치부하고 어떻게든 살아 보고자 바쁜 걸음을 재촉했었다.


상처가 났으면 소독을 하고 약을 바르고 잘 아무는지 경과를 봐 가며 밴드도 붙였다 뗐다 해야 하는데 나는 그 과정이 아예 없었다. 상처가 났고 상처를 누가 볼세라 오염된 거즈라도 집어 둘둘 말아놓은 형국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덧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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