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난색을 표했다. 그들의 대답은 지금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이론적인 설명이었던 것 같다. 인터넷의 학술 정보도 뒤졌지만 뾰족한 답이 없었다.
유전 때문이다, 스트레스 때문이다, 호르몬 문제다, 기가 원활하지 않아서(?) 그런 거다 등등. 온갖 추측은 난무했지만 무엇 하나 똑바로 이 만악의 근원을 가리키는 것은 없었다.
“그냥 그렇게 될 수도 있어요.”
“그냥 그렇게 될 수도 있어요.”
아니, 그냥이라고? 병이 내 삶을 잡아먹고 망쳐놨는데 ‘그냥 그렇게’ 될 수도 있다고?
나는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근원을 알아야 치료를 할 수 있지 않는가? 근원도 모르면서 뭘 어떻게 치료한다는 거지? 내가 먹는 수 십 개의 알약은 임상 효과를 입증받은 약들이다. 뇌신경 전달 물질의 오류를 약으로 조절하는 것이 주요 골자인데 난 여전히 이해가 안 됐다. 내가 병으로 입은 피해엔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했다. 그냥이 어딨어.
하지만 세상만사 어찌 다 이해할 수 있으랴. 그냥도 있는 거지. 이젠 그렇게 생각한다.
조울과 공황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조울과 공황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바쁘고 복잡한 현대인의 삶과는 맞지 않는 나무늘보 같은 내 성정?
청소년기에 당했던 학교폭력?
내면의 어린아이를 자학하던 나 자신?
어려운 경제 사정?
내재되어 있던 유전?
혹사당한 육신의 붕괴가 불러온 비극?
그것도 아니라면 신을 배반함에 대한 벌이었을까?
나는 나 자신에게로 침전했다. 한 결 한 결 가닥을 잡아가며 나는 나의 근원 그 깊은 곳으로 향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오염된 거즈를 들어내자 그 밑에는 곪아 터지다 못해 구더기가 득실대는 상처가 드러났다. 상처는 공기와 만나 산화되어 타들어갔다. 그 고통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상처는 낫지 않았고 헤집으면 헤집을수록 그 크기와 고통을 확장해 갔다. 누군가 그랬다. 곪은 상처를 낫게 하려면 환부를 완전히 도려내야 한다고. 나는 스스로 집도의가 되어 나의 환부를 조금씩 도려내곤 했다. 외로웠다. 괴로웠다. 도망치고 싶었다. 죽고 싶었다. 죽고 싶은 만큼 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