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초 삼계절 침낭은 좀 춥네요
그동안 차박을 해 보겠다고 이것저것 준비를 하는 과정이 주로 먹고사는데 치우쳤습니다. 실제 밖에서 '잠'을 자보기 전에 예행연습 삼아 '밥 먹고 돌아오는' 피크닉, 차크닉을 몇 다녀오기도 했고요. 먹고사는 문제는 집에서 쓰던 가스버너(부르스타)에 조리도구들 챙겨 나가거나, 장작이나 숯에 불을 붙여서 이것저것 구워 먹으면 되는 것이다 보니, 사실 뭘 새로 준비하지 않아도 바로 시도하는데 무리는 없었습니다. 물론 몇 차례 나들이를 다닐 때마다 '이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들의 영상이나 콘텐츠를 보다 보면 '저거 신기한데'라는 마음이 들어서 조금씩 이것저것 구매하긴 했지만 말이죠.
3월이 들어서고 아직 쌀쌀하기는 하지만 더 이상 최저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날은 확연히 줄었습니다. 아직 동네에서 제 눈에 보이는 꽃은 없지만, 뉴스를 보다 보면 꽃소식이 조금씩 들려오기도 하고요. 풀려가는 날씨만큼 이것저것 든든하게 끼어 입고 자면 하룻밤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용기도 샘솟았습니다.
그러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더군요. 바로 침낭이었습니다. 가볍게 시작하는 차박을 권장하는 분들께서는 덜컥 침낭을 사지 말고 집에 있는 담요나 이불을 들고 가서 먼저 써보는 것을 권장하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막상 집안 구석구석을 훑어보니, 밖에서 막 굴릴만한 침구는 없었습니다. 밖에 들고나가면 필연적으로 지저분해질 수밖에 없을 텐데, 이불세탁은 아무래도 좀 귀찮은 일이기도 하니까요. 십수 년 둘이서 지내오면서 불필요한 침구를 들이지 않고, 낡은 침구는 정리해오다 보니, 저희가 쓰고 있는 침구와 따로 정리해둔 손님용 침구 말고서는 여유분의 침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침낭을 사기로 결정했습니다. 제 인생 두 번째 침낭이네요. 어릴 적 보이스카웃 시절에 침낭을 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게 벌써 30년도 더 되었네요. 아마 그 침낭은 제가 본가를 떠나면서 정리가 되었겠지만, 지금 어디 창고에 있다고 하더라도 어린이용이었기 때문에 크기고 맞지 않을 것입니다.
아내와 함께 침낭을 사려고 인터넷을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적당히 남들 쓰는 '보통 물건'이 있을 줄 알았는데 이것도 종류와 재질, 가격이 정말 다양하더군요. 미라 형태처럼 사람이 쏙 들어가서 옴짝달싹 못하는 것부터, 크게 이불처럼 펼칠 수 있는 일반적인 형태도 있고, 그냥 솜이 들어간 것부터, 고가의 구스다운이 들어간 것까지 정말 다양했습니다.
한 겨울에 아예 밖에서 자는 것은 아니어서 동계용은 필요 없겠다는 생각으로 삼계절용 위주로 검색을 시작했습니다. 그게 저렴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너무 저렴한 것을 사면 막상 샀다가 제대로 못 쓰고 이중 지출이 될 것 같은 걱정도 들었습니다. 사람 일이라는데 다 그렇기는 하죠. 어떻게 항상 최적화된 선택을 할 수 있겠습니까. 때로는 실수도 하고, 낭비도 생기고 그러는 것이겠죠.
여기저기 검색을 하다가 한 번에 두 개를 구매하기보다는, 저렴한 것을 하나만 테스트해본 후에 그걸 기준으로 더 상위 물품을 살지 말지 결정하기도 했습니다. 보통 국내 쇼핑몰보다는 알리 익스프레스가 저렴한 물건들이 조금 더 있다 보니 그쪽 위주로 찾아보았습니다. 구매한 다음 언제 도착하는지 까먹을 때 즈음되어야 물건이 도착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무료배송에 10불짜리 침낭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사각형 형태의 삼계절용이었고, 충전량은 700g이었습니다.
몇 주 후 물건이 도착하고 펼쳐보니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직 쌀쌀한 밤공기 속에서 잠을 자기에는 그렇게 도톰해 보이지는 않더군요. 안감 재질은 매끈매끈한 소재로 되어있었습니다. 뭘 조금 흘리거나 오염되어도 닦아내기에는 좋을 것 같고, 땀이 조금 나는 계절에 사용하기에는 냉감도 있어서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요즘 같은 늦겨울, 초봄 날씨에는 조금 부실해 보였습니다.
이 침낭은 제가 쓰기로 하고 아내는 조금 충전량이 많은 제품을 골라야겠더군요. 우연찮게 아내가 공영 쇼핑 사이트에서 만원 이상 구매 시 2천 원을 할인해 주는 쿠폰을 받아서, 그쪽에서 침낭을 검색해 보니 충전량 900g짜리를 무료배송에 11,900원에 팔고 있더군요. 심지어 700g짜리는 1+1으로 두 개에 15,900원에 판매하고 있더군요. 알리익스프레스에서 구매한 것보다 더 좋거나 비슷한 제품을 할인까지 받아서 더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무조건 알리익스프레스가 가장 저렴할 것이라는 것도 이제는 옛말이 되어버렸나 봅니다.
알리익스프레스에서 하나를 먼저 구매하지 않았더라면 1+1 상품을 샀을 수도 있지만, 이미 하나는 확보해 둔 상태였기 때문에 아내 것만 900g짜리로 구매를 했습니다. 도착한 물건을 보니 확실히 700g짜리 보다는 눈에 띄게 도톰합니다. 정리해 놓은 패키지의 덩치도 크고요. 물론 이것도 한 겨울에 완전히 밖에서 자는 데에는 적합치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 정도면 핫팩이나 온열시트 같은 것을 사용해서 차 안에서 하룻밤 보내는 데에는 괜찮을 것 같더군요.
처음 이 침낭을 들고나가서 잤을 때는 예보상 최저기온이 0~1도 정도였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보니 차 위에 서리가 새하얗게 앉아 있더군요. 아마 온도가 조금 영하로 내려가긴 했나 봅니다. 무시동 히터도 파워뱅크도 없다 보니 따로 실내를 꾸준하게 난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저희가 가지고 있는 것은 핫팩뿐이었죠. 옷은 든든히 챙겨 입었습니다. 내복에 따뜻한 바지도 입고, 양말도 도톰하게, 그리고 위에는 든든한 파카도 챙겨 입고 침낭 안에 들어갔습니다.
추위를 대비할 때에는 발가락에 좀 신경을 쓰는 편입니다. 예전에 하루는 겨울에 골프를 치러 나갔는데, 정말 말도 안 되게 추운 날이었습니다. 몸이야 추우면 좀 껴입고, 귀가 시려우면 귀마개를 하고, 손이 시려우면 핫팩을 잡고 있으면 되는데, 발가락이 시린 것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잠을 자다가 잠깐 깨보니 저도 모르게 발가락으로 핫팩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잠자리에 들었을 때는 그렇게 춥지 않았는데, 역시 학창 시절 지구과학 시간에 배웠던 것처럼 해뜨기 전이 가장 추운 게 맞더군요. 새벽에 추위에 잠깐 깼습니다. 그때 예비로 챙겨 온 USB 손난로를 켜서 침낭 안쪽에서 품고 있으니 다시 온기가 돌면서 다시 스르륵 잠에 들었습니다.
차에서 처음을 잤던 그날, 많은 것을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차 내장재가 생각보다 단열이 잘 되지 않더군요. 자다가 다리나 팔이 차 옆면이나, 트렁크 벽면에 닿을 때가 있었는데, 플라스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잠결에 만지니 거의 밖에서 철판에 닿은 것처럼 차갑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다음번에 잘 때는 발포매트 같은 것으로 닿는 부분에 단열을 좀 하니 한결 나아졌습니다. 그리고 실내 결로도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더군요. 36.5도로 산소와 에너지를 태우고 있는 사람 둘이 밀폐된 공간에 있다 보니, 창문마다 습기가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최저기온이 5~6도가 넘어갈 때 밖에서 하룻밤을 다시 보내보았습니다. 몇 도 차이가 이렇게 크게 느껴질지는 저도 몰랐습니다. 이 정도만 되어도 옷을 한결 가볍게 하고 잘 수도 있고, 핫팩 하나만 가지고도 아무런 문제가 없더군요. 물론 그렇다고 집에서처럼 하늘거리는 잠옷 한 장만 걸치고 잘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니 혹시라고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대신에 조금 따뜻하다고 느껴진 날은 여지없이 하루살이, 날파리들이 조명을 따라 차량 안으로 들어옵니다. 아직 차량 문을 커버하는 방충망은 없는데, 방충망이 있다고 하더라고, 실내에 밝은 조명을 켜 둔 상태에서 문을 열고 닫으면 한 두 마리는 어쩔 수 없겠더군요. 벌써 이 정도이면, 날씨 좋은 5~6월이 되면 얼마나 더 많은 벌레가 기승을 부릴지 걱정입니다.
두어 번의 차박을 통해 고민 끝에 새로 들인 침낭의 테스트는 일단락이 났습니다. 완전히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크게 무리 없이 밖에서 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올해는 이제 점점 더 날이 풀려갈 것이고, 그러면 좀 더 가볍게 잠을 청할 수도 있겠죠. 요 근래에는 주말마다 날씨가 그렇게 좋지 않았습니다. 물에 젖은 장비들을 어떻게 말려야 하는지 노하우가 없다 보니, 아직 우중 캠핑은 시도해 보고 있지 않습니다. 이번 주말에도 비 소식이 있던데, 이제 꽃도 만개하고 할 텐데 앞으로는 날씨 좋은 주말, 휴일이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