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부천역 근처에 있던 환하게 햇빛이 드는 책방이 기억난다. 고즈넉하거나 동네 사람들의 쉼터가 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래된 알루미늄 또는 나무로 된 미닫이를 열고 들어가는 그런 곳도 아니었다. 80년대 말, 90년대 초였지만 요즘의 것과 다르지 않은 유리문이었고 간판은 기억나지 않지만 유리문과 유리로 된 서점 전면을 따라 '복사골문고'라는 회색 글씨가 있었던 것 같다. 회색 배경에 흰 글씨였던가. 아니면 그 회색 자체가 왜곡된 기억일 수도 있다. 확실한 기억은 학교 앞 문방구 창문 앞에 진열해 두었던 프라모델 상자들의 그림 상태를 생각해 볼 때, 저렇게 돼 있으면 판매용 책 표지도 모두 색이 바래 버리지 않을까 하고 그 어린 시절에도 의문이 들었을 정도로 전면으로 환하게 들어오던 햇살과 책을 구입하면 늘 한 권 한 권 복사골 문고라는 글자가 반복해서 인쇄되어 있는 종이로 커버를 만들어 주던 모습이다. 그 종이가 회색 배경에 하얀 글씨로 되어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아마 김창완 씨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어요>는 그 서점에서 보았던 것 같은데, 중학교 때는 근처 지하에 위치했던 경인문고만 기억에 남는 것으로 보아 그즈음 언젠가 사라져 버렸던 것 같다.
이후로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문제집과 람세스를 비롯한 소설들은 모두 경인문고에서만 구입했다. 경인문고가 지하에 위치해서 책바램도 적어서인지, 상대적으로 대형이어서 할인을 많이 해주어서인지, 아니면 포장을 해주지 않아 계산 시간이 단축되어서인지 어째서 복사골문고가 사라졌는지에 대해 이유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다만 그때 경인문고에서 포인트제를 한다기에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가서 회원 카드를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기계에 새 플라스틱 카드를 넣고 이름을 이야기하니 뭔가 달그락거린 후 지렛대를 아래로 당겨 덜컹, 하고 카드에 이름을 찍었었다.
경인문고는 부천역에 교보문고 부천점이 들어오고 나서 몇 년간 어찌어찌하다 결국 다른 지점만 생기고 부천역 근처에서는 사라졌다. 그래도 중고등학교 시절 6년간, 아니 교보문고가 생기고 나서도 몇 년간 집에서 가까워 종종 가서 책을 사던 초록색 로고의 그 서점은 아직 눈밭의 선명한 발자국을 무심하게도 서서히 눈이 덮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을 때 같은 느낌으로 남아 있다.
얼마 전 부천 터미널에 갈 일이 있었다. 대전에서 올라오는데 철도파업으로 KTX를 예매할 수가 없어서 버스를 탔을 때였다. 오후 두 시에 출발한 버스는 기차에 탔어야 하는 사람들이 모두 차를 한 대씩 끌고 나와 차량시위라도 하는 듯 평소 한 시간 반이면 도착하던 것이 오후 여덟 시가 다 돼서야 도착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하차장에서 터미널로 들어와 잠시 대기용 의자에 앉았다. 아직도 버스에 타고 있는 듯 몸이 붕 떠있는 듯한 느낌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잠시 후 조용한 터미널과 쇼핑몰을 나누고 있는 문을 열고 옷가게들과 푸드코트를 마주했다. 같은 건물에 터미널 공간과 쇼핑몰 공간은 물리적으로는 유리벽 하나만으로 나뉘어져 있었지만 조도나 사람들의 숫자나 모든 것이 달랐다. 어두컴컴하고 조용하고 추운 터미널 공간과 눈이 부시도록 환하고 사람들로 바글거리며 따뜻한 쇼핑몰. 아직 멍한 상태가 풀리지 않았는지, 갑자기 환해지면서 두세 명만 어슬렁거리던 터미널과 달리 계속 사람들을 피해 가면서 걸어야 할 만큼 인파라고 할 만한 무리들을 마주하니 나도 모르게 서점 생각이 났다. 이성적으로는 그대로 시내버스를 타고 집에 가서 눕는 게 더 낫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사람은 더 빠른 쾌락을 선택하는 법이다. 나는 그대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무심코 1층 식재료 코너로 내려갔다가 그대로 무빙워크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 버렸다. 지하 1층에 경인문고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지하에 도착하니 살짝 당황스러웠다. 작은 식당들과 이런저런 가게들이 있었는데, 위쪽 패션 코너와도, 더 위의 푸드코드와도 달랐다. 뭔가 타임머신을 타고 이동한 듯한, 90년대 지하상가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일단 넓은 곳으로 가서 이정표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걸었다. 길이 점점 넓어져서 곧 이정표가 나오겠구나 싶었을 때, 눈앞에 <캔모아>라는 글씨가 보였다. 풍선 글씨체로 캔모아라니. 옛날의 그 캔모아 맞다. 아이스크림 디저트 가게. 여자애들이 많이 갔지. 나는 한 번밖에 가보지 않았고 그것도 2000년대 후반이라 곧 전부 사라졌다고 생각했었다. 90년대에 유행하던 디저트 가게가 있는 90년대 지하상가 분위기의 공간인데 그곳에서 내가 찾는 건 내가 90년대에 자주 가던 서점이다. 신기해하던 찰나 캔모아 바로 뒤로 친근한 옛날의 그 경인문고 간판이 나왔다.
여전히 동네 서점은 절반이 문제집이다. 어느 학교가 어느 교과서를 사용하는지 관내 학교들 별로, 과목별로 만들어서 코팅해서 붙여 놓은 서가를 지나 문학 코너로 가니 분야마다 조금씩 큐레이팅을 시도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자주 들를 수 있다면 오며 가며 큐레이팅 보드를 읽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세계문학 코너는 웬만한 동네 서점이 다 그렇듯 벽에 붙어 있었다. 제목만 알고 있든 인상 깊게 읽었든 차분히 제목들을 훑어 가다 보면 중간중간 반가운 마음이 드는 건 매한가지다. 아는 내용들을 곱씹으면서 그 내용들과 어떤 부분들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 최근의 일들과 합쳐지고 주인공들의 싸움과 나의 갈등들이 서로 나란히 기댄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면 이미 한국 문학 코너까지 걸어온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인터넷에서 본 적 있는 김영하 소설 세트가 눈에 띄었다. 열 권이 나란히 꽂혀 있으니 예뻤다. 인터넷에서는 제목들의 배열이 줄을 맞추고 있지 않아서 산만해 보였는데 직접 보니 그렇지만도 않았다. 오히려 흰색의 바탕이나 표지의 글씨체가 너무 일관성 있게 차분하다 보니 줄을 맞추지 않은 것이 오히려 지루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한 권 꺼내 읽어볼까 했지만, 아직은 정신 상태가 책 구경까지는 오케이이지만 글자를 읽으면서 내용이나 느낌을 곱씹는 건 거부감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관심이 없는 악보 코너까지 크게 돌아보았다. 확실히 옛날의 그 크기는 아니다. 어렸을 때라 더 크게 느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인터넷 서점에서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아직 구입하지 않은 책이 있으면 구입하려고 했는데 마침 장바구니가 비어 있었다(예스24와 알라딘, 교보문고 앱을 모두 확인하느라 잠시 서 있는데 누군가 내 뒤에 있는 책을 보려고 해서 또 몇 걸음 비켜주고 찾아보곤 했다.). 그리고 버스의 영향으로 붕 떠있는 느낌도 많이 가라앉았고 정신도 멍한 기운이 사라져 가고 있어서 다시 빨리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아마도 캔모아처럼 앞으로도 어 오랫동안 이 자리에 계속 있으리라 생각하며 활짝 열려 있는 문으로 다시 나왔다.
무빙워크를 타고 올라오는데, 90년대의 체험공간에서 빠져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틀림없이 2025년 문제집들과 신간들이 있었음에도 공간의 냄새는 바뀌지 않은 것 같았다. 80년대 학력고사 문제집이 있었더라도 너무 과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현재의 물리적 공간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흔적은 우리에게 소중하다. 기억만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 기억은 물리적은 연결고리 없이는 힘을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