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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랑말랑두부 Jul 24. 2024

이곳은 안전한 곳이란다-

임신에서부터 출생 전_ 첫 번째 이야기



임신에서부터 출생 전 :
 '내가 잘 자라고 태어나기에 이곳은 안전할까?'



  ‘이 시기의 태아는 생존에 대한 결정을 합니다. 자궁의 환경이 안전한지, 엄마가 자신에게 보내주는 메시지가 따뜻한지, 엄마가 다른 사람들과 관계하는 것이 편안한지 등을 판단하여 자신의 삶과 관련된 결정을 내립니다.’   

      


                   


▮ “아가야, 네가 우리에게 와 준 게 너무 기뻐.”   


  임신을 알게 되었을 때 느낀 감정은 기쁨이었습니다. 여동생이 먼저 출산을 준비하고 있었던 영향도 있었고, 임신 전에 해야 할 리스트들(원장연수, 석사논문인준)을 모두 완수했기 때문에 '이제는 임신을 해도 괜찮아.' 하는 스스로의 허가가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임신도 그저 내가 해내야 할 과업쯤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첫 감정 '기쁨'은 아쉽게도 '내가 해야 할 일을 잘 해냈어.' 하는 성취의 기쁨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만약 다시 아이를 한 번 더 갖게 된다면 아이가 나에게 왔음을 확인했을 때, 성취감이 아닌 진정한 기쁨 그 자체로 반기고 환영해주고 싶습니다.


  아이를 가졌다는 것은 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알아갈 수 있는 행운을 얻었음을 뜻합니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살아냈던 제가 아이 덕분에 처음으로 일을 멈추게 되었고, 오롯이 여덟달을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보며 지낼 수 있었습니다. 아이의 존재로 인해 저 또한 존재 자체로 존중받는 귀한 시간을 죄책감 없이 누릴 수 있었습니다.

  

  저는 아이를 하늘이 보내준 스승이라고 말합니다. 부모를 거울처럼 비추어 자각하고 변화하게 이끌어 주는 귀한 스승이 바로 자녀입니다. 저의 경우 아이를 갖자마자 아이로부터 큰 야단을 맞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다는 꾸짖음이었습니다.


  아이를 갖게 된다면 누구와 어떻게 임신을 축하할지만 계획하지 말고, 임신을 왜 기뻐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왜라는 질문에 하나의 정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우리에게 와 준 것이 어떤 의미에서 기쁨이 되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에서 아이와의 동행이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이라는 경험을 통해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임을 믿습니다. 아이로 말미암아  몸을 귀하게 여기고  몸의 변화를 통해 잊혀졌던 감각들을 깨워보세요. 언제나  자리에 있었지만, 여러 관계 속에서 다양한 역할을 해내느라 보이지 않았던  자신이 보이게  것입니다. 이점이 아이가 우리에게  주었음을 기뻐해야하는 가장  이유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오늘도 건강하게 있어 줘서 고마워.”


  아이를 임신하고 얼마 되지 않아 하혈이 조금 있었지만 저는 좀처럼 열심히 일하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따르는 7살 꼬마들이 20명 남짓 있었고, 아이들을 저에게 맡기고 일과 삶을 묵묵히 일궈나가시는 학부모님들이 있었습니다. 몸을 좀 살피면서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어린이집 일이라는 것이 그렇게 제 몸까지 살펴가며 여유있게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퇴근 후 어느 늦은 밤, 예고도 없이 하혈이 시작되었고, 우리는 급하게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저는 뱃속의 아이에게 쉬지 않고 말했습니다.


'아가야, 거기에 잘 있어야 해, 제발! 엄마가 앞으로는 쉴게 정말!'


  내가 좀 더 좋은 산모였다면 임신으로 달라진 나의 몸을 인정하고 나 자신을 조금 멈춰 세웠지 않았을까 합니다. '일도 중요하지, 하지만 나는 이제 엄마야. 천천히 하자- 잘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하자-'하는 허가를 스스로에게 충분히 주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일벌레였던 나는 '오예! 과제가 하나 더 생겼어! 이것 또한 내가 멋지게 해보이지!' 하며 오만을 떨었습니다.


  이 시기를 보내며 제가 중요하게 깨달은 점은 '건강은 건강할 때 챙겨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건강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감사하지 않는다면 그 당연한 것을 잃게 될 지도 모릅니다. 매일매일 태아에게 그리고 산모인 자신에게 "오늘도 건강하게 있어 줘서 고마워."라고 말해보세요. 그 말로 말미암아 산모는 자신과 태아의 건강에 대한 책임감을 매일 매일 상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의식과도 같이 반복하는 이 말이 나와 아이의 존재 자체에 대한 고마움을 매일 잊지 않게 해 줄 것입니다. 임신을 했지만 여전히 바쁜 엄마들에게, 지금은 일보다 아이와 자신의 건강하게 돌보는 것이 우선과제라는 것을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 “아가야, 네가 어떤 모습이든 우리는 너를 사랑해.”      


  아이의 성별을 알게 될 무렵 아이 방을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작은 치수의 리본이 달린 구두를 사고, 태명도 토순이라고 정했습니다. 딸을 키울 마음의 준비가 된 순간, 병원에서는 다시 아들이라고 성별을 수정해서 알려주었습니다.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금세 '딸이든 아들이든 뭐가 중요해-'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임신 초기에 하혈 이벤트를 겪었던라 건강하게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가 대견하고 고마웠습니다.


  새로운 가족에 대한 기다림은 가족들의 태몽으로도 나타났습니다. 시어머니께서 꾼 꿈은 비를 맞고 있는 두 마리 토끼 중 한 마리 토끼를 어머님이 품에 안아서 집으로 데리고 오는 꿈이었고, 친정엄마가 꾼 꿈은 용이 쫓아와서 도망을 치다가 어느 집 이층 다락에 숨었는데 동네 사람들이 입을 모아 용을 받아주라고 사정을 하여 엄마가 할 수 없이 문을 열고 용을 품어 주었다는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꾼 꿈은 맑고 투명한 시냇물에 알밤이 가득 떨어져 있는 것을 본 제가 그 알밤들이 너무 예쁘고 실하여 검은 비닐봉지에 한가득 주워 담아 집으로 돌아가는 꿈이었습니다.


아이랑 계곡에 갔다가 태몽에서 보았던 것과 같이 깨끗한 시냇물에 잔뜩 놓여진 알밤을 만났다-


  태몽을 내가 원하는 대로 디자인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문화에서는 태몽을 꾸면 우선 그 꿈이 딸 꿈인지 아들 꿈인지부터 분석하기에 바쁩니다. 아이에 대한 기대가 높은 임신 초기에 태몽이라는 것을 접하면서 우리는 어떤 모습의 아이가 우리에게 오게 될지 예측하고 기대합니다. 그 중심에는 성별에 대한 기대가 가장 크게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 아이가 자라서 자신의 출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만한 나이가 되었을 때, 태몽 이야기를 할 기회가 생기겠지요? 무려 태몽이 세 개나 됩니다! 태몽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는 어떤 감정을 느끼고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요? 아이가 어떠한 감정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현재로서는 단정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아이가 자신의 태몽이 딸 꿈이었는지 아들 꿈이었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이야기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저는 아이가 자신의 태몽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이 이 세상에 온 것이 여러 사람들로부터 기대와 환영받을만한 일이었음을 알게되고, 그로 인해 자신을 더욱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기를 바랍니다.                                              




▮ “아가야, 네가 세상에 나올 준비가 되었을 때 나오렴.”     


  출산 방법을 결정하는 것은 임신 말기의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자연분만과 제왕절개! 저의 경우는 자궁근종이 산도를 막고 있어 고민할 것도 없이 제왕절개를 해야 했습니다. 초조하게 진통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고, 의사선생님의 스케줄에 맞춰 수술 날짜와 수술 시간을 정하고 하루 전에 가벼운 마음으로 입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계획대로, 그리고 문제없이 예정대로 아이를 만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엄마와 의사 선생님이 임의로 정한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고, 자신의 시간에 맞춰 알람을 울렸습니다. ‘엄마, 저 지금 당장 바깥으로 나가야겠어요!’


  입원과 동시에 혈압이 상승하고 호흡곤란과 두통 등으로 너무 힘이 들어 간호사 선생님을 불렀습니다. 간호사 선생님들께서는 저의 몸 상태를 살피시더니 다음날 오전 9시로 예정되어 있었던 수술시간까지 산모가 버티지 못할것같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갑작스러운 수술 준비로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차가운 수술대 위에 누운 저는 마취 선생님께 ‘선생님, 무서워요.’라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사지가 덜덜덜 떨릴 정도였으니, 저는 너무 무서워서 제 생각밖에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힘들었던 순간에 ‘아가야, 네가 세상에 나올 준비가 다 되었나 보다. 그래, 어서 만나자!’라고 단단하게 말해 주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저도 엄마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다시 천운이 닿아 둘째를 낳게 된다면 그때는 그 말을 꼭 해주고 싶습니다. 엄마라는 존재 하나를 믿고 큰 위험을 감수하고 처음으로 세상에 나오는 아기에게, 엄마가 편안하고 따뜻한 말로 탄생을 허가하고 환영해 준다면 아이는 얼마나 큰 힘이 날까요?


  병아리가 세상에 알을 깨고 나오려고 부리로 달걀 껍데기를 톡톡 두드리면, 어미 닭은 병아리가 두드리는 그곳을 함께 톡톡 두드려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을 돕는다고 합니다. 아이가 세상에 나오는 순간 또한 아이가 정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니 출산을 앞둔 엄마들에게 조급해하지도 불안해하지도 말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산모의 일은 편안하게 하루와 하루를 보내는 것이고, 태아의 일은 엄마의 뱃속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임을 알고 충분히 성장한 다음, 세상에 나올 준비를 마치면 스스로 그 신호를 보내는 것입니다. 엄마가 할 일은 좋은 날, 좋은 시에 아이가 맞춰 태어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태어나기로 마음먹고 신호를 보내는 순간을 환영하며 적극적으로 만남을 돕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를 키워야 하는 이유 1]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교류분석 이론은 인간 발달단계를 총 아홉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하며, [아이를 키워야 하는 이유 1]에서는 그 중 인생초기 다섯 단계인 0단계~4단계를 다룹니다. 이 브런치북은 교류분석을 공부하는 어린이집 원장 엄마가 아이를 키우면서 경험한 것을 발달단계와 긍정적 지지어를 기준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긍정적 지지어란 발달 단계에 수행해야 할 발달 과업을 지원하는 메세지를 뜻합니다.


  다음주 이야기도 기대해 주세요!     

0단계 - 태내기 (되어가기) 2~3화
1단계 - 출생~6개월 (존재하기) 4화
2단계 - 6~18개월 (행동하기) 5화
3단계 - 18~36개월 (생각하기) 6~8화
4단계 - 3~6세 (정체성과 힘) 9~11화
5단계 - 6~12세 (구조화)
6단계 - 12~19세 (정체성과 성 정체성, 분리)
7단계 - 성인기 (상호의존)
8단계 - 노년기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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