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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랑말랑두부 Aug 07. 2024

환영한단다, 아가야-

출생에서부터 6개월



제2장 출생에서부터 6개월 :
‘내가 여기에 있는 것과 내 욕구를 알리고 보살펴 달라고 하는 것은
괜찮은 일일까?’         



  ‘이 시기의 영아는 생존이 목적입니다. 안전하고 위생적인 환경에서 잘 자고, 잘 먹고, 무엇보다도 주양육자의 따뜻한 살결을 느끼며 따뜻한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주양육자와의 애착형성을 통해 아이는 세상을 믿을만한 곳으로 인식하고 존재할 것을 결정하게 됩니다.'




▮ “우리는 네가 여기 있어서 참 좋아.”

▮ “너의 모습 그대로가 참 좋아.”     


  아이가 대학병원으로 전원 되기 직전에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제가 있는 병실로 아이를 데리고 와 한 번 안아보게 해 주셨습니다. 열 달 동안 뱃속에 품고 있던 아이를 처음으로 품에 안으며 "토순아, 엄마야~."하고 태명을 불러주었더니 아이는 제 목소리를 듣고 빵긋이 웃어 보였습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고? 아닐 거야!’하는 거부가 거세게 밀려왔습니다. 아이를 대학병원으로 보내고 나서야 같은 질병으로 어려움을 겪는 부모들이 소통하는 커뮤니티에 가입을 하였고, 여러 사례를 읽어가며 우리 아이의 상황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힘을 내서 앞으로 우리가 아이를 위해 해야 할 일들을 배우고 준비해 나갔습니다.


  매일 30분씩 허락되는 신생아 중환자실의 면회는 정말 설레고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15분을 면회하고 이어서 남편이 15분을 면회하면서, 낯선 곳에서 혼자 잘 이겨내고 있는 아이를 응원하고 격려했습니다. 어떤 날은 눈을 뜨고 있어 눈 맞춤도 하고 분유도 먹여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매일 면회를 가며 내일 또 오겠다고 아이에게 약속했습니다.


  언젠가 면회 가는 길에 제가 미주신경실신으로 쓰러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119를 불러 저를 가까운 응급실로 보내고 곧바로 대학병원으로 달려가 늦었지만 10분이라도 아기를 만나 아빠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부모인 우리가 매일 아이를 찾아가 격려해 준 덕분에 아이도 자신의 삶과 존재를 긍정적이고 힘 있게 결정할 수 있었을 거라 믿습니다.


  그렇게 니큐(신생아 중환자실)에서 17일을 보내고 아이를 집에 데리고 올 수 있었습니다. 하루에 30분만 허락되던 시간이 24시간으로 늘어났음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집에 와서부터는 병원에서 간호사 선생님들이 해주던 일들을 우리가 해야 했습니다. 대변 주머니의 가스를 수시로 빼주고, 이틀에 한 번씩 통목욕과 함께 대변 주머니를 새것으로 교체해 주는 일은 두렵고 까다로운 일이었지만 두 손 놓고 앉아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장루 교육을 받은 경험과 장루 선생님께서 주신 자료들을 꼼꼼하게 읽으며 날이 갈수록 유능하게 장루 관리를 해 나갔습니다. 우리는 시작부터 난도 높은 육아를 하며 무엇이든 용감하게 척척 해내는 책임감 있는 부모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모습이 어떻든 아이라는 존재는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웠습니다. 아이가 깨어 있을 때에는 부부가 번갈아가며 아이를 배 위에 올려두고 노래를 불러주었고, 아이가 잠이 들면 함께 낮잠을 자며 체력을 회복했습니다.


병원에서도 언제나 밝았던 우리 아기와 장루 교체에 쓰였던 물품들, 장루 주머니 입구를 옷 밖으로 빼놓기 위해 옆구리마다 구멍을 내어 입혔던 배냇슈트-


  대변 주머니를 잘 확인하고 관리하려다 보니 옷 속에 숨기고 있는 것보다 옷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배냇저고리의 허리춤을 자르고 꿰매어 자연스럽게 대변 주머니 입구를 옷 밖으로 내어주었습니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우리는 아이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고 예뻐해 주었습니다. 아이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있어 신이 나고,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소중했습니다.        




▮ “우리와 함께 있는 이곳은 안전하단다.”

▮ “느껴지는 대로 느껴도 괜찮아. 엄마와 아빠는 네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집으로 온 아이는 잘 먹고, 잘 자고, 24시간 엄마와 아빠의 목소리와 손길 속에 인생 초기 그 소중한 1년을 보냈습니다. 쥐 죽은 듯이 고요한 수면시간과 배고픔을 알리는 요란한 울음소리, 내가 아이를 위해 불러 주었던 노랫소리 만이 우리의 공간을 번갈아가며 채웠습니다. 잘 자고 일어난 아이가 배가 고파서 쩌렁쩌렁하게 울어대면 저는 "빱빠 주세요~ 빱빠 주세요~"하고 매번 똑같은 말로 노래를 부르며 아이를 안아주었고, 남편은 빛의 속도로 분유를 탔습니다. 그리고 분유를 먹일 때에는 항상 아이를 품에 안고 눈을 바라봐주었습니다. 그렇게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신호에 대한 반응으로 신속하게 젖병이 물리는 순간을 경험하며, '나에게는 내가 원할 때 원하는 만큼 먹을 충분한 자격과 능력이 있어!' 하며 자신에 대한 신뢰를 쌓아갔습니다.


  첫 수술의 회복에 이어 다음 과제는 100일이 되는 즈음 5kg의 체중을 만들어 두 번째 수술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목표를 위해 아이를 계획표대로 먹이고 재우지는 않았습니다. 수유와 수면의 기록을 노트에 빠짐없이 해나갔으나, 이 시기 신생아의 표준이 되는 ‘수유텀’과 ‘수면텀’에 우리 아이를 끼워 맞추려 애쓰지 않았습니다.


수유노트와 낮잠 자는 아기-


  온전히 아이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배가 고픈 울음과 기저귀를 갈아달라는 울음 그리고 심심하니 놀고 싶다는 울음소리 등을 구분해 낼 수 있었습니다. 아이의 울음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일관된 돌봄을 제공하면 아이는 자신이 보낸 신호와 부모의 반응을 연결 지을 수 있습니다. 출생 이후 부모와 아이의 직접적인 교류가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그러므로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거나 아기가 신호를 주기도 전에 젖을 주는 것은 발달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아이가 울지 않도록 케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아이는 의사소통과 관계형성에 대해 배울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사회-정서 발달에 있어 독립심과 질서감을 키우는 것이 자녀 양육에 매우 중요한 가치임에는 틀림없으나 아직은 아닙니다. 이 단계의 발달 과업은 단지 생존하는 것과 애착을 형성하고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규칙적으로 먹이고 재우겠다는 목표 때문에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는 않나요? 혹은 아이가 아직 신호를 보내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부모가 잘 짜놓은 스케줄에 따라 젖(분유)과 잠, 놀이를 시간에 맞춰 일관되게 제공하고 있지는 않나요? 아이가 원하는 것은 시간에 맞춰진 돌봄이 아니라, 신호를 보냈을 때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부모가 보내준 따뜻한 반응입니다. 그것을 통해 아이는 자신과 타인을 신뢰하는 것을 배워가며, 이 세상에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고 존재할 것을 결정합니다.


  육아 고수나 유명한 소아과 의사 선생님이 알려주는 육아법도 중요한 메시지를 주지만, 더 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은 우리 아이가 보내오는 신호입니다. 관찰에 기초를 두지 않은 돌봄은 아이가 중심이 되는 돌봄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육아는 잘 짜인 엄마놀이가 아닙니다. 다른 아이들과 우리 아이를 비교하지 말고 다른 부모들의 육아법과 우리의 육아법을 비교하지 마세요. 우리 아이를 잘 관찰하고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재빠르게 통역하는 기술을 갖추는데 집중해 보세요. 옷도 기성복보다는 맞춤복이 비싸듯, 육아 또한 기성육아보다 맞춤육아가 더욱 값지고 귀합니다.



    

 “너를 사랑해, 우리가 너를 잘 보살펴줄게.”     


  이 시기의 아기를 키우고 있다면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알려져 있는 개월에 따른 놀잇감을 충분하게 제공해 주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아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저 품에 안거나 배 위에 아이를 올려놓고 신체적인 접촉을 해주는 것과 부모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우리는 아이가 배밀이를 시작하기 전까지 품에 두고 노래 불러주기와 책 읽어주기에 집중하였습니다. 6개월의 전후로 아이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분명 부모의 품에 가만히 안겨있으려 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때가 되면 시키지 않아도 손과 발을 열심히 움직이고 물건을 잡고 쥐고 입에 가져가며 세상을 탐색하는 것에 집중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우리 부부는 ‘소리’와 ‘촉감’을 중심으로 아이와 놀아주었습니다. 아이에게 주로 ‘옹달샘’과 ‘숲 속 작은집 창가에’를 불러주었는데, 이 두곡이 특별히 발달에 좋아서 불러주었다기보다는 그냥 생각나는 동요가 이 두곡이었습니다. 아이에게 부모의 목소리를 많이 들려주어 안정감과 유대감을 길러주는 것이 이 시기 우리의 목표였는데, 끊임없이 혼잣말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아 노래를 불러주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그림책의 경우도 노랫말이 글인 책을 사주었고, 글이 짧고 운율이 있는 그림책을 골라 노래하듯이 읽어주었습니다. 아이가 이억배 선생님의 ‘잘잘잘 123’이라는 그림책을 특히 좋아했었는데, 우리가 아는 ‘잘잘잘’ 노랫말에 맞춰 한국적인 그림을 그려 넣은 정감 있는 그림책이었습니다.

  

엄마도 아이도 좋아했던 이억배 선생님의 글과 그림-


  항상 엄마 배 위에 누워 엄마와 아빠의 목소리를 들으며 놀던 아이가 바운서나 쿠션을 좋아할 리 없었습니다. 아이에게는 책이나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기계음보다 엄마와 아빠의 목소리가 반갑고 따뜻했습니다. 출생에서부터 6개월간 우리는 그저 아이의 배꼽시계와 하품시계, 그리고 놀이시계에 맞춰 대단할 것 없는 육아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육아는 템빨'이라는 말에 크게 공감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육아템들을 쓸모없다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희도 몸이 힘들고 손이 부족할 때 당연히 도움을 받았답니다.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여러 육아템들 중에 발달을 돕는데 가장 좋은 육아템은 부모의 몸과 목소리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아가야, 너만의 속도대로 성장해도 괜찮아.”


  목 가누기, 배밀이, 곤지곤지-죔죔 등을 빨리 행하지 못한다고 아이의 발달을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한 '우리 아이는 또래에 비해 발달이 빨라요.'라는 말로 육아 효능감을 자랑할 필요도 없습니다. 발달의 속도가 개별적으로 아주 큰 차이를 보이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는 속도보다 밀도가 중요합니다. 애착형성의 정도와 신뢰의 깊이가 발달 과업의 지표가 됩니다. 눈에 보이는 행동 수행의 결과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더 중요한 애착과 신뢰에 목표를 둬보세요.

  그저 "너만의 속도대로 성장해도 괜찮아.", "너를 사랑해, 우리가 너를 잘 보살펴줄게."와 같은 말로 세상에 온 아이를 환영하고 인정해 주세요. 특히 수많은 부모 중에 우리를 택하여 와 준 것에 기쁨과 감사를 표현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저와 저희 아이는 종종 이런 대화를 주고받습니다. "네가 엄마 아들이어서 좋아.", "엄마가 내 엄마라서 좋아." 하고요. 자신의 아이가 좋은 이유는 발달이 빨라서도, 인물이 반듯해서도 아닙니다. 그저 내 아이이기 때문에 사랑스럽고 소중합니다. 행동하는 것이 과업이 되는 발달단계는 이 시기를 지나 6개월 전후로 곧 시작될 것입니다. '천천히 컸으면 좋겠다.'라는 바람과 '빨리 컸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은 아이의 발달을 거스르는 메시지입니다. 그러한 메시지가 자신의 속도대로 성장하고자 온 힘을 다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전해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  부모의 재성장을 위한 조언


  신생아를 돌보는 자기 자신 또한 마치 신생아와 같이 돌봐줄 누군가를 찾으세요. 그리고 적극적으로 보살핌을 요청하세요! 친정 부모님이 될 수도 있고, 시댁 부모님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신생아를 돌보는 일은 아주 민감하고 힘이 듭니다. 산후우울증은 산모에게 관심과 지원을 충분히 모으게 하는 순기능도 있다고 합니다.

  적극적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으세요. 아이가 엄마와 정서적으로 애착을 느끼고, 타인과 자신을 신뢰하는 것을 배워야 하는 시기에 아이의 부모도 같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더불어 산모의 몸과 마음이 원하는 욕구를 잘 알아차리고, 원하는 욕구를 충족시킬 방법도 찾으세요. 일벌레였던 저는 제 자신을 돌보는 것에 소홀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출산하고 돌보는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처음으로 일도 쉬어보고 나 자신에 대한 인식도 넓혀갔습니다.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고 엄마의 양수 속에 안전하게 존재하던 나를 떠올려 보기도 하고, 괄사와 오일을 이용하여 내 몸을 아기처럼 마사지해주기도 했습니다. 아이에게 들려주는 자장가는 내 안에서 메아리가 되어 나의 내면아이에게 들려주는 자장가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들여다보면서 나도 원래는 이렇게 존재만으로도 소중한 사람이었는데, 나 자신이 나를 깎아내리고 몰아세우며 살았구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욕구가 타인의 욕구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아이를 키우면서 꼭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나는 나의 존재 자체를 충분히 인정하는, 나 자신에게 좋은 사람이었는지를요. 부모로서 희생해야 하는 것들만 생각하지 말고 존재 자체로도 귀하고 사랑스러운 아기를 보며 나 자신도 그러한 존재임을 인식하세요. 그리고 앞으로 가족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사랑이 충만한 삶을 살아갈 것을 결심해 보기를 바랍니다. 



  [아이를 키워야 하는 이유 1]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교류분석 이론은 인간 발달단계를 총 아홉 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하며, [아이를 키워야 하는 이유 1]에서는 그중 인생초기 다섯 단계인 0단계~4단계를 다룹니다. 이 브런치북은 교류분석을 공부하는 어린이집 원장 엄마가 아이를 키우면서 경험한 것을 발달단계와 긍정적 지지어를 기준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긍정적 지지어란 발달 단계에 수행해야 할 발달 과업을 지원하는 메시지를 뜻합니다.


  다음 주 이야기도 기대해 주세요!     

0단계 - 태내기 (되어가기) 2~3화
1단계 - 출생~6개월 (존재하기) 4화
2단계 - 6~18개월 (행동하기) 5화
3단계 - 18~36개월 (생각하기) 6~8화
4단계 - 3~6세 (정체성과 힘) 9~11화
5단계 - 6~12세 (구조화)
6단계 - 12~19세 (정체성과 성 정체성, 분리)
7단계 - 성인기 (상호의존)
8단계 - 노년기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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