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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 사파리(Bali Safari) 마린 파크

우붓을 넘어서

by 위혜정

10년 전, 남편과 발리에 왔을 때는 발리의 중부와 북부를 베이스로 산악 스포츠, 낀따마니 화산, 우붓, 브두굴 보태니컬 가든 등 주로 파릇한 자연을 발로 찾아다니는 여행이었다. 하지만 어린 아들에게 에너지 소모가 큰 도보 여행은 무리라는 판단 하에 이번에는 남부 해안을 베이스로 서핑, 수영, 스노클링 등 해양 스포츠 위주의 활동에 주력했다. 우붓에 가보고 싶은 마음을 접은 것도 그 때문이다. 다음에 다시 오면 숙소 자체를 우붓 주위로 잡고 중북부 투어를 할 계획을 막연하게 머리에 그다.


장거리 택시 여행은 엄두도 내지 못하여 우붓 근처는 선택지에서 아예 제외시켰더니 아들이 사파리를 가보고 싶다는 요청을 한다. 발리 사파리 마린 파크는 인도네시아 최대의 사파리 테마 파크로 꼭 한번 가보라는 말을 많이 들었던 참이었다. 사실, 나이트 사파리에 가보고 싶었지만 숙박지가 우붓이 아닌 한, 밤중에 택시를 타고 다시 호텔로 돌아오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남편이 반대한다. 그래서 야간 여행을 뒤로하고 아침 일찍 출발하여 오픈런으로 발리 사파리에 입성할 계획을 세웠다. 오전 7시 반에 출발하니 교통체증이 없어서 남부에서 평소 2시간도 훌쩍 넘게 걸릴 수 있는 시간이 1시간이면 충분하다. 요긴한 여행 팁이라면 어딜 가든 일찍 출발하는 것이 상책이다.

9시 개장까지도 시간이 남아서 사진을 찍으며 여유롭게 사파리를 즐길 채비를 한다. 초록이 우거진 발리 사파리 전경은 동남아의 청정 자연을 마음껏 뽐내고 있다. 현지 여행사를 통해 티켓을 예매하고 갔는데 오히려 현장 구매 티켓이 살짝 더 저렴하다. 다행히 여행사의 착오로 티켓 예매가 취소되어서 현장에서 구매하게 되었다.

동물들을 만나러 사파리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대형 버스를 기다렸다가 타면 된다. 안으로 들어가면 오전부터 오후까지 시간대 별로 동물들의 무대 공연들을 즐길 수 있다.

공연 스케줄

전 세계 관광객들에 대한 배려로 진행자는 마이크를 들고 영어로 의사전달을 한다. 각양각색의 새들, 오랑우탄을 비롯한 포유류들의 귀여운 몸짓을 조련사들과 하나가 되어 보여준다. 오랑우탄이 인도네시아어라는 것을 설명을 들으며 알았다. 오랑은 '사람' 우탄은 '숲'이란 뜻으로 숲의 사람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코끼리와 호랑이는 각각 단독 무대로 오전 오후 두 차례에 걸쳐 공연이 진행되는데 아들의 선택은 호랑이다.

사파리의 묘미는 단연 자연 속에 뛰노는 동물들을 코앞에서 만나는 것이다. 사파리 프라이빗 투어를 신청해서 직접 야생에서 노닐고 있는 초식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는 경험을 했다. 초식 동물이라도 성질과 기질이 다양하다. 가만히 기다리지 못하고 목을 차 안으로 쑥 들이미는 성질 급한 타조, 큰 덩치로 조그마한 당근이 성에 차지 않아 빠르게 입에 먹이를 던져 넣고 코를 다시 내미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던 코끼리, 생각보다 구강 청결과 전혀 멀어 보이는 얼룩말 등 몰려드는 동물들을 감당하느라 가득 찬 미니 당근 바구니가 금방 바닥이 났다. 운전기사가 친절하게 동물들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을 해준다. 투어가 끝나고는 먼저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지프차 앞에서 사진까지 찍어주신다.




원 없이 동물 구경을 한참 한 후 마린 파크 쪽으로 방향을 옮겼다. 수영장이 있다는 사전 정보가 있었기에 아들에겐 그 전날 호텔에서 실컷 수영을 할 수 있게 해 주고 사파리에서는 마린파크를 건너뛰자고 말을 해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물을 보니 또 들어가고 싶어 한다. 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비를 피하며 다음번에 다시 왔을 때 수영을 할 수 있도록 하자며 설득을 했다. 그런데 웬걸, 1시간이 넘도록 비가 그치지 않는다. 수영을 준비를 해왔으면 비가 내려도 상관없이 활동을 했을 텐데 살짝 아쉽고 미안하다.


발리의 우기에 갑작스러운 비를 만날 경우를 대비해서 우비와 우산을 여행 물품으로 챙겨 오긴 했지만 그동안 경험한 비는 스콜처럼 짤막하게 내리고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우기이지만 매일 비가 오는 것도 아니었다. 가져와서 별로 유용하게 쓰지 못한 두 아이템이었는데 이때만큼은 그렇게 절실했다. 사람들은 비를 맞으며 여기저기 다닌다. 하지만 우리는 여분의 옷을 가져오지 않아서 1시간이 넘도록 그치지 않는 비를 보며 시간을 아까운 보냈다. 여행 팁! 발리의 우기에 우산과 우비는 언제 어떻게 비를 막아줄지 모르니 꼭 챙겨 다니자!


밤늦은 비행이라 마지막날의 발리 여행은 호텔로 돌아가야 한다는 크나큰 미션이 남아있다. 수영을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여독을 풀고 비행기에 몸을 싣기 위해 5시에 호텔 마사지를 예약해 둔 터라 택시 기사는 고속도로 통행료까지 자비로 내고서 빠르게 돌아갈 수 있도록 배려해 준다.


한국행 비행시간이 워낙 늦다 보니, 호텔 체크 아웃을 하고 짐을 챙겨서 마지막 당일 여행을 하는 투어 패키지도 수두룩하다. 틈새시장을 노리는 여행사들의 비상한 전략에 감탄을 했다. 아들이 발리 사파리를 원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마지막 날도 투어 패키지의 수혜를 받았을 뻔했다. 어쨌건 아들은 난생처음 마사지를 받아 보더니 1시간이 이렇게 금방 갈 줄 몰랐다며 돌고래 소리를 내는 만족감을 보였다.

그렇게 마사지 안 받겠다고 고집을 피우더니, 발리에서 다시 한번 우리 둘의 구호를 외쳤다.


"엄마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


이렇게 아들과 단둘이 발리 여행의 마지막 날을 행복하게 접을 수 있었다. 감사 또 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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