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모임에서 이런 질문이 툭 던져졌습니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궁금증, 그저 좋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서로가 서로에게'저도 궁금해요.'라는 마음들을 나누었습니다.직접 경험이 없으니 그저 상상할 뿐입니다. 머릿속에 굴려보는 뭔가 크게 이루어낸 부의 결과는 낭만적인 핑크 빛으로 다가옵니다.
꼭물질적 성공만이 아니라 인생에서 여러 모양의 성공을 일궈낸 사람들에 대한 존경과 우러름도포개어집니다.'그들의 삶은 어떨까?남들이 가져보지 못한 부, 명예, 지위, 권력이 주는 충만감에 벅차오르지 않을까?' 요리조리 물음을 따라가며 끝이 해피 엔딩이길 기대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특히, 윤리적인 문제로 넘어지는 사례들이 많죠. 안 그럴 것 같은데, 안 그래야 하는데. 내심저 역시 그 자리에 가보고 싶은 마음에 끝없는행복만이 펼쳐지길 바라는 사심이 실린 건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도대체 왜 넘어지는 걸까?', '공통적인 이유가 있는 것일까?' 하는호기심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이 궁금증은 시대를 거슬러 떠오르는 질문인 모양입니다.'왜 성공한 리더들은 자주 윤리적인 문제에 넘어지는가?'에 대한 주제로 연구가 이루어졌다고 하는 것을 보면말이죠. 1993년 발표된 논문의 결과는다음과 같습니다.
막강한 영향력을 갖게 된 리더들은 착각을 하게 된다. 일종의 자기도취다. 성공으로 인한 자만으로 주어진 상황을 모두 통제할 수 있다는 과도한 자신감에 빠진다. 현실적 판단이 흐려지다 보면 윤리적 실패를 겪게 되는데 그 와중에도 자신에게만은 윤리적인 기준이 적용되지 않으리라는 몹쓸 특권의식을 갖는다.
권력을 거머쥔 사회 지도층의 윤리적 타락 문제는 현실 감각을 상실한 '몹쓸 특권의식'에서 비롯된다고합니다. 바로 <밧세바 신드롬>입니다.밧세바는 성경에 등장하는 여인으로솔로몬의 어머니이자 다윗왕의 아내였습니다. 그녀의 이름이 부정 함축용어에 사용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윗왕이 저지른 간음죄와 살인죄라는 윤리적 타락의 시발점이 바로 이 여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각종 전쟁에서 승리를 일구어 낸 다윗이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승승장구하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모압과 전쟁을 치르고 있던 때, 다윗은 한가로이 왕궁 지붕에서 산책하고 있었어요. 그때한 여인의 목욕 장면을목격합니다.전쟁에 나가있던우리야 장군의 아내 밧세바였죠.다윗은 그녀를 취해야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힙니다. 결국여인을 왕궁으로 들여 동침하게 되고 그녀는 임신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간음죄를 은폐하기 위해 다윗은 전쟁 중이던 우리야 장군을 소환하여 아내와의 침상자리를 마련해 줍니다.
장군은전시 중인 점을 감안하여 이를 거부하지요.애국적 충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다윗은군대대장 요압에게 서신을 보내어 그를최전선으로 보내어 죽게 하라는 은밀한 지시를 내리고 맙니다. 살인죄를 저지른 것이죠.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존경받던 훌륭한 통치자 다윗은 권력의 최정점에서 도덕적으로 무너져 내립니다. 산책길에 스쳐 지나가던 한 순간의 장면을 끊어내지 못해서였습니다. 결국, 그는윤리적 타락의죗값을치르게 됩니다.밧세바와의 동침으로 낳은 아이는 심하게 앓다 죽었고, 말년에는 아들 간의 권력 다툼, 왕자의 난으로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권력으로 상황을 통제하고 죄를 덮을 수 있다는 착각의 결과였던 것이지요.
성경에 또 다른 유사한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삼손인데요. 그는 사자의 입을 찢고 블레셋 1,000명을 쳐 죽이며 성곽의 문설주를 뽑아낼 만큼 초인적인 힘을 가진사사(이스라엘 왕이 세워지기 전의 리더)였습니다.블레셋 사람들은 괴력의 근원을 알아내어 그를 제거하고자 합니다. 마침삼손은 블레셋 여인 들릴라에게 빠져있었어요.그녀는 블레셋 사람들에게서 청탁을 받고 삼손을 여러 차례 유혹합니다.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며 어떻게 하면 능히 당신을 결박하여 굴복시킬 수 있나요?"(사 16:6)
삼손은 쉽게 진실을 말하지 않습니다.단, 거짓으로 자신의 약점을 흘릴 때마다매복해 있던 블레셋 사람들의 공격을 받아는 경험을해야 했죠.자신을 배신한 여인 덕에 두 차례나위기 상황을 넘긴 것입니다. 그런데 바보같이 다시 그녀의 품 안에서 세 번째 유혹에서 넘어가고 맙니다.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않았다.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진다."(사 16:17)
삼손과 데릴라, 루벤스
매복해 있던 블레셋 사람들이 그의 머리를 밀어버리자 강력했던 삼손의 힘이 단번에 빠져나갑니다. 결국, 그는 눈이 뽑히고 감옥에 갇히고 맙니다. 어이없고 힘 빠지는 결말이 아닐 수 없죠.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며 호령했던 사사가 이방 여인의 교태라는 올무에 걸려 생을 마감하다니요. 일평생 누구에게 져본 적이 없던 삼손은 과도한 자신감으로 '방심'을 허용했습니다.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갈지도 모를 여인의 품에서, '감히 나를?' 하며 자아도취에 빠져 경계를 허물었던 것이죠. 누구도 자신을 이길 수 없다는 착각의 틈을 타고 처참한 결과가 스며들었습니다.
우리는 가져본 적이 없는 것에 대해서 부풀려진 환상을 품곤 합니다.꼭 돈이 아니더라도 사회적 지위, 명예등이 내손에 쥐어진 것이 아니면 마냥 부러워지죠. 성공을 움켜쥐기 위해 열망을 태우며 자신을 갈아엎는 희생을 감수할 때도 있습니다. 물론, '노력'은재능에 비견될 만큼 중요한 인생 가치예요.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꾸준함과 집중력이필수입니다.단, 목표를 달성한 후그간의 고된 애씀으로 인해 자칫 왜곡된 향유로 이어질 수 있는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집착과 탐닉, 과도한 몰입과 도취가 그것입니다.
팽창된 자아와 영웅심리로질주하고 있다면 브레이크를 걸어야 할 때입니다. 인생의 성공 안에는 언제나 실패의 요인이 잠복해 있기 때문입니다. 매운 음식을 즐기면 위암 발병률이 높아질 수 있고, 담배를 피우면폐암에 노출될 리스크가 상승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당장은 수면에 떠오르지 않아도 깊이 묻혀있는 몹쓸 무언가를 알아채는 것이 바로삶의 지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있다가도 없어질 것들로 성공을 정의하는세태에 대해서도돌아볼 일입니다. 진정한 행복을 내 안에서 찾지 않고 밖에서만 찾다 보면주머니가 채워져도 정신이 텅 빈 사람이 될 수 있거든요.바깥에서 주어지는 것들로마음을 채우는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입니다. 하나를 얻으면 자꾸 다른 것을 다시찾게됩니다.새로운 것을 계속갈망하다 보면지금의생이 허비될 수 있습니다.하나씩도장 찍듯'찾고','이루는'결과의 개수를 세지 말고 점점이 연결된 '과정'을 아껴주어야 합니다.그럴 때 결과에 따라 일희일비하지 않게 됩니다. 이미 흡족함으로 가득하기 때문에마음은 언제나 '맑음' 상태이거든요.
내면이 충만하면자연스레 여기저기벌어진 생의틈새도 메워집니다. 구멍이 있어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넉넉함이 생기는 것일지도 모릅니다.이런 경험은 많이 해보셨을 거예요. 내 마음이 좋으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용납되는 여유로움이랄까요. 주변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이고도 할 수도 있습니다. 기준점이 바깥이 아나라 안쪽에 있기에삶의닻이 묵직하게 내려집니다. 가볍지 않고,안정감 있는 편안함, 여기에 뭔지 모를 당당함이풍겨지는 인생, 참 매력적입니다. 한 순간에 가질 수 없는 내공이기도 하지요.외부의 것으로 정의 내리지 않고 삶의 향기가 자연스레 스며 나오는 근사함, 바로 '인생의 품격'입니다. 치렁치렁 무언가를 걸치지 않아도 품격 있는 인생이 된다면 그야 말로진정한 성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