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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혜정 Oct 04. 2024

부자는 천국에 못 가나요?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뜬금없이 동물이 바늘귀를 통과하다니요. 많고 많은 동물들 중에 왜 하필 낙타가, 그리고 많고 많은 물건 중에 왜 하필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려고 애쓰는 건지, 이 비유는 어떤 맥락에서 탄생된 말일까요?

<이미지 출처: Walking with the bible>

 마태복음 19장에서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묻습니다.


 "선생님, 제가 무슨 일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살인하지 않기, 간음하지 않기, 도둑질하지 않기, 거짓증언하지 않기, 부모를 공경하기, 이웃을 사랑하기' 등의 모든 계명들을 완벽하게 지키는 사람이었습니다(아마 스스로 그렇다고 착각을 하고 있었겠지요). 그런  예수님 하셨습니다.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가진 것이 많았던 청년은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모든 소유를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명령에 선뜻 "네!" 하기 힘들었던 것이죠. 고민과 근심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재산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마태복음에서 이 일화를 기록고 있어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일'과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일'을 비교하는 대목이 등장 곳이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마 19:23-24)


 바느질을 하려면 실을 바늘귀(the eye of the needle)에 통과시키는 작업 선행됩니다. 실을 바늘구멍에 넣는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지요. 실의 최대치인 밧줄을 통과시킨다는 발상이 여기서 나오는데요, 두꺼운 밧줄을 바늘구멍에 꽂아 넣는 것은 운 과업이 될 것입니다.  아랍어로 '줄'을 의미하는 'gamta' '낙타'를 뜻하는 'gamla'의 비슷한 스펠링이 이게 되낙타 바늘귀를 통과하는 말이 나왔는 설이 있습니다. 어 심오한 맥락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번역가의 오역으로 이 어구가 탄생되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것이 억측이라는 주장도 있어요. 단순히 '큰' 낙타 '작은' 바늘구멍을 대비시켜 충격적인 각인 효과를 낳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강렬하게 전달해 주는 어구를 만들기 위한 장치랄까요. 어찌 되었건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이 더 어렵다는 메시지가 선명한 이미지로 전달됩니다.


 자, 여기서 궁금증, 내지는 회의감이 생나지 않으시나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꼭 필요한 돈의 유무가 천국문을 통과할 수 있는 조건이라니.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내어 부를 축적했을 뿐인데 맞이하는 결과가 굳게 닫힌 천국문이 주머니가 두둑한 사람들에겐 여간 낭패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부자는 천국에 갈 수 없는 것일까요? 과연 성경에 천국으로 간 부자에 대한 기록은 없을까요?

성경에는 당대 기준으로 재력가에 꼽힐 만한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일단 아브라함부터 부자였으며, 야곱, 이삭도 부자였다. 욥도 많은 가축을 거느린 큰 부자였고, 요셉은 한 술 더 떠서 부자일 뿐만 아니라 이집트의 총리를 역임한 고관대작이기까지 했다. 예수의 애제자이자 천국 열쇠를 받았다는 베드로의 경우에도 갈릴리 호수의 어부 출신으로, 당시에 자기 소유의 배가 있었다. 유대인들은 당시나 지금이나 구약에서 허락한 음식인 코셔 푸드를 먹었는데 '물에서 나는, 비늘이 있는 생물'인 물고기는 이들에게 필수적인 음식이었고, 고기를 잡아 파는 베드로는 가난한 사람이라기보다는 부자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또한 예수에게 무덤을 드린 아리마태아의 성 요셉도 부자였다.

                                                      - 출처: 나무 위키 -


 하나님을 사랑했던 아브라함, 야곱, 이삭, 욥, 요셉, 베드로 등 쟁쟁한 인물들 모두 부자들이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 왕들도 마찬가지였지요. 이들은 하나님께서 천국까지 인도한 축복의 인물들이기도 합니다. 부를 누리면서도 동시에 천국 문을 열고 간 사람들이 성경에 분명히 존재합니다. 부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님에 휴~하고 가슴을 쓸어내리지만 여전히 생각해 볼거리가 남습니다. 천국 문을 통과하는 부자가 존재하긴 하지만 대다수가 그런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백만장자 빌 게이츠의 롤모델이자 워런 버핏이 영웅으로 생각하는 공통 인물이 있는데요, 바로 세계 최대 면세점 사업 DFS (Duty Free Shoppers) 그룹의 창립자 척 피니였습니다. 척 피니는 "사는 동안 나누는 것보다 더 개인적인 보상을 가져다주며 적절하게 부를 사용하는 방법은 생각할 수 없다.”라고 말하며 평생 자신의 모토인 ‘사는 동안 기부하기’(Giving While Living)'를 실천하였습니다. 만 원짜리 시계를 차고 다녔고 비행기는 항상 이코노미 클래스를 이용하였으며, 자신 소유의 집이나 자동차도 없이 살았다고 하지요. 죽을 때도 전 재산 80억 원을 사회에 환원하는 기부의 달인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수많은 어록들 역시 마음의 큰 울림을 줍니다.


“돈은 매력적이지만 그 누구도 한꺼번에 두 켤레의 신발을 신을 수는 없다”


"부유한 죽음은 불명예스럽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


"돈 벌기 위해 일하지 않았다. 부는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따라온 것일 뿐이다."


 성경에서도 부를 나눌 때 어떻게 되는지, 나눔의 중요성에 대해서 언급하구절이 있습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잠 11:24-26)


 재물을 가진 자들 삶의 선택지 다양합니다. 크게 보면, 소유를 누리며 나에게 집중되는 삶, 내가 누리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는 삶인데요, 이는 이미 익숙한 삶을 지속할지, 아니면 새로운 삶을 살지의 문제와도 연결됩니다. 예수님께 천국의 비밀 열쇠를 받고 싶었던 부자 청년 누리고 있던 부자의 삶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새로운 인생을 선뜻 선택하지 못합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큰 고민에 빠지게  지점일 테지요. 부의 출처를 분명한 자기 운명과 운, 혹은 성실로 귀인하게 되면 내 것을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아깝겠습니까? 하지만 생각의 각도를 살짝만 틀 좀 더  마음으로 접근해 볼 수 있습니다. 


 '내 것을 버린다'가 아니라 '남들과 나눈다'는 관점을 갖는 것이지요. 나눈 것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하늘 창고에 쌓인다고 합니다. 나의 것을 누군가에게 나누어 줄 때 삶의 의미와 행복감이 충천되는 경험을 누구나 해보셨을 거예요. 나눔 확장임을 경험하  쥐고 있는 것을 펼쳐놓을 수 있는 넉넉한 마음 생겨납니다. 소소한 나눔의 실천이 축적되면 추후에 진짜 부자가 되었을 때 그 힘을 알기에 지속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차피 죽을 때 부를 이고 지고 가져갈 수 없으니까요.


 삶의 끝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지로 평가되지 않습니다. 판단 기준은 이것이라고 해요. '내가 배고플 때 당신은 나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헐벗었을 때 입혀 주었고 집이 없을 때 받아주었습니다.' 테레사 수녀님의 말씀이지요. 나의 기쁨이 아니라 다른 사람기쁨을 위해 돕는 인생 잘 살아낸 삶이라고 합니다. 결국 일평생 나에게만 매몰된 사랑을 얼마나 바깥으로 향해 남겼느냐의 문제입니다. 타인에게 사랑을 보내는 부자바로 천국행 티켓을 얻는 아입니. 부 위에 사랑을 얹으면 됩니다. 를 축척한 후에 무게 중심이 흔들리지 않고 바로 실천할 수 있도록 먼저 사랑부자가 되어야겠습니다. 낭만적인 사랑연습, 오늘부터 함께 해보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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