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09_Casa Prieto Lopez (Pedregal)
위치 : 멕시코시티 (Av. de Las Fuentes 180, Jardines del Pedregal, Álvaro Obregón, 01900, CDMX)
설계 : Luis Barragan
준공 : 1950 (설계기간 : 1947-1948)
연면적 : 1,117 sqm
용도 : 단독주택
멕시코에서 루이스 바라간이 설계한 세 번째 답사지인 프리에토 로페즈 주택을 다녀왔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건물은 아니었고, 회사에서 루이스 바라간에 관한 자료를 정리하다가 알게 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바라간 건물의 색감은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바라간 주택이나 길라르디 주택은 가장 핵심적인 공간이 주로 화려한 색감의 벽과 빛이 만나 신성한 장소로 느껴지는 내부공간이었다. 하지만 프리에토 로페즈 주택의 핵심적인 공간은 외부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과연 그 차이는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이곳을 답사하는 내내 이어졌던 물음이었다.
프리에토 로페즈 주택은 페드리갈 주택이라고도 불리는데, 페드리갈 단지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페드리갈은 멕시코시티 남서부에 위치한 고급 주택단지이다. 교통편이 적어 우남대학교에서 우버를 타고 도착을 했다. 단독주택 단지에도 여러 유형이 있지만, 이곳은 고급 주택단지답게 높은 담장이 도로를 감싸고 있어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나라 판교주택단지를 생각하면 비슷할 것 같았다. (물론 판교는 지구단위계획에서 담장을 설치할 수 없도록 했지만, 건물을 도로에 최대한 붙여지음으로써 외벽이 담장역할을 하고 있다)
막상 도착해 보니 관람객 20명이 한꺼번에 건물 답사를 하는 것이었다. 대표작으로 알려지지 않은 이 건물까지 세계 각지에서 찾아오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으며, 바라간의 저력을 다시 한번 느꼈다. 예약시간이 되어 가이드 한 분이 우리를 통솔하여 건물 내부로 진입하였다. 가장 먼저 가이드가 대문을 열어주었는데, 어두운 돌담 뒤로 연한 핑크빛 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나 바라간 주택, 길라르디 주택에서 보았던 색감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벽이 나타났다.
대문을 지나자 전체가 옅은 핑크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이 나타났다. 이곳은 주차장으로 쓰이는 공간이자 앞마당인데 외부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외부에는 아주 짙은 돌담이 단단하고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면, 내부로 들어오자마자 아주 감각적이고 따뜻한 공간의 주택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짙은 돌담, 바닥의 어두운 돌 마감과 대비된 핑크 벽에 목조문과 작은 항아리가 대비되어 인상적인 풍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 대비는 주택 내내 반복되게 된다) 강렬한 핑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바닥으로 인해 도드라져 보였다. 이렇게 감각적이고 멋진 외부 전이공간을 본 적이 없었기에 정말 감탄을 하며 감상하였다.
그다음으로 목조문을 지나 건물 내부로 진입하였다. 내부 전면은 벽으로 막혀있고 좌우로 연결되는 현관복도가 나왔다. 이곳에서는 각자의 목적에 맞게 방, 거실, 부엌으로 각각 이어져있었다. 인상 깊은 점은 외부와 연속된 바닥 돌마감으로 인해 현관복도가 내부공간이지만 동시에 외부공간으로 느껴졌다. 소우마야 뮤지엄에서부터 강하게 느껴졌지만, 벽과 지붕만큼이나 바닥은 공간의 영역을 구획하는 중요한 건축요소이다. 이를 통해 바라간은 아직 특정 실에 진입하기 전인 현관복도를 외부와 내부의 경계공간으로 정의한 것 같았다.
그리고 좌측 계단을 올라 도착한 거실 바닥은 역시나 목재로 마감이 되어있었고, 이제야 주택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옅은 베이지색 소파와 목가구의 조화로움은 주택의 따뜻함을 느끼게 해 주었고, 이외의 가구, 조각품과 꽃은 공간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 거실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벽은 옅은 회색을 띠며 철저하게 배경으로 존재하고 있었고, 천장의 목재 빔은 그 자체로 마감재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리고 측면과 후면의 커다란 창으로 인해 천장조명 없이도 꽤 밝은 공간이었다. 돌아와서 도면을 확인해 보니 후면의 거대한 창은 남쪽으로 열려있었기에 가능했던 공간구성이었다.
이후 우측 편 벽을 지나니 식당이 나왔다. 이 칸은 창과 더 가까워서인지 거실보다 밝았다. 햇빛만으로도 공간이 꽤 밝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다. 루이스 바라간처럼 천장 조명을 싫어하는 내가 깊이 새겨야 하는 지점인 것 같다. 또한 옅은 회색 벽과 목재 가구로만 이루어진 이 방에 빛이 더해지고, 멕시코의 화려한 음식이 곁들여지면 더욱 근사한 공간으로 변할 것을 예상하니 참 아름다워 보였다.
그리고 다시 한 칸을 넘어가니 작은 식당이 다시 나왔다. 이전 거실과 식당보다 천장고가 낮아지면서 공간적으로 위계가 낮고 소박한 공간으로 느껴졌다. 도면을 찾아보니 아침 식당(Breakfast room)이라고 부르는 공간이었고, 간단하게 아침이나 디저트를 먹고 대화를 나누는 공간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거실, 식당, 아침식당을 돌아보고 활짝 열린 뒷마당으로 나갔다. 뒷마당은 정원이자, 휴식공간이자 내부에서는 멋진 풍경을 제공하는 복합적인 기능을 가진 공간이었다. 뒷마당에서 프리에토 로페즈 주택을 살펴보니 박스형태의 건물의 규모와 층고 조절만을 통해 아주 풍부한 공간을 만들어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가끔씩 도면을 그리다 보면 사각형 공간이 너무 단조롭다고 느껴지며 유기적인 형태나 공간을 구성하고자 하는 욕심이 생길 때가 있다. 하지만 단면이나 마감, 창 같은 요소를 통해 공간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이곳에서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잠시 주택을 살펴보다가 문득 이 볼륨의 기능이 모두 공용공간(LDK)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대문과 현관을 지나 뒷마당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공간은 모두 공용공간인 것이다. 바라간은 이 주택을 설계하며 공적인 공간과 사적인 공간을 완전히 다른 볼륨으로 구성한 것이었다. 그리고 각 볼륨은 각각의 정원(하나는 뒷마당으로, 다른 하는 정원으로 부름)을 가지고 있으며 그 풍경이 전혀 달랐다.
뒷마당에서 건물을 감상하고 좌측 편에 있는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그리고 이 주택의 가장 핵심적인 공간이 나타났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지형에 나무를 심어 처음 보는 풍경의 정원이 형성되어 있었다. 아주 생경한 풍경에 매료되어 꽤 오랜 시간 동안 정원을 감상하였다. 입구부터 뒷마당이 펼쳐진 부분까지 무척 모던한 건축이 나타났다면, 이곳부터는 건축과 조경이 밀접하게 상호작용하는 멕시코다운 공간이 펼쳐졌다. 건축의 색감은 강렬하지 않지만 화강암과 대비되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고, 조경은 그 자체로 깊은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특히 명도가 높은 핑크는 짙은 화강석과 뚜렷하게 대비되지만, 동시에 채도를 낮게 하여 건축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관계를 만들어냈다. 주택의 색상이 화강암과 명도와 채도 모두 반대되었다면 지금과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며, 바라간이 색상을 얼마나 섬세하게 선택하였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대비를 통해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말은 일견 모순되는 것처럼 들리지만, 이 풍경 앞에서는 대비와 조화가 한 단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정원을 감상하고 새로운 볼륨의 내부 공간을 감상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벽과 화강암이 만나는 부분이다. 바라간은 건축계획을 마치고 시공을 하며 새롭게 나타나는 화강암의 크기에 따라 계속해서 계획을 변경했을 것이다. 이런 멋진 화강암을 어디까지 보존하고, 어디까지 잘라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 자체로 디자인 감각이라 할 수 있다. 바라간은 꼭 필요한 부분에 화강암을 내부와 외부에 남겨놓으면서 어디서든 이 대지를 느낄 수 있도록 계획하였다. 그리고 이를 유지하며 시공을 해낸 시공사의 노도에도 깊은 감동을 느꼈다.
그렇게 내부로 진입하니 다시 거실이 나왔다. 이 거실은 거주자들이 방에서 나와 휴식을 취할 때 사용하는 공간으로 예상할 수 있다. 처음 진입하여 마주하는 거실과는 또 다른, 소박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어떠한 장식도 필요 없이, 화강암 그 자체로 인하여 독특한 공간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벽은 옅은 회색으로 철저히 배경이 되었지만, 처음으로 화강암과 맞닿아있는 내벽에 외벽과 같은 옅은 핑크색이 칠해져 있었다. 이를 통해 바라간이 화강암(자연)과 건축의 관계에 얼마나 주안점을 두고설계하였는지 알 수 있었다.
이제 거실을 지나 복도를 통해 개인실이 있는 공간으로 이동하였다. 어두운 복도 끝에 빛이 새어 들어오는 곳으로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바라간의 위대한 점은 이곳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단순하게 기능적인 공간으로 여기는 복도에 바라간은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길라르디 주택에서도, 프리에토 로페즈 주택에서도 복도는 기능적인 역할을 넘어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하는 멋진 회랑 같은 역할을 하였다. 풍경 하나 없이 빛과 색감만으로도 복도를 풍부한 감각을 활성화시키는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점이 놀라웠다. 그렇게 도착한 개인실은 수영장이 있는 뒷마당으로 열려있었다. 방 자체는 소박했지만 방까지 오며 느꼈던 다양한 감각으로 방까지 아름답게 보였다.
현재도 집에는 가족이 살고 있었기에 한 개의 방만 돌아볼 수 있었다. 방 자체는 크게 특별하지 않았지만, 멋진 격자틀이 형성된 창을 통해 수영장과 정원을 바라볼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남쪽으로 열린 창으로 빛이 풍부하게 들어와 밝은 공간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 방을 마지막으로 걸어왔던 복도로, 다시 현관복도로 이동하여 답사를 마무리하였다.
바라간 건축에 대한 일관된 질문은 색상 선정을 어떻게 했을까라는 점이다. 프리에토 로페즈 주택도 같은 질문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이전에 답사한 두 주택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색상을 선정했다는 점이 무척 인상 깊었다. 이는 첫 질문인 가장 핵심적인 사진이 외부공간이라는 점과 맞닿아있었다.
바라간 주택과 길라르디 주택은 도시 내에 위치한 단독주택으로, 외부와의 밀접한 관계보다는 내부를 향한 주택이었다. 그렇기에 공간과 공간의 관계를 정의하기 위하 색상을 사용하였다. 하지만 프리에토 로페즈 주택은 교외지역에 커다란 조경공간과 어우러진 단독주택이다. 그렇기에 내부 공간의 관계보다 외부 조경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는지가 집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판단한 것 같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앞선 두 주택에는 여러 색상이 많이 사용되며 각 공간을 다르게 정의하려고 노력했지만, 프리에토 로페즈 주택에서는 옅은 핑크색 한 가지만 사용되었다. 옅은 핑크색의 스타코 외장마감이 건물 전체에 칠해졌으며, 중요한 내부공간에도 같은 색상의 페인트가 사용된 것이다. 이는 바라간의 문제의식이 외부와 내부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나갈까라는 하나의 질문으로 압축되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바라간은 각각의 프로젝트에 중점이 되는 관점을 분명히 하고, 이를 색상이라는 디자인 요소로 풀어나갔다는 점은 다시 한번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