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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다람쥐가 산다.

by 베존더스 Mar 15. 2025

4월까지 짐을 싸야 하는 기한이 숙제를 끝내지 못하는 나날을 보내게 한다. 다섯 명의 짐은 싸도 싸도 끝이 없다. 불필요한 짐은 과감히 정리한다. 두 꼬맹이는 엄마가 뭘 버리는지 기웃거리며 자신이 쓰던 물건을 찾아낸다. 단호히 안된다며 내다 놓지만. 사실 아이의 손때가 꼬질꼬질 묻은 물건을 정리하기란 쉽지 않다. 첫째 듬직이의 이름이 쓰여있는 기차, 둘째 테디베어가 유치원에 안고 다니던 애착 인형, 셋째 ‘다운천사’가 신던 신발. 아가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하나하나 소중해서 정리할 수 있을지. 아쉬움을 달래며 애먼 물만 마신다. 정리하기 너무 싫은 8칸짜리 여닫이 장이 눈에 들어왔다. 장을 여는 순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금니를 꽉 깨물며 한 칸을 열었다. 굳어진 딱딱한 물감, 뚜껑 없는 풀, 몽당연필, 구멍 뚫린 지우개, 수십 개의 종이 딱지가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주섬주섬 쓰레기봉투에 담다가 빗자루로 쓸어 모았다.

두 번째 칸을 힘껏 열었다. 반동에 의해 구슬이 또르르 굴러 나왔다. 벽과 서랍 사이의 틈새였다. 한쪽 벽이 트인 곳이라 작은 아이 손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핸드폰 불빛으로 비춰봤다. 소복이 쌓인 먼지 사이로 동전, 머리핀, 분홍색의 팔찌, 첫째 듬직이가 그토록 찾았던 학생증, 둘째 테디베어가 아끼는 포켓몬 카드, 남편의 증명사진 등 빼곡했다.

‘다운천사’는 마음에 드는 물건을 가져가 숨기곤 했다. 듬직이의 안경이 사라지거나 테디베어의 작은 공이 없어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테디베어는 “다람쥐야, 노란색 작은 공 어디 있어?”라면 다람쥐는 어딘가로 다다닥 뛰어가서 찾아오곤 했었다. 그 장소가 벽과 서랍장의 틈새였다니. 고사리 손으로 사부작거리며 넣었을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긴 막대기로 끄집어냈다. 먼지와 함께 줄지어 나오는 물건 속에는 그토록 찾았던 반지도 있었다.

야금야금 잘도 숨겼다. 이사 가면 다람쥐를 위해 빈 서랍장을 내줘야겠다. 물건에 붙은 먼지를 털어내고 닦아 식탁 위에 올려뒀다. 학교서 돌아온 듬직이는 “헉, 내 학생증 어디서 찾았어?”라며 놀라워했다. 테디베어는 아끼는 포켓몬 카드를 찾은 기쁨에 활짝 웃었다. 정작 숨긴 장본인은 간식을 먹으며 딴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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