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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감성 Oct 24. 2021

싱글 플레이 후유증

4장

1. 협업의 불협화음

시간이 지날수록 업무 수행 능력보다 더 큰 문제는 내가 '협업'에 너무나 취약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지금껏 일을 해온 것들을 보면 공교롭게도 혼자서만 일을 했다. 그 덕에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주도적으로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게 발목을 잡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첫 회사에서 사수가 일찍 회사를 그만두면서, 나 홀로 일하는 것에 익숙했다. 업무 관련돼서 물어봐도 아는 이가 없었다. 레퍼런스를 스스로 찾든지 레퍼런스 없이 부딧치면서 홀로 돌파구를 찾는 방법뿐이었다. 그렇게 한 회사에서만 거의 5년을 해온 습관이 내 몸에 배어 있었다. 물어보지 않는 것에 익숙했고, 나 스스로 생각해서 찾아낸 최선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편했다. 혼자 일하는 습관들이 협업을 어렵게 만들었다.


스타트업에서 일할 때도 내가 맡은 부분에 대해서 나 홀로 일할 때가 많았다. 그때도 회의한 대로 결과물이 안 나와서 간혹 쓴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지만,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결과물을 다시 수정하며, 다음에는 얘기한 대로 진행하겠다고 하고 넘어갔다. 따로 성찰도 했지만, 내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해서 '다음엔 더 잘해야지'와 같이 두루뭉술한 답만 떠오를 뿐이었다. 기침과 발열이 동반돼서 우선 감기약에 의존했지만, 내 증상의 원인은 단순한 감기가 아니었다. 잘못된 처방이 반복되는 줄 그때는 미처 몰랐다.


2. 협업을 어렵게 하는 2가지

나에게 '협업'을 어렵게 만들었던 근본적인 원인들을 하나씩 짚어보겠다.


먼저, '소통의 부재'로 인해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당연하게도 혼자 일할 때는 소통이란 게 필요 없었다. 그리고 일을 진행하다가 생각했던 대로 안 되면 진행 방향을 결과를 낼 수 있는 방향으로 바꾸어서 결과를 냈다. 진행 방향을 바꾸려면 나 스스로의 동의만 얻으면 됐다. 회사에서는 한 프로젝트에 여러 파트를 팀원들이 나누어 진행하고, 마지막에 나뉜 조각들을 하나로 합쳐서 결과물로 보게 된다. 그래서 먼저 일에 들어가기 전에 회의를 통해서 각각의 업무에 대한 세부 사항을 논의하고 조율했다. 그 회의에서 정한 대로 내 일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일이란 게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진 않았다.


업무 진행 도중에 처음 논의했던 부분과 변경점이 생긴다면, 다시 회의를 잡거나 관련된 팀원들에게 구두로라도 변경점과 그로 인해 예상되는 문제들에 대해서 다시 전달해야 한다. 협업에서는 당연한 것이지만, 그런 부분들이 나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졌다. '바쁜 거 같은데 나중에 얘기하자', '조금 고치는 것뿐인데 굳이 얘기해야 하나?'와 같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말하지 않았다. 내 일도 바빠 죽겠는데, 시간을 들여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집중력이 계속 흩트러지는 것도 짜증이 났다. 집중력이 잠시 흐트러지고 진행속도가 느려지더라도 확실하게 합을 맞추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두 번째로 '자신에 대한 과신'도 협업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일을 하다 보면 자신감 있게 의견을 말하고 일을 진행했는데, 진행하면서 생각지도 못 한 부분에서 막힌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그럴 때 어떻게든 되게 만들어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계속 일을 진행해 나갔다. 정말 끝까지 도달해서 더 이상 방법이 없을 때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홀로 일할 때는 일정이 여유롭거나, 나에게 적당한 수준의 업무였기에 잘못된 길로 빠져도 다시 돌아와서 결과를 낼 수 있었다.


일을 혼자 하면서 결과를 냈을 때, 주위에서 혼자서도 잘한다라는 칭찬이 듣기 좋았다. 그게 자신감에서 자존심으로 점점 변질되어 갔다. 거기에 더해서 새로운 회사에서는 경력과 직급 같은 책임들이 나를 더 업무적으로 경직되게 만들었다. '일'을 우선시해야 하는데, '자신'을 우선시했다. 협업을 해야 한다면, 모두가 주인공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나만 주인공이 되려거든 나머지 사람들의 비난과 비판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난 후자를 택했지만,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일이 힘든 게 아니라 사람 때문에 회사 생활이 힘들어진다.


싱글 플레이 게임에서 충분히 게임에 대한 이해도를 갈고닦았으니, 멀티 플레이에서도 당연히 잘할 줄 알았다. 실제로 게임 실력이 뛰어났다고 한들, 내가 돋보이기 위해 개인 플레이를 하다가 나 홀로 죽는 게 반복되는 걸 보고 누가 게임을 잘한다고 칭찬할까? 그런 사람들을 소위 '트롤'이라고 지칭한다. '캐리'를 하고 싶었으나 욕심만 앞서고 실력은 없는 '트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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