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검은감성 Oct 24. 2021

일 잘하는 사람, 일 못 하는 사람

5장

1. 에이스

한 때는 활기차게 아침 운동을 끝마치고 누구보다 일찍 회사에 와서 업무를 준비했다. 이상하게 들리지 모르겠지만, 일하는 게 즐거웠기 때문이다.


전날이나 아침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빨리 가서 확인해 보고 싶었고, 어떻게 하면 더 견고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도 좋았다. 제일 일찍 오고 제일 나중에 가는 것도 나였다. 일이 많아서 야근한 적도 많았지만, 야근을 하면서도 개발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서 늘 아쉬웠다. 더 잘하고 싶은 욕심에 앞서 얘기했듯이 하루 계획도 세워가며, 열심히 노력했다. 개발자로 정점을 찍고 싶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하루하루가 최종 목적에 한 발짝씩 다가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즐겁게 일을 했을 때의 나는 '일에 엄청나게 몰입한 상태'였다. 정말 일에 필요한 것들만 생각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회사에서 부족한 부분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바꾸려고 노력하자 '열정'과 '발전을 꾀하는 노력'이 만나 시너지를 발휘했다. 흔히 말하는 일잘러(일 잘하는 사람)가 되어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내 일과 연관된 다른 사람들이 해야 할 일까지 도와주거나 조언해줄 수 있을 정도로 뭘 해야 할지 그냥 눈에 보이는 경지에 다다랐다. 그리고 한창 개발 역량을 늘린다며, 팀원들과 스터디를 진행할 때도 스터디가 재밌어서 없는 시간도 쪼개가며 열심히 참여했다.


다른 팀원들은 대부분 건성으로 스터디에 참여한 게 티가 났다. 난 조사를 더 많이 해오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으로 스터디에 참여했는데, 자기 생각이란 게 없이 블로그 글만 복사해와서는 질문에 답변도 못 하는 다른 팀원들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분노로 바뀌었다. 화가 날 정도로 진지했고, 개발과 관련된 것이라면 진심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매사에 열성적으로 임하다 보니 쓴소리를 잘하는 팀장님도 나에게만큼은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불과 몇 개월이라는 그 짧은 순간이 내가 상상했던 이상적인 회사와 나의 모습이었다. 좋은 날만 계속될 거 같았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기세가 꺾인 건 일련의 사건들을 겪은 후였다.



2. 묻어가는 사람

좋은 날만 계속될 거 같았지만, 어느 날 부서장님을 통해서 이전 사람들이 만들다가만 모바일 앱을 유지보수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처음 입사했을 때부터 얘기는 했었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려있던 일이었다. 모바일 앱 개발 경험이 있던 사람이 나와 팀장님뿐이었는데, 팀장님은 다른 업무를 이미 진행 중이었고 맡을 사람이 나뿐이었다. 기존에 PC 개발을 재밌게 하고 있다가 그걸 빼앗긴 느낌이었다. 그래도 한두 달만 고생하면 금방 돌아올 거라는 생각에 억지로라도 빨리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의욕도 별로 없는 일을 빨리만 끝내려고 하니 오히려 더 진도가 못 나갔고, 설상가상으로 내 생각 이상으로 업무의 난이도가 높았다. 그렇게 지지 부진한 상황에서 일정은 다가오고, 그동안 고쳤다고 생각했던 안 좋은 습관들이 모두 발현됐다. 내가 맡기에 업무의 난이도가 생각보다 높아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얘기하지 않았고,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고집을 부렸다. 지금의 나정도 실력이라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거야라며 하늘을 찌르는 자신감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이 일을 시작했을 때, 팀장님과 팀원들에게 내가 혼자 할 수 있다며 호언장담을 한 것도 무리하게 일을 진행하게 되는 심리적 압박이 되었다. 일이 진행됨에 따라 중간 결과를 보고 해야 할 시기에도 별다른 얘기가 없는 나를 이상하게 여긴 팀장님이 이내 상황을 파악하시고는 진행 사항에 대해서 확인하셨다. 진행 사항을 전달받은 후, 팀장님은 더 크게 나를 질책하셨다.


질책이라는 표현보다는 화를 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듯하다. 초기에 전달했던 진행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일을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초기에 생각했던 방안이 생각보다 진전이 없어, 다른 방안을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을 스스로 했다. 빨리 마무리해야지라는 마음만 앞섰고, 내가 했던 말에 대한 책임도 지고 싶었다.


2달 정도의 일정으로 원래는 일정이 넉넉한 편이었지만 1달을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하면서 흘려보냈다. 그래서 나머지 1달은 팀장님의 짜증과 분노를 받아내며 빡빡하게 일을 마무리해야 했다. 팀장님의 얘기를 들어보면 기고만장한 내 모습을 보며 내심 불안함을 가지고 계셨던 듯하다.


이 일을 기점으로 나를 더 자책하게 되었다. 일을 마무리하는 그 1달 동안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내 일을 도와주던 팀장님도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은데, 그런 주위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나는 집에서도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자책들이 계속될수록 그게 자기혐오를 만들었다. 남에게 피해만 주는 것 같은 나 자신이 싫게만 느껴졌다.


거기에 회사에 와서 몇 달을 주말까지 갈아 넣어 마무리한 프로젝트의 유지보수를 연장한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그 프로젝트로 다들 너무 고생을 해서 유지보수 계약 연장은 안 한다던 회사는 결국 또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계약을 연장했다. 예상대로 유지보수를 내가 담당하게 되었고, 고객의 무리한 요구사항이 물 밀듯이 몰려왔다. 새로운 프로젝트도 진행해야 해서, 요구사항을 잘라 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갑과 을이 괜히 나뉜 게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갑의 말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우리를 몰아갔다.


모든 게 내 뜻대로 이루어질 수 없고, 돈을 벌어야 하는 회사의 입장도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래도 회사에게 실망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지옥에서 벗어난 줄 알았더니 또 지옥에 돌아가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일에 미쳐야 하는데, 주위 상황이 더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그때부터 슬슬 내 마음도 지쳐간 듯하다.





이전 05화 싱글 플레이 후유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