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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감성 Oct 24. 2021

번아웃

8장

1. 번아웃의 경고

우울증과 함께 '번아웃'도 찾아왔다. 번아웃은 예전에도 몇 번 겪어 본 적이 있어서 예방접종을 이미 해놨다고 생각했는데, 예방접종이 소용 없을 정도로 너무 쎈게 와버렸다. 특히나 밖에 나가지 않고 컴퓨터 앞에서 오랜 시간 머물러야 하는 일을 한다면 번아웃은 뗄레야 뗄 수 없다. 그래서 평소에 기분 전환을 위한 취미나 여가 활동이 필요하다. 아니면 일상에서 벗어나 좀 길게 여행을 가는 것도 도움이 될거 같다. 하지만, 이 시기에 나에게 취미나 여가 활동은 없었고, 여행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냥 일만 하는 기계 같은 삶을 살았다. 집에 와서도 일이나 자기개발에만 빠져 있었다.


안타깝게도 진짜 기계는 아니여서, 체력과 정신력의 한계가 있었다. 그 한계점을 돌파하고도 계속 기계처럼 행동하려고 하니 내 몸이 못 버티고 극약처방으로 번아웃을 선사했다. 주말이나 휴일에 휴식을 취해도 체력이 회복되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집에서는 누워서 유튜브를 보는 것외에는 다른 일을 할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충전기를 꽂아도 배터리가 계속 방전되어 있었다. 유튜브를 한참 보고 나면 두통이 몰려왔다. 그래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자다 깨고를 반복했다. 아침이 밝아 회사에 가면 잠도 제대로 못 잔채 무기력한 하루가 반복 되었다.


그런 상태를 알면서도 나태해졌다며, 계속 일이나 자기개발을 하려고 했다. 몸이 휴식을 취하라며 스위치를 내렸는데, 억지로 스위치를 켜니 아예 시도 조차 못 하게 나에게서 '개발' 자체를 없애버렸다. 가장 좋아하는 것을 빼앗아버리는 내가 나에게 내리는 최고형이었다.


내 자리에 앉아서 개발 작업용 프로그램을 키고,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뭘 해야하는지는 알겠는데,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감이 하나도 없었고, 개발을 해본적이 없는 사람처럼 머릿 속이 하얘졌다. '번아웃이 제대로 왔구나...' 손을 키보드에서 내려 놓고 곧장 팀장님에게 다가가 회의를 요청했다. 팀장님과 팀원을 불러놓고 번아웃이 왔음을 전달했다. 도저히 개발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전달했고, 나와 같이 일했던 팀원이 업무를 대신 진행하기로 했다.


우울증만 해결하면 될줄 알았는데, 산 넘어 산이고 엎친데 덮친격이라는 말처럼 그 동안 너무 많은 문제들을 무시하고 지내온듯 했다. 무리해도 쉴때는 쉬었어야 하는데, 제대로 쉬는 방법을 몰랐다.


 

2. 내가 겪은 번아웃의 증상들


(1) 무기력함, 의욕 저하

우리팀은 휴가를 몰아서 쓸 수 있게 해줬는데, 한번 쓸때 일주일정도를 몰아서 쉬었다. 이전에는 그 정도로 푹 쉬면, 다시 재충전이 되어서 일에 에너지를 쏟을 수 있었다. 반면에 번아웃이 왔을때는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만 쉬었는데도, 전혀 재충전되는 느낌이 없었다. 오히려 더 피곤하고 기운이 없어졌다.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방구석에서 가만히 누워서 유튜브를 볼께 아니라 반대로 활동적인 것들을 하면서 뇌를 쉬게 해줬어야 하는데 축 늘어져서 만사가 귀찮았다. 몸은 쉬는데 정작 가장 쉬어야 할 뇌는 여전히 쉬지 못 하고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집에만 있으니 쉬는거 같지만, 눈을 통해서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의 여러 정보들을 받아들이느라 뇌는 쉴 수 없었다. 그래서 두통도 꽤나 자주 느껴졌다.


집에서 쓰는 컴퓨터를 몇 주, 몇 달간 켜놓으면 컴퓨터가 버벅이는 것과 똑같다. 컴퓨터는 과부하가 올까봐 전원을 꺼서 열을 꼬박 꼬박 식혀주면서, 내 뇌에게 오는 과부하는 신경도 쓰지 않고, 열을 식힐 틈도 주지 않았다.


일에 치이는 나날들이 계속 될수록 집에 오자마자 쓰러져서 자거나 침대에서 누워만 있는 날들이 많아졌다. 특히 운동을 못하게 된 후부터는 급속도로 의욕을 잃어갔다. 그때부터는 다시 열심히 해보자!라는 마음이 작심삼일로도 이어지지 못 했다. 회사의 일은 줄어들 기미가 없고, 점점 모든 것에 의욕을 잃어갔다. 그때는  다른건 고사하고 일만 어떻게든 끝내자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던것 같다.




(2) 회사에 가는 것이 너무 싫었다.

회사에 가는게 언제나 즐거웠던 내가 아침에 눈을 뜨면 회사에 가기 싫다는 생각을 몇번이고 되뇌였다. 번아웃으로 '개발'이란 목적을 상실하고부터 회사에 왜 가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었다. 회사에 가면 코드 한줄 치지 않았고, 억지로 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떻게 개발을 그렇게 좋아했을까라는 생각이 들만큼 낯설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는데, 이제 회사에서 내게 주는거라곤 돈 밖에 없었다. 어떤 이는 일도 많이 안 시키고 월급 따박따박 주는데 뭐가 불만이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나에게 월급 따위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애초에 월급을 따졌다면 진작에 그만뒀을 회사였다.


'돈 때문에 회사를 다니는게 이런 기분이였구나...' 아침 출근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이래서 회사에 가기 싫다고 하는구나, 월급루팡이 이래서 존재하는구나 이해되지 않던 것들이 이해가 되버렸다. 한번도 난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로 회사를 다녀본 적이 없어서 여지껏 그들을 공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번아웃으로 일에서 재미를 못 느끼기 시작하고 부터는 회사에 가기 싫어하는 그 많은 사람들의 아우성에 동참 할 수 있었다.


시간을 많이 거슬러 가보면, 고3 말미에 대부분의 친구들이 취업해서 학교를 떠나는 것을 보며 내 차례가 언제오나 기다릴때도 비슷한 심정이였던거 같다. 수업시간에 앉아서 수업을 듣고 있을때면, 내가 여기에 있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이 시간에 나가서 일을 하면, 경력도 쌓이고 돈도 벌텐데'라는 생각만 맴돌았었다. 그때와 지금이 오버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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