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멜리사 호겐붐
엄마라는 새로운 정체성과 기존의 자아가 충돌하는 이 지점에서 사회/문화적 압박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생물학적인 변화를 함께 연구해 놓은 책. 임신 생각 없을 때 산 책이지만 임신하고 읽으니 아무래도 더 와닿고 앞으로 내가 겪을 수도 있는 일이니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일까?
익숙한 장소, 생각과 문화들이 많이 나와 작가가 어디 출신인지 궁금했는데 역시나 네덜란드 출신이었다. 왜 다른 나라에선 못 느낀 감정, 네덜란드에서는 나와 사람들 결이 비슷하다고 생각하는지, 생각 나눔이 편안한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 책. 네덜란드 사람들과 생각이 비슷해서 내 주장을 관철해야 하는 경우나 언쟁을 하는 경우 자체가 드물다. 반면 한국에서는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하기가 꽤 힘들다.
여성인권(노동, 임금)이 발달한 나라에서는 당연하게 추구하고자 하는 평등이, 한국은 사회적 구조상 가능하지 않은 일이 많다는 걸 다시 확인했다. 한국에 살면서도 직업의 종류와 유연성에 따라 어느 정도 조절은 가능하겠지만 이는 소수 그룹이고 다수의 사람들은 사회적 시스템에서 벗어나기 힘들 다는 걸. 그렇기 때문에 사회 구조상으로 큰 변화가 있지 않는 한 저출생 문제는 해결되기 힘들 것이며 돈을 쏟아붓는다고 하는 '지원'정책도 현재로서는 임신, 출산에 관심 있는 커플이 쉽게 아이를 갖는 결정을 하기엔 현저히 부족한 지원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남성, 여성이 어떤 선택을 하든 간에 사회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고 또 그를 바라보는 판단도 이 점을 염두해야지, 개인의 선택이라 생각하며 멋대로 판단하는 시선은 위험하다. 사람들 성격과 추구관이 각자 다른 것처럼, 어떤 선택이라도 이를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
책에서 가져온 몇 문구들
-지금 나는 마치 여러 자아를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이 글을 쓰고 있다. 사실 엄마가 된다는 것이 그런 느낌이다.
-내가 상당히 오랫동안 회사에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든 임신의 그늘에 가려지는 것을 피하고 싶어서였다. 좋은 의도일지라도 사람들이 나를 임신 전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싫었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오래 '나 자신'으로 남고 싶었다. 임신 때문에 특별한 대우를 받고 싶지도 않았다. 두 차례 임신하는 동안 단 하루도 병가를 내지 않았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새로 생겨난 '예비엄마'라는 정체성이 나의 개인적 정체성에 부딪히고 삐걱거렸던 것은 아닐까 추측한다. 나는 '임신한 여성'이 나의 우선적인 정체성이 되는 게 싫었다.
-안타깝게도 여성들이 임신 이전의 몸매가 사라지고 피부가 처지며, 혈관이 더 도드라져 보이고 모유 수유를 한 후로 유방이 작아지거나 늘어져서 보기 흉해졌다고 한탄하는 소리를 너무도 흔히 듣는다. 이런 변화는 대부분 부정적으로 인식된다. 9개월의 임신기간을 겪은 후에도 '신체적 완벽함에 집착하는 사회'가 많은 여성을 자유롭지 못하게 만든다. 다시 말해 여성들이 출산 후 자기 몸이 어떻게 보일지 비현실적인 기대감을 품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임신으로 여성의 몸이 변할 수 있다고 예상하지만, 그와 동시에 여성들이 그런 예상을 뒤집는 모습을 보이면 격려하고 축하해 준다. 우리가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일로 얼마나 많은 평가를 받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평등은 보편적인 인권일 뿐 아니라 더 좋은 노동력 창출에도 도움이 된다는 인식, 사회 전체와 다음 세대에까지 이익이 될 것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직장인 엄마'라는 용어가 '직장인 아빠'라는 말만큼이나 낯설게 느껴질 정도의 사회적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