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후 나는
내 몸으로 새 생명을 만들어 낸 뒤 변화가 따르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몸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거지만 실제로 잃은 것들에 대한 제대로 된 애도가 필요하다. 기쁨이 생겼다고 슬픔이 상쇄되는 것은 아니니까. 다른 사람들도 다 겪었어라고 말을 듣는 건 그 어떤 위로도 되지 않는다. 누군가를 잃은 사람에게, 너만 잃었냐며 다 겪는 일이라고 말하는 격이다.
임신과 출산의 결정은 오롯이 내가 원해서 한 것이지만 그 대가가 불공평하게 오직 나(엄마)에게로 쏠려있을 때 신체변화와 고통은 더더욱이 크게 느껴진다. 나의 몸은 그 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젠 지겹고 지겹다. 원래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하다. 이제는 정말 주삿바늘도 미칠 정도로 싫다.
수영장 샤워실에서 본 내 모습은 출산한 엄마의 모습이 따로 없었다. 샤워실 거울에 비친 나는 그냥 ‘애 낳은 사람’ 그 자체였다. 퉁퉁한 몸에게 뽈록한 뱃살, 축 쳐진 어두운 색의 가슴. 내 모습을 보는 게 괴로웠다. 체중은 줄지 않을 것 같아 무섭고 가슴은 암울한데 나 자신이 매력적이라 느낄 수 있을 만한 시간도 여유도 없다. 모유수유를 안 하게 되면 그나마 식단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남편은 출산 후 바로 인바디를 하는 것과 내 모습에 비판적인 것은 공평하지 않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내 몸이 맘에 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눈물 나도록 내 몸이 싫고, 여기저기 아파서 이젠 나열하기도 귀찮은 수준이니까. 이런 상태에서는 남편과 설레는 데이트를 한다거나 매력적으로 보이게 꾸민하더가 그런 게 다 보잘것없는 일 같다.
밤에는 유축을 하는데 젖꼭지에서 피가 나는 게 보이는데 아기는 먹어야 하니 계속 유축을 했다. 하얀 모유와 피가 섞여 피가 섞인 모유가 묘하게 분홍빛으로 나온다. 그런데 유축 깔때기가 잘못되어 밑으로 흘러나오며 바지와 속옷이 젖었다. 그래서 갈아입으려는데 또 속옷에 오로 피가 묻어있다. 유축을 끝내고 냉장고에 유축한 모유를 넣었고 유두 보호크림을 바른 뒤 설거지 거리를 정리하고, 쓰레기를 버리러 나오는 길에 있는 거울을 봤다. 넘어져서 얼굴도 엉망진창, 살은 쪄서 얼굴과 목에 살이 가득 붙어있고 뱃살과 가슴, 팔뚝은 울퉁불퉁 뚱뚱하다. 내 오로 때문에 생리대를 갈아야 하는데, 아기의 기저귀도 갈아야 하고. 내 피가 샐 때면 손빨래하다가 숙이면 가슴에 무게가 더해져 모유가 새어 또 웃옷도 젖고. 이게 과연 사람 사는 건가. 처참했다.
하지만 아기가 태어난 이상 뒤로는 돌아갈 수 없다.
앞으로 나아가는 게 맞겠지. 근데 그게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