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어떤 가족 10화

10.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다르게 흐르는 너희와 우리의 시간

by Skylar

혜리와 타니를 산책시키다 보면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대부분 강아지를 좋아하거나, 키워 본 사람들이다. 몸을 낮춰 다정하게 강아지들에게 말을 거는 사람도 있고, 우리의 허락을 구한 뒤 혜리와 타니를 쓰다듬어 주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적극적인 부류는 시츄를 키우거나 키웠던 사람들이다. 반려동물 종(種)에도 유행이라는 게 있어서 요즘에는 길에서 시츄를 만나는 일이 흔치 않다는 걸, 다른 시츄 보호자들이 수없이 말해서 알게 됐다. 그래서인지, 시츄를 반가워하며 다가오는 사람들은 우리처럼 노견 시츄와 함께 살고 있거나, 이미 오랜 세월 함께했던 시츄를 하늘나라로 보낸 사람인 경우가 많다. 노견을 키웠거나 키우고 있는 사람들은 노견을 알아본다.


"어머, 시츄다. 얘는 나이가 많구나, 몇 살이에요?"

"열다섯 살요."

"그렇구나. 나도 시츄를 키웠는데, 우리 애를 열여섯 살에 보냈거든."

"아......"


사실 나는 아직도 그런 말들에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저분을 위로하고는 싶은데, 그런데 혜리는 저 집 애보다는 훨씬 더 오래 살았으면 좋겠고, 하지만 언젠가는 이별이 올 것이고... 하는 생각이 짧은 순간 밀려들면서 말문이 막혀버린다. 다행히, 그런 사람들과의 대화는 혜리를 향한 축복으로 정리되곤 한다. 오래 살아라, 건강해라, 하는.


모든 생명에는 끝이 있다는 걸, 왜 모르겠는가. 그게 두려워서도 나는 반려동물을 키울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높은 확률로 반려동물이 보호자보다 세상을 먼저 떠나니까. 그 상실감과 슬픔을 감당할 자신이 없으니까. 그러나 운명은 혜리와 타니와 단풍이를 내 삶에 들여보냈고, 이제는 서로의 삶과 죽음을 감당해야 하는 인연의 끈으로 묶여 버렸다.


약 3년 전, 혜리가 피를 토했다. 아토피에 적극적으로 대응을 해 보자고 과거 부작용 때문에 끊었던 스테로이드제를 다시 먹인 게 화근이었다. 혜리는 약과 사료를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다 새벽에는 피를 토했다. 근처 24시 동물병원에 뛰어간 후에야 우리는 우리의 잘못을 깨달았다. 독한 약에 속이 뒤집어진 아이에게 속이 비어 배고파한다며 또 사료를 먹여 구토를 반복시키고 소화기가 헐어 피가 나오게 만든 거였다. 황당한 실수였지만, 조그만 강아지의 몸에서 나온 피를 보고 그 원인을 찾기까지 머릿속에선 온갖 망상이 꼬리를 물었다. 그때 혜리의 나이가 이미 열두 살이었으니까.


"혜리야, 언니 너무 놀라서 명 짧아졌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자, 응?"


병원에서 돌아오는 새벽길, 속상한 마음에 혜리를 안고 중얼대고 있는데, J가 말했다.


"나는 명 좀 짧아져도 되니까... 내 수명을 혜리 네가 좀 나눠 가지면 좋겠다."


그제야 나는 우리가 매일 조금씩 이별하며 살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 강아지의 1년이 사람의 7년과도 같은 거라던 얘기가 기억났다. 그랬다. 노견과 함께하는 일상은 우리의 시계보다 일곱 배는 일찍 돌아가는 초침을 매 순간 인지하며 가쁜 마음으로 살아가는 거였다.


그 얼마 후, 혜리는 내 앞에서 기절을 했다. 갑자기 초점이 없어지며 유리알 같아지던 혜리의 동그랗고 까만 눈. 다행히 J의 품 안에서 곧바로 평소 모습을 되찾았지만, 혜리는 심장질환인 이첨판 폐쇄부전증 초기 진단을 받고 약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갑상선기능저하증을 진단받아 호르몬제를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혜리가 열두 살을 넘기면서부터, 사료를 줄 때마다 챙겨야 하는 약의 종류와 양이 빠르게 늘어 갔다.


석 달 전에는 혜리의 간에서 혹이 발견됐다. 커지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랐건만 두 번째 추적검사에서 혹이 커졌고, 간수치도 나빠졌다. 종양이 양성인지 악성인지 알아보기 위한 검사조차 열다섯 살 혜리에게는 생사를 오갈 수 있는 일이었다. 한동안 어떤 일에도 집중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마음이 어지러웠다. 혜리가 J와 함께한 지 10여 년, 나를 만난 지 5년여였다. 동물의 시간은 왜 이렇게 속절없이 빠르게 흐르는 건가 하는, 하나마나 한 생각을 멈추기가 어려웠다.


다행히 목숨을 건 마취와 검사를 혜리는 잘 이겨냈고, 혜리의 간에 생겨난 건 양성종양 쪽이라는 판명이 났다. 다만 양성이어도 제거 수술을 하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설명이 따라붙었다. 하지만 우리는 혜리의 주치의 선생님과 상담 끝에 수술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선생님이 우리의 부탁에 '검사를 잘 버텨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었다'는 개인적 생각을 조심스레 말해주는 순간, 같은 마음이던 우리는 차라리 안도했다.


우리는 이제 혜리의 '여생'과 '삶의 질'을 생각해야 할 때를 맞이했다. 지금의 혜리는 열다섯 살 강아지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잘 먹고 잘 싸고 잘 잔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크고 작은 변화가 생길 것이고 이별은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그때가 오기 전까지 주어진 '우리의 시간'에 감사하며 충실히 살아낼 수밖에.


오지 않은 일들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이 어지러워질 때면 두어해 전 선정릉 앞 도로에서 혜리를 보고 한달음에 달려오던 한 아주머니를 떠올린다. 연세 지긋한 아주머니는 혜리에게 다짜고짜 '사랑해! 건강해라! 사랑해! 할머니가 많이 사랑해!'를 외치셨다. 그 눈빛과 목소리에 정말 얼마나 사랑이 가득하던지, 그날의 축복으로 혜리의 수명이 좀 더 연장됐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냅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벅찬 마음으로 함께 사는 일. 그게 혜리, 타니, 단풍이와 우리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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