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에 새겨진 사랑의 흔적
나는 제대로 화를 낼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얼핏 보기에 차분하고 조용하게 위기를 잘 넘기는 듯하지만, 부글부글 끓는 감정을 다 삼켜버려 결국에는 한 번씩 화병으로 앓아눕는 그런 사람. 심지어 화가 나면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상대를 본척만척 소통을 거부해리는 나쁜 버릇까지 있었다.
J의 단점은 나와 정 반대였다. 부정적 감정을 참거나 삭이지 못하고 바로 밖으로 쏟아내는 경향이 강했다. 여느 연인이 그렇듯 서로의 좋은 점에 눈이 멀어 연애를 시작했지만 우리는 화를 내는 방식이 너무 달라 몇 번의 큰 고비를 겪었다. 서로의 성장 환경이 달랐고 오랜 시간 살아온 방식이 달랐다. 그런 성인 둘이 생활을 함께 하기 시작하니 부딪칠 일이 잦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한 번은 정말 별 것도 아닌 일-어딘가에 함께 가기로 했는데 J가 전날 과음을 하고 늦게 일어남-로 내가 토라졌다가 꽤나 큰 말싸움으로 번졌다. 나는 무언의 횡포로 감정적 공격을 가했고, 불쾌감과 당황스러움에 사로잡힌 J는 격앙된 말투로 자기 방어를 하고자 했다. 나는 내가 사실상 선제공격을 했다는 사실에는 눈을 감은 채, 어떻게 J가 나한테 이런 폭력적 언사를 할 수가 있냐며 방문을 닫고 드러누워 버렸다.
그렇게 어둠 속에 누워 씩씩대고 있는데, 문틈으로 격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킁, 킁킁킁, 킁킁킁킁킁.
그리고 이어지는 문지방 긁는 소리.
사악사악, 박박박박박.
가만히 누워서 그동안 서운했던 일들을 떠올리고, J가 방금 전까지 내게 했던 심한 말들을 곱씹으면서 나쁜 생각을 더 나쁜 쪽으로 키워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문밖에서 나는 소리가 너무 웃겨서, 나는 도무지 그 생각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전방 몇십 센티미터 거리까지도 콧물을 튀겨가며 냄새를 맡는 타니가 문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아지가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들어오고 싶으면 들어오고, 나가고 싶으면 나갈 뿐인걸. 방문을 살짝 열자마자 타니가 밀고 들어왔다. 그리고 드러누워 울상이던 내 얼굴 곳곳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았다. 콧물 방울이 사정없이 튀어 안경알이 더러워지고 얼굴이 축축해졌다. 그렇게 나를 찝찝하게 적셔놓고 타니는 쓱, 나갔다. 응, 살아있으면 됐네, 하는 듯이. 타니가 밀어 열고 나간 문틈 사이, 잠시 후 혜리의 코가 반짝이다 사라졌고 마지막으로 단풍이가 들어오더니 내게 제 몸을 슥- 비비고 갔다.
난데없는 생사확인을 당한 후 삼총사의 뒤꽁무니를 눈으로 좇자니, 흰색의 방문과 문틀에 거뭇거뭇 내려앉은 자국이 보였다. 혜리, 타니, 단풍이는 체고가 고만고만하다. 딱 아이들의 어깨 높이에 세 마리 댕냥이가 문 틈으로 오고 가며 묻힌 때가 앉아 있었다. 내가 침대에 누우면 한 마리씩 뛰어올라와 자리를 잡고,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가면 곧바로 쫓아 나오고, 그날처럼 화가 났다고 문을 닫아버리면 콧등으로 어떻게든 문을 열어보겠다며 문질렀던 흔적들이 거기 켜켜이 쌓여 있었다.
이후로 나는 아무리 화가 나도 아이들이 밀고 들어올 수는 있을 만큼은 문을 열어뒀다. 그러고 있다 보면 문을 닫은 것도 아니고 연 것도 아닌, 동물들이 인간들의 기분과 안부를 살피러 들락날락하는 이 상황이 대체 무슨 의미인가 싶어 스스로가 우스워졌다. 그리하여 나는 점점 우스꽝스러운 침묵의 상황을 만드는 대신 J와 대화하는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J 역시 큰 소리를 내지 않고, 다급하게 나를 몰아붙이지 않고 감정을 적당히 조절하며 이성적으로 대화하는 데 익숙해지고 있다. J가 흥분해서 큰 소리를 내고 내가 거기에 맞서기 시작하면, 단풍이가 더 시끄럽게 울어 젖히며 항의하기 때문이다.
"내가 저번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했잖아!"
"냐-옹!"
"그래, 그래서 나는 나름 노력했는데, 왜 그런 건 인정을 안 해줘?"
"냐아아아옹!"
"넌 좀 조용히 해봐!"
"니야아앙!"
이런 분위기에 대체 무슨 말싸움이 이어질 수 있겠는가. 나이가 마흔 줄에 되도록 자기감정을 다루는 데 미숙했던 두 성인은, 세 마리 털뭉치 덕분에 비로소 사람답게 대화하며 갈등을 해결하는 법을 익혀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