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하다가 그랬으면 뿌듯하기라도 하지
사이버대학원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당연히, 학교에 오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다수의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기만 해도 기 빨리는 느낌을 받는 내게 교수님, 동료 학생들을 직접 만날 필요 없이 공부만 할 수 있다는 점은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다만, 사이버대학원은 관계 법령에 따라, 약 15주가량의 한 학기가 진행되는 동안 3회의 실시간 화상수업을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곧, 대략 5주 간격으로 한 번씩은 모니터를 앞에 두고 교수님 그리고 다른 수강생들과 대면을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과거 회사원 시절엔 바다 건너 외국인들과 컨퍼런스 콜도 했던 난데, 그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지. 의욕 넘치는 신입생은 학사 일정표를 보며 호기롭게 생각했었다.
세상 모든 일은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법.
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실시간 화상수업이 상상 외의 복병이었다. 몇 번의 실시간 화상수업을 거치며 나는 내가 얼마나 심약한 사람인지를 깨닫게 됐다.
어느 학교나 그렇듯 교수님들의 성향에 따라 강의의 스타일은 천차만별이다. 내가 수강하던 강의 중 하나의 교수님은 학생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외롭게 공부하다가 혼자 나가떨어지는 일이 있을까 늘 걱정했다. 그래서 그분이 학생들을 독려하는 주된 방법은, 학생 입장으로서는 비극적 이게도, 끊임없이 과제를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학생들은 실시간 화상수업 때마다 그 과제 내용을 가지고 발표를 해야 했다. 교수님은 참 공평한 분이어서, 어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남들 앞에서 자신의 지식을 뽐낼 수 있도록 모든 학생에게 발표할 과제를 할당했다.
처음으로 모두가 사이버 공간에 함께 모인 실시간 화상강의 수업. 처음으로 노트북 카메라를 켜고 내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부담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코로나 시국으로 재택근무가 확산하고 온라인 미팅이 일반화되면서 줌(Zoom) 화면 속 자기 얼굴을 처음으로 제대로 들여다본 사람들이 "나 왜 이렇게 생겼어?"를 외치며 성형외과와 피부과로 몰려들었다더니, 과연.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 몰골이 주는 괴로움에 젖어들 시간조차 길게 주어지지는 않았다. 쉽지 않은 과제의 릴레이 발표와 그에 따른 폭풍 피드백이 이어졌다. 교수님은 과제 내용을 평가만 하는 게 아니라, 자꾸 질문을 했다. 7월의 폭우처럼 쏟아져내리는 교수님의 질문, 채팅창에 주식 시황처럼 속사포로 올라오는 학우님들의 답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데 교수님이 외쳤다.
"다른 학생들도 가만히 있지 말고 답을 올려주세요!"
한 번 해봤으니 익숙해졌을까 했지만, 두 번째 실시간 화상강의도 나를 카오스로 밀어 넣기는 마찬가지였다. 화면 속 나는 지난번보다 더 늙고 못생겨져 있었고, 두 번째 시간에 발표해야 하는 과제는 첫 번째 발표 과제보다 어려웠으며, 그러거나 말거나 교수님과 다른 학생들은 불꽃 피드백을 주고받고 있었다. 느려빠진 내가 한마디 채팅창에 치고 보면, 이미 그 내용은 지나가고 난 것이기가 일쑤였다.
세 번째 화상강의 날, 학기말을 앞두고 나는 심기일전했다. 더 이상 스스로의 못생김으로 주눅 들지 않도록 콘택트렌즈를 끼고 머리도 단정히 묶었다. 제대로 챙긴 적이 드물던 삼시 세 끼도 그날만큼은 든든히 먹어뒀다. 내 몫으로 주어진 과제물은 물론 남들이 풀어서 발표해야 하는 문제까지 싹 다 훑어봤음은 물론이다. 이 정도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마지막 실시간 화상강의 수업을 기다렸다.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죽는다고 했던가.
수업을 두어 시간 앞두고, 기분이 점점 이상했다. 밥을 한 사발 다 먹어두었는데도 기운이 빠지고 나른해졌다. 초여름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손발이 차가워지더니 이내 오한이 들어, 난방까지 켰다.
어어, 왜 이러지.
절절 끓는 방바닥에 대 자로 뻗은 채 빙빙 도는 천장만 보고 있다 보니 곧, 실시간 화상강의 시간이 되었다.
마지막 실시간 화상강의에 심기일전하고 들어온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교수님은 그 어느 때보다 열정적이고 속도감 있게 수업을 진행했다. 말인즉슨, 엄청 빠른 속도로 내 발표 순서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내 위장은 점점 격하게 부글대고 있었다. 내 발표 순서를 서너 명쯤 앞두고, 급기야 그분이 오셨다. 나는 다급하게 핸드폰 화면을 열어 수업 조교의 전화번호를 찾았다. 나는 '답장'을 눌러 다급히 문자를 적었다.
조교님, 제가 지금 속이 너무 안 좋아서 화장실에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그 사이에 제 순서가 오면 교수님께 양해 말씀 좀 부탁드립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그 길로 화장실에 달려가 눈물 콧물을 흘리며 저녁으로 먹었던 것을 전부 게워냈다. 벌벌 떨리는 몸을 질질 끌고 노트북 화면 앞에 다시 앉아 허옇게 뜬 내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내 발표 순서가 되었다. 밥알과 함께 빠져나간 멘털을 겨우 부여잡고 그렇게 나는 마지막 발표를 마쳤다. 내가 뭐라고 말했는지, 그래서 교수님과 동료 학생들에게 어떤 피드백을 받았는지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로.
내가 생각하는 나 자신과 타인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며 남들의 말이 나 자신의 판단보다 더 익숙해지면서 그 간극이 점점 더 커지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너 정도면 사교성 좋은 사람이지!
보기보다 끼도 많고, 주목받는 걸 좋아한단 말이야?
안 그렇게 생겼는데 의외로 강심장이네.
남들에게 몇 번 들어본 이런 평가로 나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 두었던 나. '내가 알고 있던 나'는 그래도 평균 이상의 씩씩함과 담대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실시간 화상강의 도중의 구토 대참사는 내게 알려주었다. 나, 생각보다 마음도 약하고 소심한 사람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