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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ylar Oct 24. 2021

칭찬은 마흔도 춤추게 한다

우리 모두는 한때 존재만으로도 특별했다

서른 무렵, 나는 수년간 다니던 회사를 떠났다. 

워낙 규모가 큰 회사였기에 그동안 쌓은 인연들에 이별을 고하는 데만 며칠이 걸렸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퇴사 이유를 물었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간단히 '아예 다른 길로 가 보려 한다'고만 말했다. 진로를 바꾸려는 계획은 진심이었고, 일단 뒷모습은 아름답게 남기고 싶은 허망한 바람이 있었기도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복잡하고 무거운 내 머릿속을 다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때 나는 감당하기 어려운 우울에 빠져 있었다. 전문 의료기관에 찾아갈 의욕조차 없었기에 정식 진단을 받은 바 없지만, 지금 생각해보건대 단순 우울감 수준을 넘어선, 존재가 흔들릴 수준의 깊은 우울이었다. 퇴사라는 다소 큰 결정을 하기 전에 어떻게든 내가 처한 상황을 능동적으로 개선하고 좀 더 건강한 심신으로 살아보고자 이런저런 대안을 모색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결국, 내가 살기 위해서는 퇴사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퇴사를 앞두고도 끊임없이 투척된 일 폭탄과 마음처럼 순조롭지는 않았던 인수인계 과정 때문에, 퇴사 전날까지도 나는 야근을 했다.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마음을 담은 이메일을 써 날리고, 사무실에 남아있던 짐을 챙겨 나서며 빈 사무실을 돌아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 마지막까지 '잘했다'는 말을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네.


내 퇴사에 큰 기여를 한 인물 중 한 명은 내 마지막 팀장이었다. 

그는 스펙 좋고, 열정적이고, 유능한 사람이었다. 말이 아예 안 통하는 워커홀릭도 아니었다. 팀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거나 술 한잔을 기울일 때면 조직에 만연한 부조리에 대해 팀원들이 차마 못하는 욕을 시원하게 대신해줄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팀장 밑에서 지내는 일 년여의 시간, 매일매일이 내게는 지옥이었다. 그는 잘못에 대해서는 칼같이 바로바로 피드백을 했지만, 긍정적인 평가는 좀처럼 할 줄을 몰랐다. 딱히 큰 잘못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일에도 정색하고 지적을 했지만, '우리 팀에서 그동안 뭘 잘한 일이 있기는 있었나?' 싶을 정도로 칭찬이라는 건 한 적이 없었다. 그런 시간이 계속되자 특별한 사건이 없이도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팀장이 다음날엔 또 대체 어떤 부정적인 평가를 내릴까 싶어 심장이 뛰고 잠이 안 오는 지경이 되었다.

회사를 고작 팀장에게 칭찬받기 위해 다닌 건 아니었지만, 그가 습관처럼 던진 부정적인 말들이 내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 탈이 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내가 여기서 특히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 뭐냐면요, "


내가 실시간 화상강의 도중에 구토를 하게 만들 만큼 학생들을 공부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열정 만렙 교수님의 단골 멘트였다. 인정사정 볼 것 없이 공부를 시키는 그 교수님 탓에 내가 예상보다 훨씬 '빡세게'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긴 했지만, 아이러닉 하게도 그 교수님 덕분에 나는 어려운 학업을 이어갈 힘을 얻었다. 제출한 과제물의 수준과 상관없이 교수님은 일단 긍정의 메시지를 던졌다. 실시간 화상강의든, 녹화된 영상강의든, 그분의 강의에는 학생들을 몰아붙이는 '채찍'만큼이나 크고 작은 '당근'이 존재했다.


"정답은 사실 저도 몰라요. 다만 제가 생각해 볼 때..."


교수님은 수없이 질문을 던져 수업시간 내내 학생들을 긴장시키는 걸로 악명이 높았지만, 학생들의 모자란 답변에도 '그게 아니다', 혹은 '틀렸다'라고 단정 짓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라는 말을 해 주고, 또 다른 생각의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분명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강의를 듣느라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는데도, 수업 후에 그리고 한 학기를 마친 후에 돌아보면 어쩐지 나 자신이 기특해지는 그런 교수법이었다.


마흔이 되어서야, 이 나이에 신입생이라는 게 되어 보고서야, 십 수년만에 나의 수행에 대한 인정과 칭찬을 받아 보고서야, 나는 서른의 내가 왜 그렇게 아팠는지를 뒤늦게 깨달았다. 한 때 우리는 모두 존재만으로도 특별했다. 작은 입술을 달싹여 '엄마', '아빠'를 부른 것만으로도, 넘어지지 않고 열 발자국을 걸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주사를 맞았지만 꾹 참고 울지 않는 그런 일만으로도 칭찬을 받으며 성장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살다 보니 어느새 마흔 살이나 먹었지만, 아직 나의 어떤 부분은 다 자라지 않았고 심지어 나는 앞으로 더 성장할 수도 있다. 뒤늦게 발견한 칭찬받는 기쁨이, 학생으로 새롭게 여는 인생 2막에 큰 힘이 되어주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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