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작년 여름 어느 밤, 나는 애인, 그리고 그의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산책을 하고 있었다. 도시의 조명이 반사되는 강물을 따라 제법 낭만적인 기분을 즐기고 있던 그때, 아랫배에서 심상찮은 요동이 느껴졌다. 저녁으로 구워 먹은 고기의 상태가 좋지 않았나 보다. 요동은 점점 커져만 갔고, 급하게 뛰어 들어간 화장실 변기는 거짓말처럼 칸칸이 죄다 막혀 있었다. 애인에게 차릴 체면 따위는 처참하게 막혀 있는 공중 화장실 변기 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우리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한없이 느긋한 시츄들을 냅다 들쳐 안고 뛰었다. 그렇게 겨우 찾아간 공원 화장실, 애인과 강아지들을 밖에 세워둔 채 마침내 나는 평안을 되찾았다.
그리고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보니 화장실 칸막이 문 위, 딱 시선이 닿는 곳에 이런 문구를 적어놓은 스티커가 보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마도 그 공원을 관리하는 지자체에서 그럭저럭 보기 좋으라고 붙여 놓았거나, 건강보조제 같은 것을 파는 업체에서 붙여놓은 광고물 스티커였는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공중 화장실에 그럴듯한 글귀를 써 붙여놓은 스티커는 흔하디 흔하다. 그런데 이 문장은 유달리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지옥문을 코앞에 두고 살아 나온 그날의 강렬한 경험 탓만은 아닐 것이다.
언젠가부터 조금 느려도, 게을러도, 모자라도,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담은 책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을 본다. 빨리빨리 하라고, 1등을 하라고, '노력하면 꿈은 이루어진다'고 오랜 세월 외쳐 온 우리 사회. 그런 기성의 철학에 지친 사람들이 하나둘씩 내려놓는 방법을 터득하고, 대중에게 우리 이제 조금 천천히 살아 보자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 아닐까 싶다.
이렇듯 조금은 심드렁한 것이 미덕이 된 요즘 세상에서, 마흔이라는 나이에 학교에 들어가 발버둥을 치고 있는 나 자신이 스스로 보기에도 조금 촌스럽고 한심할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회는 없다. 학생의 신분으로 돌아가 살았던 지난 일 년의 시간 동안 깨달은 것이 앞선 십수 년간 깨달은 것보다 많기 때문이다. 학교에 들어가는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지난 일 년간 내가 학생으로서 겪은 수많은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거고, 그랬다면 지금의 나는 일 년 전의 내 모습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무언가를 했고, 그것도 열심히 했고, 그 결과 내가 몰랐던 나의 다양한 모습과 내면을 발견하고 한편으로는 그런 나를 인정하게 됐다. 그러니까, 나의 이런 뒤늦은 자아 발견을 요즘 스타일로 조금 나른하게 표현해 보자면 '조금 늦게 철들어도 괜찮아' 아닐까. 앞으로 펼쳐질 내 소중한 인생을 위해 노력하는 그런-그러니까, 이렇게 생겨먹은-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게 나는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