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때는
어둠 속에서 천정을 바라봅니다. 추운 겨울입니다. 밖에는 눈이 내립니다. 겨울이 되었으니 생일은 지나갔고 내 나이가 만으로 4살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겠죠. 노란색 택시를 타고 서울로 이사한 지도 엊그제 같은데 벌써 몇 개월이 지났습니다. 구멍가게에 딸린 작은 방에서 오늘도 잠을 청합니다. 방문에 유리창이 있어서 가게를 내다볼 수 있습니다. 약한 불빛이 유리를 통해 천정에 반사됩니다. 내 자리는 엄마랑 아버지 사이입니다. 두 명의 딸 뒤로 세 번째 아들이었으니 얼마나 귀여웠을까요? 오늘은 엄마도 아버지도 깨어 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내 인생 최대의 위기가 올거란걸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엄마가 내게 묻습니다.
"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
대답을 안 했습니다. 엄마랑 아버지는 뭐가 재미있는지 나란 녀석을 가운데 눕히고 답을 얻으려고 합니다. 정말 난감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게다가 사지선다형도 아닌 양자택일입니다. 이를 어쩐다. 그래도 답은 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좋아하는 정도를 저울질해 봅니다.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는데 아무래도 엄마 쪽에 점수가 많은 것 같습니다. 혼란스럽긴 해도 마음으로 결정을 하고 답을 건넸습니다.
"엄마!"
살아가면서 해서는 안될 말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갑자기 아버지가 화를 내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십니다. 나는 아차 싶어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를 쫓아 나왔습니다. 눈 내리는 겨울의 밤하늘이 슬퍼 보입니다. 웃고 대답하지 않으니 마음이 편안하다는 ‘소이부답 심자한(笑而不答 心自閑)’을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위로 2명의 누나가 있습니다. 사실 어릴 때는 언니라고 불렀습니다. 함께 했던 ‘종이 인형 놀이, 사방치기, 십자수, 뜨개질, 공기놀이’가 재미있습니다. 티셔츠를 거꾸로 머리에 끼워 여자머리처럼 꾸며 보기도 합니다. 여자에게 있어 아름다움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 법이죠. 국민(초등) 학교 다닐 때입니다. 두 명의 누나가 나를 불러 세웁니다.
누구 손이 예뻐?
어떤 때는 답을 말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답'일 수 있습니다.
결혼 후, 아내는 저에게 매번 선택지를 내어 놓습니다. 둘 중의 하나를 고르라는 겁니다. 이거 입는 게 좋아 저거 입는 게 좋아? 식당 반찬이 맛있어 내가 만든 게 맛있어? 무조건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처럼 소이부답(笑而不答)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이 또한 인생입니다. 방금 전에도 어떤 옷이 잘 어울리냐고 묻길래 두 번째 옷이 낫다고 하니, 자긴 첫 번째가 더 좋았는데 하면서도 나갈 때는 두 번째 옷을 입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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