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랫는데, 요랫다가, 요래 됐습니다.
2016년 가을쯤 되었을 것 같습니다. 지붕은 스페니쉬 기와, 벽은 스타코마감으로 이루어진 전원주택을 건축한 적이 있습니다. 지인이라 조금 조심스럽기도 하고, 충분한 금액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짐작하건대 그동안 건축주가 어느 정도의 불편함이나 아쉬운 점도 이야기 못했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회가 될 때마다 "감사하다, 덕분에 좋은 집에서 생활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사실 미안함이 더 앞서는데 말입니다.
몇 해 전인가 2021년인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사과잼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 전원주택의 겸손하고 예의 바른 젊은 부부로부터 온 선물입니다. 예전에 건축할 때 마당에 심은 손가락 굵기만한 묘목이 자라서 사과가 열렸다는 겁니다. 그 미니사과로 사과잼을 만들어서 제게 가져온 것입니다.
"기억나시죠? 그 사과나무로 만든 잼입니다. 너무 감사해서 가져왔습니다."
세상에나... 젊은 부부의 그런 마음과 정성이 너무 예쁘게 보입니다.
예전에 공사했던 사진을 찾아보았습니다.
아! 이 나무구나! "알프스오토메 미니사과"
당시 기록을 보니까 묘목 2그루를 구매했습니다. 미니사과 외에도 감나무 대봉감 1그루, 감나무 단감 1그루, 체리나무 1그루, 자작나무 3그루, 단풍나무 2그루, 스트로브 잣나무 3그루도 함께 구매를 했죠.
‘이런 일도 있구나!‘ 5년 정도 지난 것 같은데 결실을 맺고 기쁨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합니다. 제 생각에 그분들은 작은 묘목을 심은 것이 아니라 작은 “감사“를 심었고 “사랑”을 수확한 것 같습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할 때 아직 채 뿌리도 내리지 못한 작은 묘목을 보며 밤새 걱정하다 아침에 아무 일 없이 서 있는 나무를 보며 대견해하는 시간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겨울은 또 어땠을까요?
요즘은 선물하기가 참 편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핸드폰으로 몇 번만 클릭하면 커피며, 케이크며, 심지어 치킨까지 선물을 보냅니다. 큰 수고 없이도 상대방으로부터 감사함을 보내고 받습니다. 간혹 미안한 일이 생기면 간단한 핸드폰 조작으로 선물 하나 보내면 그 관계도 수월하게 풀릴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300만 원짜리 디올백이든 5천 원짜리 아메리카노 한잔이든 선물은 상대방을 감동하게 만듭니다. TV프로그램 “고부열전”에서 캄보디아 며느리가 시어머니랑 8년간의 서먹한 관계로 지내다가, 친정 엄마에게 냉장고 선물을 하는 시어머니를 보면서 그동안의 앙금이 사라지고,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코 끝을 찡하게 만듭니다. 냉장고를 받은 것이 아니라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푸근한 마음이 오고 간 것이지요.
어느 건축현장에서는 작업을 마친 미장공으로부터 직접 기른 암탉에서 얻은 청란(靑卵) 한판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또 다른 현장에서는 직접 도자기 물레를 돌려 만든 수공예 그릇을 받기도 하고, 밭에서 직접 기른 채소며 농작물도 퇴근하는 제 손에 쥐어주곤 합니다. 계약서와 서류, 각종 내역과 증권이 오고 가는 건조한 건축현장에서 "소확행"을 가져보는 시간입니다. 샌드위치빵에 사과잼 듬뿍 얹여 한 입 물으면,
과연 "모과를 선물하고 구슬을 얻는다"는
투과득경(投瓜得瓊)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과나무가 과실을 맺을 때까지 그 오랜 시간을 생각한다면 알프스오토메로
"과한 감사"를 받았습니다.